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55

어떤 두 죽음


BY 蓮堂 2004-06-29


며칠전에,
시 외갓쪽에  부음을 받고 대전에 있는 대학병원엘 갔다.

고인이 2년동안 병마와 싸우시다가 고령의(76세) 몸을 지탱하시지 못하고 세상을 뜨기까지
거액의 병원비로 가정경제도 말이 아니었고,
자식된 도리, 가족된 죄(?)로 매달리다보니 온 식구가 지쳐 있었던 터였다.

장례식장은 조촐했는데 왠지 음산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장 슬픈 표정으로 상주를 대했는데.....

빈소에서는 그런대로 곡소리에 마추어서 눈물도 찍어냈고
상주에게 '고생 하셨다'는 인사치례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빈소 밖의 그림은 초상집이 아닌 경사를 맞은듯한 표정들이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슬픈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심지어 그분의 딸까지도 웃어가며 손님접대 하기에 바빴다.
효자효부로 이름 난 그분의 아들 며느리 조차도 짐을 벗은 듯한 밝은 표정이었다.

우리부부는 안상주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 거렸지만
오히려 그 상주가 우리를 더 위로하는 거였다.

나는 소(牛) 난 장(場)에 말(馬) 난것 같이 어색해서 끼일곳이 마당치 않았다.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나 붙들고 말 건넬 주변머리는 죽어라고 없으니
혼자 슬며시 일어나 커피 한잔을 뽑아서 휴게실로 갔다.

그 휴게실 바로 앞 영안실에는 젊은 여자의 자지러 질듯한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듣는 사람의 맘을 아프게 헤집어 놓았는데....
더 눈물 나는 광경은 5~6세 정도 되는 어린 상주의 허리에 묶인 하얀 띠가 시선을 끌었다

아이는 자기가 상주인줄도 모르는지
아니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를 알 리가 없는지 장난치고 놀기에 바쁘다.

교통사고 였단다.
고인은 30대 초반의 회사원이라고 했다.

이 두죽음이 주는 의미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태어남은 순서가 있어도 죽음은 순서가 없다고 한다

人命은 在天이라는 숙명에 거슬림 없이 부름을 받고 가는건 어쩔수 없지만
'죽음'이라는 한가지를 두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아찔한 결론이라는거다

나이가 들어서 죽는 건 당연한 걸루 받아 들여져서 슬픔도 삭감되고
젊어서 죽는건 아깝고 억울하니까 슬픔은 가중된다

물론 이래야만 당연한 건 두말이 필요 없지만
왠지 ..왠지...묘한 반발심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둘다 아주 슬프던지 아니면 덤덤하던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감정의 추를 나무라고 싶어진다.

속된말로  우리 사회나 가정이 필요로 하는 죽음은 슬퍼해야 하고
이제는 세월의 뒷켠에 물러나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소용이 될수 없으면
그 죽음은 한두차례 눈물 찔끔거리는 걸로 고인에 대한 체면치레로 끝나야 한다.

내 어버이도 이젠  우리 자식들에게 짐이되고 거추장 스럽게 느껴지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온몸에 잔 소름이 돋는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이승을 떠난다
시기가 알려지지 않을뿐 영원히 머무르지는 않는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 얼마만큼의 슬픔의 농도가 깔려질지는 몰라도
최소한의 슬픔 만큼은 남겨두고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야 덜 억울할것 같은 심사가 자꾸만 또아리를 트는 이 심술을 어이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