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친정집에는 우물이 없었다.
농사도 꽤 지었는데도 우물이 없다는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모양인지 우물이 집안에 없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그 당시,삼십여채의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우물이 있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으니 우물을
파 놓고 산다는것을 생각조차 아니 한 모양인것 같다.
동네 가운데 쯤에 달랑 하나 있는 우물이 동네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백중날 새벽이면 어른들은 우물에 모여 두 세명은 우물속으로 들어가서 깨끗하게 청소를 하
였다. 막걸리잔을 상에 올려놓고 용왕님께 절을 하며 좋은 물을 주십사 빌었다.
꽹과리와 징을 치며 한바탕 쇳소리를 내었다. 금줄을 치고 해가 질때까지 출입을 금지시켰
다.
어둑 새벽. 두레박을 우물속에 넣노라면 토관에 부딪치는 소리가 하늘로 날아간다.
우물은 밤새 솟은 물을 찰랑 껴안고 있다가 두레박 가득 담아주며 무어라고 하는 것처럼 들
리기도한다.
집이 조금 낮은 곳에 있었는데 우물은 약간 높은 곳에 있어서 양동이를 들고 내려올 때면 퍽
조심을 해야하였다.
길바닥에 물을 쏟아야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서 여간 속이 상한게 아니다.
아깝다는 말을 이루다할순 없었으니까.
집안에 우물을 파지 않는 아버지를 엄청 원망하였지만 아버지의 왕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물은 길어다 먹어야 한다나 어쩐다나. 그래야 절약을 하게 되지 우물이 집안에 있으면 아무
래도 아까운 줄을 모른다는 등.
사람들이 늘어가고 그에 따라서 물을 많이 써야하기에 언제부턴가 물이 부족하기 시작하였
다. 어른들은 물 때문에 큰일이니 아껴야 한다는 말을 몇번이고 강조하시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니 자연히 새벽 잠을 못 자는날이 많아졌고 옆 집보다 먼저 물을 퍼 와야 하였다. 어느
집은 물을 많이 퍼 올리려고 두레박을 큼지막하게 만들어썼다.
물을 길어오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큰일이 되었고 이웃 동네에까지 물을 길러 가는 날도 더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동네도 마찬가지여서 여간 눈치를 하는 게 아니다.
" 우리 동네도 물땜에 사람 죽을 지경이다." 는 말을 할때면 잔뜩 주눅이 들어 겨우 두 양동이
를 들고 오는것으로 끝내야 하였다.
집에서 쓰는 물이야 어떻게든 절약절약 한다지만 문제는 빨래다.
농사철이야 농수로에서 빨래를 한다해도 겨울철만 되면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그때의 농수로에는 농사철이면 맑은 물이 흘러 왔다. 어느 댐에서 흘러온다는 그 물은 어찌
나 맑은지 물속이 훤히 보일정도 였고 발을 담그고 빨래를 하면 송사리 들이 발 옆으로 지
나다녔다.물가에 죽 늘어 앉아서 빨래를 하는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사진기가 없어서 찍어 놓지 못한것이 지금 무척 아쉬워진다. 다시는 볼수 없는 장면이다.
비누칠을 여러번 하지 않아도 때가 잘 빠져서 빨래하기는 그만이었고 머리를 감으면 매끈거
려서 각종 화학성분이 가득한 삼푸와는 비교도 할수 없었다.
반들반들한 넓적한 돌이 있는 자리는 제일 좋은 자리여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그 자리를 쓰는
아낙도 있었다. 아이들은 멱을 감느라 첨벙거렸다.
한 겨울에도 농수로의 밑바닥에 조금 고인 물로 빨래를 하는 집도 있지만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다. 물을 씻어 먹는 나라는 없다고는 해도 땟물과 희뿌연 비눗물이 폐수처럼 떠 있는물에
서 빨래를 하기란 좀 그렇기도하여 남의 동네로 빨래대야를 이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주눅이 들기는 해도 별 수없었다.
낯선 동네로 빨래를 가는 날도 많았다. 십리 가량을 걸어서 찬 바람을 쐬며 오가면 정수리가
몹시 아프다. 손은 말할것도 없이 무척 시렵고 빨래가 꽁꽁 어는 날이 있다.
그 우물은 지금 사라졌지만 어쩌다 그 동네를 지날려면 그때 일이 떠오르고 고맙다는 말이 나온다.
지금은 지하수와 상수도가 잘 보급되어 물을 걱정없이 쓴다지만 우리 나라가 물 부족 국가임
을 생각해볼때 언제 다시 그럴 날이 오지말라는 법은 없으니 후손들이 걱정된다.
물의 소중함을 전혀 알지 못했고 땅을 파면 물이 솟는 것으로만 알았으니 그간 우매함을 드
러내고 만 처사가 아닐수 없다.
계곡물에 화장실 폐수를 파이프를 통해서 버리는 업소도 있다는 말을 어떤 이에게서 들었다.
그런것도 모르고 계곡물에서 사람들은 더위를 식히겠다니.
물을 아끼는데 '너'와'내'가 따로 없다. 집에서도 업소에서도 나만 생각하는 식으로 물을 함
부로 쓰다간언젠가는 돌이킬수없는 지경에 이를것이 분명하다.
어딜 가서도 물을 아껴야 된다. 내것이 아니니까하는 쫌생이 같은 마음을 버리고 아껴줘야지
만 물 부족을 조금이라도 덜어낼것이다.
물의 소중함이야 말해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