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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의 차이


BY 오락가락 2004-10-20

 

누구나 그렇듯 신혼시절은 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늦깍기 부부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실감했다. 나이를 먹어서 결혼하면 특별히 다툼의 일도, 또 오랜 사회생활의 경험으로 이해와 양보와 대화가 모든 것을 간단히 처리할 줄 만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정 반대였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고, 각자의 인생관이 정립된 상태에서 정 반대의 상황에 서로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각자의 가치관을 조절해야 만 하는 고통에 나날이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딱 두가지가 최대로 큰 걸림돌이었다. 첫째는 여유없이 저금하며 사는 것이 싫다는 남편, 조금이라도 저금을 해야 미래가 있다는 나의 의견이었고, 둘째는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노동조합일을 보는 남편, 난 남들 일보다 내 가정이 소중하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 었다. 그것은 서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고, 또 부부가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에서 제일 소중한 부분이었다.


나는 결혼전부터 빚이라면 10원도 지는 것이 싫은 사람이고, 남편은 언제든 짧은 시일에 갚을 수 있는 빚은 빚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여서, 돈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쓰면서 살자고 했고, 나는 빚지며 쓰는 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각종 집안 행사가 생길때 마다 다투고, 혼자서 멍하니 미래를 상상하면 내 인생이 한심하기도 했다. 집이라도 넓히려면,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면 난 항상 불안 초조했고, 내가 죽으면 내일도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며, 돈이 있어야만 주변 사람들에게 쓰면서 사냐고, 평상시 때에 맞추어서 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남편 때문에 나의 신혼시절의 반은 그걸로 싸웠다. 나중에 친정엄마와 상의를 했다. 어머니 말씀왈 “ 재미있게 살기에도 너무 늦게 만나 안타까운데, 뭘 그런 것을 가지고 싸우며 사냐고, 매일 속상하며 살래?, 포기하고 재미있게 살래? 하시며 현명하게 살라고, 어느것이 중요한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부분은 내가 포기했다.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남편이 이야기도 하기 전에 기분좋게 내가 먼저 썼고,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고마워했다. 힘든 생활에도 고맙다고. 지금은 마이너스 몇백 이다. 그래서 남편이 나보다 더 초조해져 나몰래 체크 중인 것 같다.


그리고 또하나의 문제는 절대로 내가 양보 할 수 없었다. 난 아무리 옳은일 이라도 가장 소중한 가정에 피해를 끼치며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반 미친짓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뭐라고 욕하든 내 가족들이 욕하지 않는한 행동으로 옮겼다. 시댁에 알리고, 남편회사에서 기다리고, 같은 노동조합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항의하고, 남편에게 내 생각을 주장하고, 노총에 전화 문의하고, 각종 상담전화에 문의하고 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물론 남편과의 싸움은 격렬했고, 또 그만큼 내 신혼시절의 반도 격렬했다. 지금은 남편이 거의 양보했고, 주변사람들도 나를 의식해서 간부며, 각종 회의에서 일찍 집으로 보내주었다. 지금도 난 그들에게 묻는다.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가장 중요한 제2의 가정파괴를 일으키는 것이 옳은 일 이냐고? , 내 것의 소중함을 부르짖기위해,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피해를 끼쳐서라도 쟁취해야 하냐고, 무엇을 위해 주장하냐고? 말로는 내 가족을 위하면서, 사실은 내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말이다. 남들은 가족이 단란하게 여행도 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낼때, 나는 꿈같은 신혼시절을 거의 울면서 보냈다. 지금도 늦게 얻은 딸아이를 보면서 많은 각오와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