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도 대학생이다.
함 기순
평범한 주부였던 내가 오십의 문턱에 선 나이에 학문에 도전장을 던져 대학생이 된 동기가 있었다면 그건 어줍잖은 자존심과 글 쓰기의 목마름 때문이다.
집안형편상 대학을 갈 수 없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집안의 어려운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노력했고,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한 가정의 주부로서 안착했다. 신혼시절 집으로 놀러온 친구들에게 남편은 무심결에 아내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본의 아니게 남편의 주변 知人들에게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되고 말았다. 사소한 것 같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를 입어 안으로 점점 왜소해지기 시작했고 대화 중에 대학이야기만 나오면 움츠려들어 벙어리가 되기도 했었다. 대졸학력을 지닌 사람들과의 간격을 좁히려 집안일과 아이들을 키우면서 고졸의 벽을 넘으려고 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교양강좌를 찾아다니며 취미생활의 폭을 넓히기도 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서 내 삶의 본질을 높이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적으로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졸업이 뭐가 부끄러운가. 그 시절에는 (1970년대) 대학을 진학 한 여성은 소수였고, 대다수는 취업을 하고 가사를 도우며 결혼을 준비하였던 시대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려운 살림에 6남매 모두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려고 온갖 고생을 했던 엄마를 생각하니 자꾸만 속상해졌다.
차츰 내면의 혼돈 속에서 솔직해지자고 부르짖는 자아의식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초, 중, 고등학교 가정환경조사용지에 母의 학력을 **대학졸업 이라고 거짓 기재하면서 한없이 초라해졌던 내가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 할 즈음에 고해 하는 심정으로 '대학졸업'은 거짓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엄마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기우였다. "어머니. 그건 흉이 아닙니다. 엄마가 고등학교만 졸업했다고 해서, 아니 설사 無學이라도 어머니는 영원한 저희의 사랑의 존재이십니다." 학력으로 주눅이 들었던 지난날이 아이들의 명쾌한 그 한마디로 그동안 움츠렸던 나를 한껏 기지개를 펴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위로에 힘을 얻어 남편에게도 그간의 불편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 앞에서 아내의 학력을 왜 속이는가. 지금부터라도 나의 본연의 모습을 찾을 것이며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知人들에게는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내 입으로 한번도 내 스스로 대학출신이라고 말 한 적도 없었거니와 대학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침묵으로 일관했으니까. 타의가 자의가 되어 위선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지난 세월이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서 나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뚜렷하다면 계속 자기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에 안일한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늦게나마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주부들이 참여하는 사이트에 가입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욕구를 분출하는 또 다른 좋은 돌파구였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또한 주부로서의 글의 소재는 일상적이고 잡다한 넋두리 같은 글이 되었고, 그런 한 풀이 글은 일순간의 불만해소는 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장력이나 문학적 용어 등, 궁핍한 지식의 글 쓰기는 한계점에 이르면서 문학에 대한 막연한 갈증이 고취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의 문학세계를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간절한 소망은 대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나도 대학을 가자. 진짜 대학생이 되어보자'
매스컴을 통하여 사이버대학을 접하게 되면서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대학을 찾아내었다. 집안 살림도 병행하면서 온라인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주부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학점취득으로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고, 나의 핸디캡으로 작용했던 대학졸업장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들뜬 마음으로 등록을 하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공부를 시작할 때의 그 벅찬 기쁨을 어떤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넘치는 의욕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 속에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두 시간 가까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충혈 되고, 시험 때가 되면 아직도 어설픈 타자실력으로 많은 분량의 리포트를 작성하느라 어깨가 내려앉을 듯이 쑤시고, 장시간 앉아 있다보니 허리가 끊을 질 듯이 아파 온다. 전공이 문학이다 보니 문학에 관한 많은 책을 읽으면서 깨알같은 글은 돋보기를 끼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 결코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한 것이 아니라 당면한 육체적인 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건 핑계라고 내 자신에게 가혹하게 일축해 버렸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벌써 대학 3학년이 되었고, 문학도로서의 소양을 갖추어 나가는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고 참으로 자랑스럽다. 며칠 전에는 직장인이 된 아들이 월급을 탔다며 2학기 등록금에 보태라고 돈을 보내주었다. 아들의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
확고한 결심으로 선택한 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중도에 주저앉을 수 없다는 도전적인 용기가 힘에 부치는 대학공부에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늦깎이대학생이 된 아내와 엄마에게 보내주는 가족들의 응원의 박수는 지금까지 큰 힘이 되고있다.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