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생각하면 떠 오르는 소설이 있다
미국의 현대작가 'Alex Palmer Haley'의 소설 'Roots(뿌리)'다
이 소설을 접한지가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작가의 색다른 경험과 사고를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Fiction이냐 Nonfiction이냐로 제법 문학계를 들썩였지만 베스트 셀러 1위를 장식할 만큼
미국 사회나 세계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데는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처음 이 책을 붙잡고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길때의 그 진한 감동이 숨을 멎게 하였다.
흑인 노예로 끌려간 조상 쿤타킨테의 발자취를 찾아내는 가슴 뭉클한 내용으로
퓰리처상도 수상했던 이 'Roots'가 주는 감동은 무엇보다도
'핏줄'에 대한 강한 집착력과 가족 사랑이었다.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핏줄사랑 보다도 더 진한 감동으로 나를 울렸었다.
수년전에 시조모님의 상을 당했을때였다.
시아버님과는 6촌인 형제들이 길흉사에는 번번이 부조만 달랑 전하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었다.
그 형제들은 소위 잘나가는 그룹으로 조상이나 뿌리에 대해서는 별로 무게를 두지않을뿐 아니라
집안 사람들과의 교류는 아예 뒷전인 상류층 사람들이었다.
보다못한 성정 괄괄한 작은 아버님이 드디어 칼을 빼 드신거였다.
"너들은 조상도 없고 뿌리도 없냐?...이 막 되어 먹은 놈들 같으니...."
喪中, 喪主인데도 불구하고 전화에다가 벼락 같이 소리를 지르시고 난 수시간뒤에
그동안 얼굴 조차도 볼수 없었던 잘 나가는 그 형제들이 줄줄이 문상을 왔다.
은행지점장,기업체 사장, 의사,
그리고 그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 (지금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 판사라는 분은 거물급 정치인들만 가려가며 무거운 철퇴를 내리는 신분에 있었지만
뿌리의 앞에서는 '형님,죽을죄.....'를 운운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 광경을 집안 사람들은 의미있게 지켜봤다.
그런데 저번에는 남골당을 만든다고 했을때 천만원의 거금을 선뜻 내 놓더니
오늘은 그 산소를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보니 슬며시 배알이 틀린다.
"그집 식구들 이제야 철 들었구만"
가시박힌 내 말을 듣던 남편의 눈꼬리가 험악해 졌다.....그래도 지들 핏줄이라꼬...
내가 이렇게 꼬여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조상인지도 모른채- 구체적으로 묻지도 않았지만- 해마다 산소를 찾아가서
벌초하고 제사 지내고, 그러다가 몇해 전에 남편에게 물어 봤더니.....
세상에....그 잘 나가는 분들의 조부 산소란다
그 자손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데 나하고 남편만 죽어라고 들락 거렸었다.
조상님께 잘해 드려서 벼락 맞을 일 뭐 있겠냐 만은
엄연한 손자들 놔두고 한다리라도 먼 우리 내외가 산소 돌본게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도 모두 출세하고 사는거 보면 해답이 안나온다.
'한마당에서 열촌 난다'는 말이 있듯이
내 주변 혈육들이 뿌리를 향해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꼭지점을 만나게 된다.
그 꼭지점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기하학적으로 늘어난 가족이지만 결코 남이 아닌데도
빈부의 차이, 지위의 차이 그리고 종교나 지역의 차이로 핏줄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산다.
여러 형제들이 있어도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고 혹자는 꼬집어 말한다.
빈부가 편가르기를 하고 지위가 높낮이를 저울질 하는 가족간의 뻘쭘한 사이는
한자리에 앉아서 밥한끼 먹는것 조차도 편하게 해 주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삭막하다.
흔한말로 먹기 살기 바쁘고 입이 포도청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핑게를 대지만
마음이 없어서 또는 관심이 없어서라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사람 아직 못 봤다.
집안의 길흉사에 어떻게 '핑게'를 쉽게 댈수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
내가 너무 곰팡이 냄새 풍기는 헛소리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사람'은 '사람 다워야 하고,사람은 노릇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눈꼽만큼의 변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