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혼인식이 아직 달포 넘어 남았지만 서울과 경남의 거리가 너무 멀어
양가의 합의하에 격식을 따지지 않고 편하게 하기로 하여 우리부부가 간김에
이른 예단을 받았다.
두 주후에 아들이 차에 싣고 집으로 내려온다는 말에 남편이 펄쩍 뛰며 말렸었다.
"길이 오데라고 피곤한데 오지말거래이 우리가 올라 갈테니 기다려라"
신입사원이라 저녁도 제때 먹지도 못하고 매일 밤늦도록
일에 지치는 아들이 안쓰러워
남편은 차마 내려오라고 하지못했다.
마침 내 졸업식도 있고, 남편도 과천 정부청사에 출장을 가니
시부모될 두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했더니 저쪽 집에서 딸애가 사는 화정 집으로 아들 편에
예단을 보내겠다고 했다.
요즘 결혼에 아직도 예단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신부 쪽에
큰 부담이 된다고 하지만
현 추세가 간편하게 그냥 돈으로 주어 신랑측에서 알아서
친척들에게 예단을 한다고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도 딸이 있는데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고싶었다.
물론 나도 신부측에 신부가 필요한 옷가지와 한복을 화장품,
핸드백을 사라고 돈을 주었고,
패물은 며느리에게 직접 해주고 싶어서 맞추고 왔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당신들이 배우지 못한 한에 논,밭 팔고 소를 팔아
자식 공부를 시키면서 풀었다는데 나도 내가 끼어보지 못한
다이야몬드반지를 며느리에게 해주고싶었을까.
초심에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패물은 허례허식이라고 치부하고
요즘 진짜 같은 가짜 다이야몬드인 "모이사나이트"라는 알을 박아
반지와 목걸이를 해줄 것이라고 아들에게 말했었다.
잘사는 친구가 남편사업이 망해 가진 패물을 내다 파는데 옆에서 지켜본 나는
다이야몬드의 허실에 너무 실망했었다.
아니 다이야몬드 뿐만 아니라 진주 등, 모든 보석이 다 마찬가지였다.
살 때는 너무나 비싼 가격에 사서 몇 번 끼지도 않았는데
되팔 때는 반값정도밖에 쳐주지 않으니 친구의 속상한
한숨소리가 옆에서 듣기가 민망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며느리에게 패물을 해주려고 하니 마음이 바뀌었다.
엄마의 의도를 아는 아들은 정말 가짜 보석을 박은 반지를 할건지
걱정스럽게 내 대답을 기다리는데 차마 그렇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외며느리에게 가짜를 어떻게 해주나.'
종로3가 보석집에서 볼때는,
아무리 귀하고 값진 것도 비슷한 무리속에 섞여있으면
그 진가가 표가 나지않는다. 그러나 그 귀한것이 따로 떨어져나오면
빛을 발한다.
아들이 가져온 예단꾸러미들을 하나 씩 끌러기 시작했다.
맨 먼저 청홍 보자기에 싸인 보석함을 열자 우리 가족 네 명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이야"
"오메"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