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고 마무리해야 할 12월은 여느 계절과는 다른 의미들이 많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산다는 것이 매양 그렇지만 강물에 일렁이는 저 무수한 잔 물결같이분주한 척, 아니 그 물결에 휩쓸리며 살았다.
조금 뒤쳐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속도를 내며 달리는 사람들 속에 '나'도 끼여야 한다며 어거지를 쓰느라 바삐 보낸 일년. 허울뿐인 드러남의 욕구충족으로 얻어지는 건 늘 빈 껍데기였다. 어거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그렇다하여 아니 하는 일도 없는데, 이때가 되면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여 진다. 허물을 드러내기보다 감추어진 허물이 들통날까 두려워하며 덧칠을 해대곤 하였다.
오랜만에 산길을 걸었다.
상수리 잎이 수북히 쌓인 숲속에 쏟아지는 햇살.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한 점이며 건널수 밖에 없고 껶어야 하는 것들.
개개인의 느끼는 감정이 다르겠지만 겨울은 우리의 심성을 차분하고 엄숙하게 만들어 준다.
지난 계절 동안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많은 실수, 부족함으로 스스로도 실망했던 것들.
부끄럽다.
수확의 너그러움으로 물결치던 들녘. 붉은 피를 토악질하듯 활활 타오르던 단풍.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며 뜨거운 재회를 약속하였다.
이 겨울. 드러나는 이름다움보다 냉기속에 감추어진 신비를 물레질하며 참으로 인간답게 살라갈 봄의 활력을 재충전하며 보내고 싶다.
수목과 야생의 동물들이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동면을 하듯, 이제 피로하고 지친 심혼에게 휴식의 여백을 마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