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5시 30분
아들놈이 운전하겠다고 키를 챙기자 남편이 얼른 나꾸챈다.
"이리내. 내가 운전할꾸마. 아부지가 해야지. 흠 ,흠"
아직은 아들놈에게 자리를 빼앗기기싫은가??
"아들이 하든 아부지가 하든 길 만 잘 찾아가슈. 안 가르켜 줘도 알죠?"
창원에서 상견례를 하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장소를 잡아야 할 것같기에 몇 번이나 남편에게 어디를 정하면 좋을까 했지만 계속 딴청만 피웠었다.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고 내가 할수없이 그 쪽에서 숙박한다는 E 호텔의 한정식 식당을 예약했다. 일인당 4만원부터 8만원까지 있다는데 내 상식으로는 밥값으로 만원이상은 절대적인 낭비라고 생각하기에 4만원도 너무 사치스러운건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상견례하는 자리라서 과욕을 부려 4만원짜리로 정했다.
그러나 부가세와 서비스료까지 합하면 일인당 4만8천원이란다. 6명이면?..
술값까지 3십만원이 넘겠다. 어휴. 진짜 낭비다. 차를 타고 가면서 손을 꼽아가며
밥값계산을 하니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리 돈이 아까우면 각자 먹은거 내라하고 당신은 굶어. 안 먹어도 배가 남산만 하네 뭐."
"아니, 그러면 안되고....내 배가 뭣이 부르다고..자꾸 내 배가지고 시비걸거유?"
"어머니 그만 하세요. 상견례하기 전에 두 분이 먼저 싸우겠네요"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아들이 분위기를 바꾼다.
"제 카드로 낼테니 걱정마세요"
"임마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너거 아부지 직급이 더 높으니 당연히 아부지가 내야지"
"뭐라카노. 마누라 니가 예약했으니 당근 당신이 내야재"
"내가 내지 뭐..근데..옴마야. 카드를 안가지고 왔네. 꼭 내가 내려고 했는데..
당신 카드 좀 빌려주이~소.예?" 코먹은 소리를 했다.
"내 그럴줄 알았지. 언제 당신 밥 산 적있어? 맨날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하면서
빌려주면 갚기를 하나. 내가 알면서도 속는다 속아. 너거 옴마 수법이 고단수아이가"
히히히 요 정도에서 그만 해야지...
"아버지 오늘은 술을 많이 드시지 마세요. 미환이 아버지는 술을 많이 못 드시거든요"
아들은 은근히 걱정이 되나보다. 남편은 술을 먹지 않은 평소에는 말이 없다.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면 말도 많아지고 점점 거칠어지면서 예의는 온데 간 데 없고 실수 연발이다.
아들놈은 아버지가 실수하실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걱정마라. 엄마가 술 한 병 이상은 절대 시키지 못하게 할테니까.."
아들놈이 제대하고 와서 아버지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술이 되면 자신이 알아서 절제하여야만 남에게 실수하지 않는데 남편은 술이 그 정도가 넘어서게 되면 제어하지 못하고 술이 술을 먹는다고 계속 술을 시킨다.
이상한 건 상대방은 멀뚱멀뚱한데 남편 혼자만 술이 과하여 주체를 못하니 남의 눈에 비치는 남편의 모습이 추해 보이고 술좌석을 파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은 술을 먹으면 잠을 잔다는데 남편의 경우는 술이 들어가면 갈수록 잠이 오지 않는지 지칠 때까지 술상을 치우지 못하게 하여 그 상대를 하고있는 나를 너무 괴롭혀 그로 인한 싸움은 횟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런 아버지를 많이 보아왔고, 술로 인하여 항상 엄마와 다투니까
아이들의 소망은 오로지 한가지, <아버지 술 끊으세요> 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뚫게 되어 속으로 도를 닦으면서 싸울 일을 웬만해서는 만들지 않지만 아직도 술로 인하여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다.
어른스러워진 아들놈은 아버지에게 건강을 생각하셔서 술을 조금만 드시라고
간곡하게 말하지만 진짜 마음은 엄마의 힘듬을 더 생각하는 것같아 보였다.
한 동안 술을 절제하여 마시더니 언젠가부터 또 예의 그 주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묵은 습성을 쉽게 버릴 수가 있나.
정각 6시
호텔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6시 약속인데 식당까지 가면 한 3분 정도 늦겠다.
그 정도야 뭐..
"너거 옴마땜에 늦었다아이가. 별로 이뿌지도 않구마는 거울 앞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니까" "우리 아들 체면이 있는데 옴마가 단정하면 좋지 뭐." 딩동~ 엘리베이터문이 열리고 식당에 들어서자 그쪽 세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미래의 며느리, 안사돈, 바깥사돈....
내숭을 떨며 눈을 내리깔고 우아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안사돈을 쳐다보니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