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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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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의 의미


BY 수련 2006-05-08

              참된 의미의 청첩장

                                                    함 기 순

「 이제 저희 둘은 흔들림 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그 결실을 맺고자 합니다.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으로 하나의 인생을 이루고자 하는 저희들에게 사랑과 축복으로 함께 해주시면 더 없는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아들이 직접 만든 자신의 청첩장내용이다.
요즘은 청첩장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추세이다. 신랑신부의 웨딩사진도 들어있고 한지에 빼곡이 앞으로의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각오를 적은 청첩장, 차임벨을 달아 누르면 결혼행진곡이 나오는 특이한 청첩장은 받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어 신랑 신부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유도한다.

 그에 비해 아들이 보내온 청첩장은 너무 밋밋하여 멋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보이긴 하다. 아들의 청첩장을 스멀스멀한 기분으로 들여다보았다. 살아온 세월을 유수(流水)와 같다더니....
 어느새 자식이 장성하여 부모에게서 당당하게 독립하여 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문서 같기만 하여 영 어색하다. 남편과 내 이름이 찍힌 인쇄물을 받아들었지만 낯설어서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고 꼭 남의 혼사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집안의 제일 큰일인데 벌써 우리가 아들을 결혼시킬 나이가 되었다니... 아직까지 느긋하게 삶의 흔적을 되돌아 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는데 벌써 자식을 품안에서 떠나보낼 나이가 되었나보다.

 신부측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혼례관습상 혼례날짜와 장소를 신부측에서 먼저 정하여 알려주고, 이에 신랑측이 동의하면 신부측에서 정한대로 따른다. 그러니 신부측이 원하는 대로 서울에서 혼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물론 양측의 합의 하에 장소를 신랑측에 양보할 수도 있다지만 신부측이 다 서울이 고향이라 꼭 서울에서 하고 싶다고 우리측에 양해를 구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청첩장을 몇 장이나 보내면 되느냐고 아들이 물었다.
“그냥 한 50장 정도만 보내라”
“50장이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들은 적은 수량에 의아해 했지만 가까운 친척과 절친한 지인(知人)들을 대충 손을 꼽아보니 50여명밖에 안 될 것 같았다. 서울에서 결혼식을 치르다 보니 거리가 너무 멀어 친분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다 돌리려니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의 친구들이 많이 온다니까 빈자리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 남편이 한 직장에서  오랜 세월 동안(27년) 근무하면서 적금 붓듯이  부조한 돈 액수도 제법 될 것이다. 당연히 되받으려면 청첩장을 다 돌려야 되겠지만 남편과 의논 끝에 직계친척들과 꽤 가까운 친분이 있는 분들에게만 청첩장을 보내기로 했다.
 
 봄 ,가을이 되면 아파트 우편함에는 거의 매일 다른 문양의 청첩장이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청첩장이 많이 배달되어오면서 해가 갈수록 그 횟수도 잦아진다. 남편의 나이가 오십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친구들도 며느리, 사위를 볼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어떤 때는 남편에게 청첩장을 내밀면 겉봉의 이름만 보고는 속을 열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대학 졸업하고 30년이 넘도록 소식을 전하지 않다가 주소를 알아내어 자신의 경조사를 전 동창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싶다. 동창생 명부에 적힌 핸드폰 번호를 보고 일괄적으로 은행구좌번호를 문자로 보내는 것은 너무 심한 행패로 느껴진다. 무슨 빚 독촉을 받는 것 같은 씁쓸한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결혼시즌 철이 되면 남편의 책상 위에도 청첩장이 수북히 쌓인단다. 청첩장을 열어보지도 않고 버리기도 하고 체면상 마지못해 인사치레로 얼마간의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 인편에 보내기도 한단다. 청첩장을 받으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마음이 앞서야 하는데, 당사자인 신랑이 누군지,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형식적으로 돈만 넣어 보낸다는 것은 청첩장을 보내는 의미에 어긋나지 않을까.

 연둣빛향기로 물든 아름다운 봄날에 신혼부부가 탄생한다는 소식을 담은 한 장의 청첩장이 홀대를 받는 줄 알면 보낸 이가 얼마나 기분이 상할까. 적어도 청첩장을 들여다보며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얼굴도 떠올려보고 친구의 자식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적어도 3분 이상은 손에 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청첩장을 받아 들고“사랑이 담긴 눈으로 축복해주는 마음”이 우러나야 청첩장을 보내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올 봄에는 매주 서너 장의 청첩장이 바쁘게 날아왔다.

올해 병술년(丙戌年)은 음력 7월 윤달이 끼여 한 해가 385일이나 되면서 절기 상 입춘이 한 해에 두 번이나 들어가게 되어 올해 결혼하게 되면 백년해로한다나, 거기다가 올해 임신을 해서 내년에 아이를 낳으면 내년이 정해년 (丁亥年) 이라 돼지띠가 된다면서 전국의 예식장 봄, 가을 주말에는 이미 예약이 다 끝난 상태란다.

봄은 가도 또 봄이 온다는 2006년.
한 해에 두 번씩이나 봄이 들어있다는 쌍춘년(雙春年)에 결혼하는 모든 선남선녀들에게 행운이 가득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