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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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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3


BY 수련 2006-01-11

아니 전에 분당에서 봤던 여자 맞나?? 어쩜 저렇게 변신할 수가!!

그때는 화장도, 머리손질도 평범하게 했었고 옷차림 또한 평상복이라 드라이까지 하고 나간 내가 너무 오버한 것같아 조금 미안스러웠는데 상견례하는 오늘의 그녀 모습은 완전 딴사람 같다.
부드러운 벨벳의 까만 투피스를 입었는데 칼라에는 큐빅이 요란하게 박혀있어 불빛에 찬란하게 번쩍거리는데 눈이 부실지경이다. 집에서 다시 손본 내 머리와는 달리 세련되게 앞머리를 살짝 내리고 옆머리는 살짝 말아 올려 뉴스시간에 나오는 여자 앵커와 비슷한 헤어스타일이다. 목에는 하얀 진주 목걸이가 빤짝이는 큐빅의 빛을 받아 백옥의 색을 더 발한다.

아무 장식도 없는 내 옷차림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진주 알도 내 목걸이보다 훨씬 커 보인다. 10mm? 12mm?. 크기가 클수록 가격도 엄청 차이가 나던데..혹시 가짜 아냐?
아니 자기가 무슨 탤런트냐. 아님 자신이 선보러 나왔다고 착각하나. 아무리 상견례이지만
저놈의 여편네는 자기 딸 생각도 안 하나? 딸보다 엄마가 더 화려해 보이면 딸이 더 초라해 보일 수 있다는 걸 몰라? 미래의 내 며느리를 보니 안 사돈과 다르게 얌전한 옷차림이 마음에 쏙 든다.화장도 진하지않고 은은한게 ..역시 젊음이 좋다.
예부터 며느리는 그 집의 엄마를 보고 사위는 아버지를 보라고 했는데 쟤도 자기 엄마 닮은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했는데 바깥사돈을 보니 아버지 쪽을 많이 닮았다. 휴~ 다행이다.

"어서오세용~. 처음 뵙겠습니당~"
아이구 드디어 시작이네. 쫀득쫀득한 목소리에 간드러진 콧소리까지...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아, 예, 예 반갑습니다. 멀리서 오시느라고 힘드셨죠. 편하게 앉으세요"
남편의 말투가 서울말로 바뀌면서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퉁명스럽게 나한데 말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어째 저렇게 180도로 다를 수 있어?. 흥~

안 보는 척 하고 다시 저 여편네를(너무 격양되어서), 안사돈을 보니 화장술이 기가 막힌다.
그때는 눈가에 주름제거수술을 했는지 눈이 찢어졌더니 오늘 보니 전혀 표도 없고,
불빛에 반사되는 얼굴이 뽀송뽀송 마사지를 받고 왔나보다. 주름살 하나 안보이네. 에이. 나도 얼굴 손질 좀 하고 올걸.. 옆에 앉은 며느리를 보니 흐렸던 마음이 활짝 개인다. 환한 표정의 아이가 밝게 잘 자란 것 같다. 우리 아들은 쳐다보니 둘이 잘 어울린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늠름하고 더 잘 생겼네. 하하하 그래 나는 시엄니가 되잖아. 마음을 비워야지 . 상견례 하러와서 이 무슨 해괴한 심사여.

"어디에 근무하신다고요? 아. H건설.. 그러면 누굴 아시겠네요"
"예.....전에 모시던 분입니다."
"그 분하고 제가 잘 압니다...."
상견례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차례로 들어오는 음식을 서로 권하다가 빠질 수 없는 술 주문을 한다.
"언니~ 여기 술 뭐 있어요?"
아니 웬 언니? 남편의 느닷없는 '언니'소리에 또 닭살이 돋는다. 2년 전 서울에 살 때, 식당이나 백화점에 근무하는 점원 아가씨를 서울 사람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 "언니"라고 불러서 너무 낯설어 이상해 했다. 경상도에서는 처녀는 '아가씨' 아주머니는 '아줌마'라고 부르는데 서울쪽에서는 결혼유무를 가리지 않고 점원들에게 "언니'라고 부르니 우습기도 하고 습관이 되지않아 남편과 나는 경상도식으로 '아가씨.아줌마'로 지칭했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서울도 아닌 경상도 본토에 와서 웬 "언니?". 점입가경이다.

그런데 맞은편 사돈네가 이상하다. 남편이 말 할때 마다 안사돈이 자기 남편의 다리를 꼬집는 모양이다. 안사돈의 팔이 바깥사돈쪽으로 계속 왔다갔다한다.
마주보고있으니 한 눈에 다 보이는데 왜 그러지?
우리 남편과 대화를 하는 바깥사돈이 계속 더듬거린다. 자세도 편치않아 보인다.
뭐가 불편하지?
아하~ 30년 가까운 행정직 공무원인 영감의 수준 높은 달변(?) 대화에 바깥사돈은
건설부문에만 종사했으니 중간중간 거친 말투가 튀어나온다.
그때마다 옆에 앉은 안사돈이 허벅지를 꼬집는 모양이다.
속으로 웃음을 참고있는데 술이 한잔 들어간 우리 영감~
"아. 안 사돈은 왜 자꾸 바깥양반을 꼬집어요? 그러다가 멍들겠는데요.하하하"
"아이..그게 아니고.. 이 양반이 실수를 하는 것같아서.."
"실수는 무슨.. 그러지 말고 우리 편하게 이야기합시다. 자자. 한잔 드세요"

드디어 술잔이 오고간다. 아들놈이 불안해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쪽이 불리해 지는데..안되지.. 아들놈에게 눈짓을 했다.
"아버지. 미환이 아버님은 술을 많이 잘 못 드시는데 조금만 하시죠"
"괜찮아, 건설직에 오래 계셨으면 술을 잘하실거야. 맞죠?
오늘 우리 멋진 만남을 기념하면서 ' 위하여'를 한번 외칩시다"
"녱~ 위하영" 저 여편네 보소 코 먹은 소리가 또 나온다.위하긴 뭘 위해.흥~
나는 운전 때문에 술을 입에 대다가 마는데 저 여편네는 이 호텔에서 자면 되니까
그러는지 잘도 마시네. 혹 술집 마담출신 아녀?
영감의 술 고집은 아무도 꺽지 못한다. 아들이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또 조심. 상대편에게 약점이 잡히면 안 되지...
"저어기요. 애들은 보내면 어떨까용?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어른들과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재들끼리 놀다 오라고 해용~"
안돼~아들놈이 있어야 영감의 술 고집을 꺾을 수 있는데 큰일났다.영감까지 거든다.
"그래 그래 너희들은 나가서 데이트를 즐겨. 여기 있으면 불편하지.
오늘 같은 날은 둘이서 재미있게 보내야지. 엄마가 운전해서 갈테니
너는 나중에 택시타고 와"
"뭐라캅니까..아들도 있다가 같이 가야지..."
" 예. 같이 들어가죠 뭐"
"아냐 얘! 같이 나가서 미환이 창원구경 시켜줘잉. 어른들 시키는 대로 해라 응~"
"예.예"
아들놈이 미래의 장모 한마디에 그냥 일어난다. 불안한 표정과 체념의 표정으로
아들놈은 나한테 눈짓을 하면서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다.
저 여편네가 지금 뭐하는거여? 아직 혼인도 안했는데 벌써 품안에 사위자식다루듯이 하네. 에이. 그렇다고 저 놈은 저 여편네 말만 듣고 또 일어나냐?
나뿐놈! 나중에 집에 가면 한번 보자. 씩씩..

아이고. 오늘 점잖은 상견례는 끝났다. 미치겠네.
아이들이 나가고 나자 영감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진다.
"언니야. 술 한 병 더 가져와라. 아이다 아예 세 병 더 갖다놔라이"
드디어 발동이 걸렸다. 사투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술을 권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바깥사돈도 이제는 슬슬 풀리기 시작하고 안사돈도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코 먹은 소리가 도수가 높아진다. 운전 때문에 멀쩡한 사람은 나 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