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고 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 권세가 없다는 말이다.
얼마전 국민의 정부 시절에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막강한 실력자 박지원이
뇌물 비리 혐의로 인하여 구치소로 갈때 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눈물로 뱉아놓은 말로 유명하다
月滿仄虧(월만즉휴)
즉,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도 여기에 비슷한 뜻이 된다
이말이 나에게 해당된다면 해석을 너무 침소붕대 시킨게 되는걸까.
때가되면 어느 선에서는 물러날줄 아는 겸손함을 보여주는 미덕도 필요 한것 같아서...
내가 시집이라는걸 오니까 집안에 며느리라고는 아무도 없이 애들(시누이 시동생)과 노인네들 뿐이었다.
남편이 집안에 맏이니까 그럴수 밖엔....
시집 식구들은 마치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나를 가운데 앉혀놓고 신기한 표정으로 들여다 봤다.
가장 좋아하시는 분이 작은 아버님이셨는데 그분은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옆에 앉아서 손도 만져 보시고 이것 저것 집어서 입에 넣어 주시고..
그러다가 불편하면 다리 뻗어라고 다리도 펴 주시고...
내가 눈에 밟혀서 잠이 안온다고 하시면서 아침일찍 내려 오시면서 이것 저것 챙겨 오셨다.
나를 중매하신 당숙은 혹여 내가 힘들어 할까봐 오시고 싶어도 자주 안 오셨고,
시아버님은 날만 새면 당신 앞에 앉혀놓고 내가 커온 얘기를 즐겨 들으시곤 하셨다.
객지에서 자취생활 하고 있는 시누이들은 나를 볼려고 주말마다 들락 거렸다.
성정이 곱기만 하신 시어머님은 행여 내가 주눅 들까봐 일부러 분위기를 바꾸어 주셨다는데,
가장 무심한 사람이 남편이라는 사람이었다.
어른이 계신 집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는 한마디도 건네는 법이 없었고
어쩌다가 말할 일이 있으면 뒷구석으로 불러서 몇마디 나누고는 입을 싹 닦아버린다
방에 온 식구가 앉아 있을때도 난 항상 멀찍이 떨어져서 있는듯 없는듯 그림자 처럼 움직이길 바랬다.
실수로 옆자리에 앉게되면 영락없이 눈짓을 하면서 딴자리로 몰아냈었다
남도 그런 남이 없다......
그때 흘린 눈물은 아직도 덜 마른채 눈 주위를 적시고 있다고 하면 내가 심한가..
시집식구들의 따뜻한 배려나 보살핌이 없었다면 난 벌서 보따리 쌌을것이다
남편보고 시집온게 아니고 시집 식구들 보고 시집온 모양새가 되어버린 나의 신혼 이야기다.
그런데 나의 이런 사랑이 차츰 나에게서 멀어지는 일들이 줄줄이 꼬리를 이었다
새로 들어오는 아랫 동서들이 나의 사랑을 야금야금 떼어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가 사랑을 떼어줄 자리에 놓여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쩔수 없는 시류인데도 어느샌가 난 어른으로 자라고 있었다.
꽃같이 이쁘고 세련된 동서들이 내 아랫사람으로 들어와 앉을땐 난 이미 새댁에 아닌 헌댁에 불과했다.
어른들의 그 지극한 사랑이 미지근하게 미온만 유지하고 있어도 난 감격해야 했다.
설날이면 어김없이 내 주머니를 채우던 어른들의 세뱃돈이 동서들의 주머니로 옮겨갔고
'오냐오냐'로 치켜 세우던 내 위치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친게 아니고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 못하는 높은 곳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덜렁 올라가 있었다.
눈을 들고 쳐다봐야 보일수 있는 그런 자리.
결코 쉽고 만만한 자리가 아니고 책임과 의무가 병행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였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수 없고 낮추고 싶어도 낮아질수 없는 그런 자리에 내가 앉아 있어야 했다
어른들 꽁무니 따라 다니면서 시키는대로 차질없이 일만 잘하면 내 자리는 편했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고 이 사회에서도 높은 자리는 항상 어깨를 누르는 힘을 느껴야 했다
이번 명절에도 대여섯명의 동서들이 북적대는 주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입으로 원격조정 하는것 뿐이었다.
설거지라도 할려고 주방에 붙어서 있으려면 '군번' 운운 한면서 얼씬도 못하게 한다
소위 '어른'이 무슨 설거지냐는거다
어른..........
조카들이 세배 할려고 일렬로 서서 나를 부를때 난 도망쳐 버렸다.
어른들이 앉아 계시는 자리에서 내가 세배 받을려고 폼 잡는게 여간 거북하고 민망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염치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아랫사람으로 머물수 없는데 위로 커가야 한다는 사실을 왜 이렇게 받아 들이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큰일이 닥치면 나만 쳐다보고 있는 하나 뿐인 내 동서.
그 먼길을 형님 보고 싶어서,
혼자 애쓰시는게 맘에 걸려서 9시간을 빙판길 운전하며 밤새 달려 왔다는 말에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한해를 넘길때마다 수식어처럼 붙히고 다녀야 하는말이 있다.
'어른값, 나이값'을 해야 한다는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