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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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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나 끄고 가슈......


BY 蓮堂 2004-11-06

화려했던 가을빛이 밑둥치까지 서서히 색깔을 잃어간다.
보일 듯 말듯 한 끝자락이 둥그렇게 말려들고 내년이면 어김없이 또 다시 찬란한 색채가 내 앞에 펼쳐지겠지만 스산해지려는 맘 한 귀퉁이가 자꾸만 잘려 나가는 기분이다.
미세한 떨림에도 울어버릴 것 같은 정체 모를 울컥거림에 가슴은 서리를 품은 듯한 냉기로 오슬오슬 소름이 돋는다.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로수 잎이 은어 같은 몸짓으로 우루루 쏟아져 내린다.
그냥 밟아 뭉개기엔 무언가 아쉽고 미련뭉치 같은 덩어리가 손끝을 잡는다.
쓸어 모아서 둥그렇게 조그만 산을 만들었다.
지나가는 남자에게 라이터를 빌렸다.
영문 모르는 이 남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곧바로 낙엽더미로 시선을 모은다.
그리곤 씨익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커피 볶아 낸 냄새가 그리운가 보죠?"
라이터에 불을 당긴 그 남자는 매캐한 연기가 스물스물 기어오르자 한 발짝 물러나더니 코를 벌름거린다.
내 코도 슬슬 면적을 넓히며 시인의 흉내를 내고 싶어 했다.
그래......
이 냄새가 그리워서 난 이름 모를 이 남자에게 내 속 살 마저 들켜 버린 것 같아서 저으기 민망했다.
이 낙엽 태우는 냄새는 이상하게 사람을 감동시킨다.
마음 가장자리를 넘칠 듯이 드나드는 숨죽인 내안의 소리를 아무런 저항 없이 일깨워 준다.
터질듯이 팽배한 실핏줄의 표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쩍쩍 갈라지는 아픔이 있지만  혼자 끌어안고 삭이기엔 벅찬 고통을 이 냄새가 모두 날려 버릴 것 같은 위안을 받아본다.
남자는 주변의 낙엽을 끌어다가 막 붙기 시작한 불더미위에 슬슬 뿌려 놓는다.
낙엽은 비명 지를 여유마저 빼앗긴 채 넘칠 거리는 붉은 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낙엽 타는 소리가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비스켓 깨무는 소리 같기도 하고 과자봉지 구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엉켜있는 살끼리 부대끼며 여기저기 손을 뻗으며 불꽃이 인다.
쪼그리고 앉아서 불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 눈 속에도 저 불빛이 강렬하게 타고 있으리라.
불빛은 점점 까무라지고 커피 내음의 흔적이 연기와 같이 사라져 버린 자리에서
짧은 여운이 가져온 그 감동으로  난 오래도록 움직이질 못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힐끗힐끗 곁눈질 친다........저 아줌마 오늘 왜 저래?.....

명주실 같은 연기의 꼬리가 지느러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물결에 일렁이는 수초들 사이를 유유히 넘나드는 은빛 지느러미 같은....

어느새 그 이름모를 남자는 사라져 버리고 ,
난 시커먼 잿더미 앞에서 이상한 몰골로 앉아 있는 화석 같았다.
타다 만 나뭇가지로 뒤적여 보니 아직도 발갛게 남아있는 불기가 반갑기만 했다.

낙엽을 한 움큼 퍼다가 살을 보탰더니 불은 또다시 얕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가물가물 꺼져가던 생명의 끈이 뜨겁게 발버둥을 친다.
난 ,
잘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불속으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발이 저리도록 웅크리고 앉아있는 나에게 던져지는 한마디가 현재 진행형임을 암시했다.

"아줌마,...불이나 끄고 가슈........괜히 불내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