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化粧室)
화장실이라는 단어로 사전을 찾아보면 대소변을 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 또는 건물내의 시설. 옛날에는 대문이나 집 옆에 있다하여 측간(厠間), 또는 집 뒤쪽에 지어졌다 하여 뒷간, 변소라고 한다고 쓰여있다.
60년대 말부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했고, 화장실이 실내에 자리를 잡더니 급기야 안방에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요즘에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의 화장실은 그 용도가 다양해져서 지워진 화장을 고치기도하고 헤어드라이 까지 갖추어져 있어 머리손질까지 할 수 있다. 또한 수유실(授乳室)이 겸해 있어 엄마가 아기에게 젖먹이는 평화로운 광경을 종종 본다. 코를 싸매고 볼일이 끝나면 얼른 뛰쳐나오는 곳이었던 종전의 변소의 개념은 사라지고 여러모로 편리한 휴식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있다.
유년 시절의 어머니는 '변소는 그 집의 얼굴'이라 하시며 항상 깨끗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내가 유별스럽게 화장실청소를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유년시절의 우리 집 변소는 단순히 용변을 보기 위한 장소라기보다 좀 더 의미 깊은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피난민들이 모여 작은 동네를 이룬 곳에 살 때는 공중변소를 이용했지만 막내인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 가족만 사용하는 변소가 대문 옆에 딸린 아담한 기와집으로 이사를 갔다. 엄마는 공중변소의 더러움에 진저리가 나는지 나무로 된 우리 집 변소 바닥을 결벽증 환자처럼 걸레로 닦고 또 닦으셨다.
비록 수세식은 아니었지만 구멍둘레가 하얀 타일로 되어있어 보기에도 깨끗하고 손수 손잡이를 길게 만들어놓아 몸을 숙이지 않고도 서서 뚜껑을 열 수 있게 했고, 변소 창문턱에는 나프타린을 망사 천에 싸서 걸어놓아 특유의 툭 쏘는 냄새에 코를 실룩거렸지만 그리 나쁜 냄새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오가는 시장 입구 다방의 휴지통에 버려져있는 선데이 서울 같은 주간지나 조잡한 연애소설 같은 책들을 주어다가 한 장 한 장 찢어서 네모난 나무통에 얌전하게 놓아두었는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엄마는 그 잡지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형제들이 읽어도 괜찮은지는 모르시고 뒤를 닦는데 좋은 휴지대용으로 만족해 하셨다. 오빠들과 나는 변소를 번갈아 들락거리며 볼그레한 엉덩이를 까고 쪼그리고 앉아 다리가 저리면 침을 코에 발라가며 시시콜콜한 연애이야기에 재미를 붙여 엉덩이가 시린 줄도 몰랐다. 그러나 그 재미도 오래가지 못했다. 타지에 취직하러 간 큰언니가 명절 때 집에 내려오는 바람에 재미있었던 그 잡지들은 사라지고 대신 재미없는 지나간 교과서로 바뀌게 되었지만 그래도 볼일이 끝 날 때까지 쪼그려 앉아 페이지를 끼워 맞추며 책을 넘기던 기억들이 아슴푸레 다가온다.
결혼을 하고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전방에 살 적에, 첩첩산중 시골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면서 제일 곤혹스러운 건 변소였다. 다른 집처럼 변소가 집 뒤쪽에 있지 않고 외양간 옆에 붙어있는데 경계 담도 없어 차라리 헛간이라고 해야 맞을라나. 낮은 문은 몸을 조금만 앞으로 기울면 안이 희미하게 들여다보이는데다가 볏단도 재여 있고, 농기구들이 놓여있어 밤에는 누군가 불쑥 들어와 괭이로 후려칠 것만 같고, 볼일 보러 들어가면 소가 '엄~메' 하며 길게 우는 바람에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시원하게 일도 못 보고 나오기도 하고, 발 밑으로 쥐가 휙 지나가기도 해서 바지를 미처 올리지 못하고 일어서서 뛰쳐나오곤 했다. 그 시골집에 사는 동안 큰 볼일 횟수를 줄이느라 변비가 걸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제대를 하고 서울로 나오면서 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변소의 고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자라면서 엄마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지금도 우리 집 화장실은 신발을 벗고 들어 갈 만큼 깨끗하다. 마루는 며칠씩 청소를 하지 않아도 화장실바닥은 매일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샤워기로 깨끗이 씻어내고 거울도, 수도꼭지도 반들반들하게 광택이 나도록 닦아놓는다. 남편은 화장실 사용 후의 뒤처리 때문에 항상 잔소리가 심한 나한테 넌더리를 내기도 한다.
안방 안에 있는 욕실은 나의 전용 化粧실이자 독서실이다. 안방에 따로 화장대가 없어 욕실에 화장품을 놓아두고 화장을 하기도 하고, 또 시집이나 소설, 월간지 책들을 선반 위에 놓아두고 볼일을 보면서 책을 넘긴다. 엉덩이가 아파 오고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앉아서 책을 읽는데 이상하게 변기에 앉으면 집중이 잘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저리면 볼일을 다 보고도 다시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읽던 책을 마저 보고 일어 날 정도니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다싶기도 하다.
뒷산 산책로 입구에 하얀 작은 건물이 있어 들여다보았더니 화장실이었다. 입구에 키 작은 채송화가 심겨져있고 화장실 내 거울 앞에는 앙증맞은 예쁜 용기에 장미조화가 꽂혀져있어 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는 급한 용변해결의 요긴한 장소로서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수 년 전만 해도 공공장소의 화장실이 더러워서 소변을 참고 집에까지 오곤 했는데 이제는 전국의 공공장소나 공원,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 깨끗해 졌음이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지자체를 실시하고 난 뒤부터 각 지방마다 그 지역의 이미지를 깨끗하게 심어주기 위해서 유원지나 공공장소, 심지어 시골 장터의 화장실까지도 깨끗해진걸 볼 수 있다. 카페인지, 화장실 건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예쁜 건축물이 세워져있고, 볼일 보러 선뜻 들어서면서 머뭇거릴 정도로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며 고풍스럽게 예쁘게 꾸며 놓은 곳도 있으니 이제 우리나라의 높은 화장실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니 이만 하면 화장실 문화의 선진국이라고 매길 만 하겠다.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 안에도 예쁜 그림 밑에 쓰여진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는 다시 뒤를 돌아보게 하며, 아름다운 글귀는 볼일을 보고 난 후의 시원함과 함께 환한 웃음을 화장실 거울에 남겨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