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락 사그락 부엌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열감기 때문에 엄마는 내 옆에 누워 계신데 말입니다.
착차르르 착차르르 쌀 씻는 소리.
톡톡톡톡 톡톡 도마 위에서 칼날이 춤추는 소리.
보글보글 국이 끓어오르는 소리도 들리고
지글지글 부치미가 만들어지는 소리도 들립니다.
누굴까? 엄마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나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여 봅니다.
칙~ 픽~ 밥솥에서 하얀 김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밥내음이 퍼집니다.
킁킁킁!! 보글보글 국은 조갯살이 들어간 미역국이 분명합니다.
지글지글 부치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말이 같습니다.
코 끝을 간지르는 냄새가 꼭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부엌요정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엊저녁부터 꼼짝도 못하는 엄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우리 딸, 저녁 먹여야하는데.... 내내 걱정하는 엄마가 걱정스러워
내가 기도를 했거든요.
우리 엄마. 열감기를 빨리 떼어가주세요.
아니면. 우리 엄마랑 나랑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귀여운 요정님을 보내주세요.
나는 부엌요정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어졌습니다.
살그머니 부엌에 나가보기로 합니다.
손가락 사이에 쥐고 있던 노랑 크레파스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쌕쌕~ 잠든 엄마 잠에서 깰까 발 뒤꿈치를 치켜듭니다.
부엌요정이 샤라랑~ 도망이라도 칠까 발소리,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살금살금. 내 모양이 꼭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도둑고양이같습니다.
빼곡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밉니다.
두근두근. 누군가가 내 가슴을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다현아! 엄마랑 밥 먹자!"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엄마의 앞치마가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의 앞치마 위로 아빠의 둥근 얼굴이 들어옵니다.
어? 회사일로 출장을 갔던 아빠가
아픈 엄마 대신 부엌요정이 되었나 봅니다.
아빠가 만들어준 식탁 앞에서 엄마는 열감기 따위는 잊은 듯 환히 웃습니다.
나도 조그마한 수염이 까칠하게 돋아있는 부엌요정의 얼굴을 바라보며
엄마처럼 환하게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