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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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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시나리오


BY 수련 2005-06-16

 

<단편영화 시나리오 제작>
 총 30 씬 14쪽.

제목: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

등장인물
인숙 :  그림을 전공한 38살 주부이며 결혼한 지 십 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음..
병호 :  인숙의 옛날 애인. 교수이며 한 여자의 자상한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경철 :  회계사. 인숙의 남편. 성격이 소심하고 의처증이 있음.
병호아내와 아이들. 주민1,2

#S1 카페리호 안

경철:  어때 바다가 멋있지? 나하고 결혼했으니
        여기 저기 유람 삼아 구경하는 것도 좋잖아?
인숙: 시원하고 좋네요. 얼마나 있어야 되요?
경호: 4개월 정도면 끝날 것 같아. 아름다운 섬이니까 바다구경이나 실컷 하고 오지 뭐.

인숙은 뱃전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를 본다.

경철: 심심하면 그림도 그리고 등산도 가. 아파트 근처에 산이 괜찮다고 하더군
인숙:  알았어요

#S2 관사 안

31평 아파트에 짐을 내려놓고 경철은 회사로 나가고 인숙은 아파트를 둘러본다.
아파트 내부는 기본적인 가구는 다 배치되어있다. 마루에는 체리색 3인용 쇼파와 장식장에는 텔레비전과 전화기가 올려져 있고, 주방에는 4인용 식탁과 싱크대 안에는 그릇이
정돈되어있다. 방이 세 개며 안방에는 침대와 장롱이 있고 다른방에는 책상과 책장이 다
구비되어 있다. 베란다 밖으로 산이 보인다.
두 개의 캐리어 가방 안에서 경철의 옷과 인숙의 옷을 꺼내어 장롱 안에 건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짙은 녹색의 초여름 산이 아름답다.
짐 정리를 끝낸 후에 며칠 있다가 산에 가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S3 아파트 바깥

인숙은 가벼운 등산복차림으로 아파트에서 보이던 산에 오른다.
날씨 탓인지 산 입구에서부터 땀이 흐른다.
등산객1:(손을 들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등산객2: 수고 많습니다
인숙: (고개를 숙이며)안녕하세요

길가의 이름 모를 풀꽃들을 하나 하나 눈여겨보며 인숙은 천천히 산을 오른다.
목이 마르다. 입술을 핥으며 약수터가 근처에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팻말이 보인다. 인숙은 땀을 닦으며 잠시 나무에 기대었다가 다시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 두 명이 나란히 내려온다.
인숙은 인상을 찡그리며 모자를 푹 내리쓴다.

남자 등산객: 힘드시죠. 조금만가면 약수터입니다
여자등산객: 힘내세요

인숙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인숙: (혼자말로)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듣던 음성인데?]

인숙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본다.

#S4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카페 안의 창가

인숙: 미안해, 나 결혼할거야
병호: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되겠니?. 이번 시험만 치르면 방위로 입대할 수 있어.

병호를 외면하고 막 배달되어 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만 만지작거린다.

인숙: 안되겠어. 집에서 난리야. 그리고 솔직히 너한테 남자를 느낄 수가 없어. 그냥 친구 이상은 진전이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 넌 장래가 촉망하니까 공부를 더 해. 그래서 니가 꿈꾸는 교수가 되란 말이야

인숙은 신경질적으로 빠르게 말을 내뱉고는 커피만 홀짝 마신다.
병호도 목마른 사람처럼 커피를 후루룩 마시다가 뱉어버린다. 탁자가 얼룩진다.

병호: 앗 뜨거워!
인숙: 조심하지 않고, 병호야 정말 미안해, 그냥 날 보내 주라. 널 Like하는데 Love 는 안          한다고.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병호를 바라보며 인숙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숙: 나 먼저 갈게.
병호: ( 울상을 지으며) 이, 인숙아.
인숙: 결혼식에는 오지마. 서로가 힘들 테니까.

#S 5 결혼식이 진행되는 식장 안

신랑과 나란히 서서 하객들에게 절을 하는 인숙의 눈에 구석에 서 있는 병호가 들어온다.
인숙은 얼른 외면하고 신랑의 팔을 더 꼭 쥔다. 인숙과 눈이 마주친 병호는 슬픈 표정으로 식장을 빠져나간다.

#S 6 엘리베이터 안
초등학생 두 명이 엘리베이터 안에 먼저 타있다. 막 문이 닫히려는 순간, 인숙은 소리친다.
인숙: 애들아, 잠깐 기다려. 같이 가자

초등학교 2학년은 되었을 것 같은 남자아이가 갈래머리를 한 6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번호 판에 손을 올리고 인숙을 빤히 쳐다본다.

남자아이: 아줌마는 몇 층에 사세요?
인숙    : 응, 15층이야. 너희들은 몇 층에 사니? 오누이인가 보네. 참 다정해 보이네.
남자아이: 예, 제 여동생 이예요. 예쁘죠?

인숙은 당돌해 보이는 남자아이의 검은 눈이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땡" 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10층에서 내린다.

인숙: 잘가.
아이들: (고개를 숙이며) 안녕히 가세요.

#S 7 인숙의 아파트 실내
인숙은 주전자를 가스렌지에 올려 스위치를 켜놓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군살 하나 없는 하얀 몸매를 거울에 비춰보며 인숙은 한숨을 짓는다.
잠시 눈을 감는다.

#S 8 병호의 방안

침대 위에서 인숙은 반쯤 벗은 몸을 가리며 일어서려고 한다.
인숙: 그만해 안되겠어.
병호: (숨을 헐떡이며) 왜 그러니. 조금만 더 ... 응. 인숙아 .
인숙의 연 분홍빛 젖꼭지를 애무하다가 갑작스럽게 일어서는 인숙을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쳐다보며 병호는 애원한다. 인숙은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병호의 방을 뛰쳐나간다.
병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음을 한다. 이불이 들썩이고 병호는 휴지를 이불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휴지통으로 획 던져버리고 담배를 피워 문다.

#S 9 인숙의 아파트 욕실

인숙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가슴을 움켜쥔다.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는다.
가스렌지 위의 주전자에서 김이 나며 '삑'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S 10 인숙이 매일 등산가는 산 중턱의 샘터
인숙이는 땀을 닦으며 샘터에 이르고, 부부인 듯한 두 남녀가 물을 서로 먹여주고 있다.

남자: 시원하지? 오늘은 한번도 안 쉬고 올라왔네. 당신 이제는 산 여자 다 됐어. 하하하.
여자: 다 당신 덕분이지 뭐. 아프다 핑계로 집안에만 있는 나를 산으로 끌어낸 건
      당신이잖아 . 당신이 일등공신이야. 호호호.

남자와 여자가 물을 마시고 일어서는데 남자의 눈과 인숙의 눈이 마주친다. 순간 남자의 동공이 커지고, 인숙도 덩달아 신음소리를 낸다. 순간 남자는 고개를 돌리고 인숙도 얼른 물바가지로 물을 떠서 꿀꺽꿀꺽 마신다.

남자: 내, 내려가지.
여자: 그래요, 여보.

인숙은 바가지를 놓고 바위에 풀썩 주저앉으며 부부가 내려가는 모습을 쳐다본다. 남자도 뒤를 돌아보다가 인숙과 다시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린다.

#S 11 인숙의 아파트 실내
인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아이들을 떠올린다. 남자아이와 병호의 얼굴이 겹쳐진다.
인숙은 책장한 쪽에 꽂혀있는 시집 한 권을 꺼낸다. 표지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책 하단에 -최 병호ㅡ 라는 검은 활자가 클로즈업된다. 인숙은 멍하니 책장을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서 멈춘다.
     사월 

이른 아침 이슬방울 소리에 눈을 뜬다
어디선가 낮은 비명의 꽃잎 하나 툭 떨어진다
맨발로 꽃잎을 찾으려 가슴을 던지는데
붉은 선혈을 뚝뚝 흘리며 물위로 떠가는 나
차마 건져 올리지 못해 핏방울 앞에서 짐승처럼 운다

도로에서 식당에서 마트에서 두리번거린다
나의 한쪽이 어디 갔을까 눈알이 쓰려 온다


인숙은 책장을 덮어버린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베란다로 나가 먼 산을 바라본다. 밑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인숙은 아래로 내다본다. 병호의 양손에 아이들이 매달려있고, 그 뒤로 하얀 물방울무늬의 검은 원피스를 입은 병호의 아내가 뒤따르는 장면이 나온다.

#S 12 인숙의 아파트안의 주방의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있다. 경철과 인숙은 마주앉아 저녁        을 먹는다.

경철: 오늘 뭐했니?.
인숙: 아침에 산에 갔다오고.. 책 읽고, 시장 갔다 오고 뭐 그렇지.
경철: 그림이나 그리지. 내일 집에 가서 이젤하고 물감을 챙겨와. 가는 김에 골프가방도 가        져와. 아침 일찍 공을 쳐야겠어. 몸이 자꾸 불어나네.
인숙: 알았어요.

#S 13 아파트 마당

인숙은 소나타 뒤에 가로질러 세워 놓은 렉스턴의 앞 유리창에 붙은 전화번호를 적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인숙: 여보세요. 저 죄송하지만 차를 좀 빼 주시겠어요? 저희 차가 나가지를 못하는데요.
여자: 예, 예, 알았어요. 여보, 차 좀 빼 달래요. 어서 나가보세요.
 
조금 있다가 병호가 슬리퍼를 끌고 반바지차림으로 아파트현관을 나선다.
인숙도 놀래고 병호도 놀란 표정을 짓는다. 병호는 힐끔 위를 쳐다본다.
잔잔한 꽃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인숙의 쉬폰 원피스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같은 무늬의 헤어밴드로 긴 머리를 헐렁하게 묶어 도시에서 온 여인답게 세련되어 보인다.

병호: 흠, 흠 ... ( 아무 말도 않고 고개만 약간 숙인 채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인숙: ...... (역시 아무 말 없이 소나타에 타서 시동을 건다.)

병호의 차가 시동을 건 채 뒤로 나가있고, 인숙의 소나타는 조심스럽게 후진하여 아파트를 빠져나가면서 백미러를 통해 병호를 본다. 병호도 차창유리를 통해 소나타에 타고있는 인숙을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인숙을 가만히 주시한다.

#S 14 배 선착장

선착장의 인부들은 인숙의 차를 손짓으로 배 안으로 유도하고, 인숙은 소나타를 후진시켜 카페리오 안으로 들어가 주차한다. 내려서 표를 끊고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서 배에 탄다.

#S 15 배 안 주차장

이층 객실로 들어가는 계단 중간에서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 장면이다. 차를 싣는 입구의 철판이 올려지고 배는 선착장과 멀어진다. 갈매기 몇 마리가 배를 따라온다. 인숙은  배 안에 실린 소나타 안으로 들어간다. 핸드폰을 꺼내어 발신번호를 확인한다. 숫자가 뜬다. 010 3245 ****. 누른다. '보리수'가 흘러나온다.

병호: 여보세요...
인숙: 여보세요. 전화 받을 수 있어?
병호: 음. 괜찮아.
인숙: 어디니?
병호: 학교안에 내 방이야.
인숙: 교수가 되었나 보네. 꿈을 이루어서 축하해.
병호: 겨우 지난해에 정교수가 되었어.
인숙: 응. 네 와이프 예쁘던데. 애들도 귀엽고, 남자아이는 눈이 꼭 널 닮았더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봤는데 눈이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네 아들이었어.
병호: 큰애는 날 닮고 작은 애는 지 엄마를 닮았지. 넌 애가 몇이니?
인숙: 응, (잠깐 침묵이 흐른다) 없어. 아니 낳지를 못해.
병호: (대꾸가 없다).. 배 안이니? 마산가나보지.
인숙: 응, 뭐 좀 가지러 가.
병호: 여기는 어떻게 왔니?
인숙: 응, 남편이 회계사인데 조선회사에 장부회계 정리하러왔어.
병호: 그래. 얼마나 있을 거니?
인숙: 4개월정도 걸릴 것 같다는데 몰라.  (한숨을 내 쉰다) 너 많이 변했더라. 살도 좀 찌       고 보기 좋게 그을려서 아주 건강해 보여. 교수님 티가 나던데.
병호:  그래?. 오늘 돌아오는 거니?
인숙:  그래 야지. 그 남자는 하루라도 내가 없으면 못사는 남잔데.
병호:  흠, 널 많이 사랑하나보지.
인숙: 글쎄 그걸 사랑이라고 해야하나, 집착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내가 없으면 불편한 남        자니까.
병호: 흠, 애가 없으니 더 그렇겠지.
순간 침묵이 흐른다.
병호: 곧 수업 들어가야 해. 잘 다녀와라.
인숙: 알았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인숙은 멍하니 앞만 바라본다. 차안의 시디에는 사라사태의 찌고르바이젠이 흘러 나오고 있다.

#S 16 아파트 입구에 음식쓰레기통이 놓여져 있다. .
인숙은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음식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와 쓰레기통에 비우고 돌아서는데
병호도 음식쓰레기봉투를 들고 어색하게 주춤하며 인숙을 보며 어색하게 고개를 숙인다.
인숙도 엉겁결에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선다. 사위는 어둡고 아파트 주민  두 사람이 들어오면서 병호를 쳐다보고 뭐라고 하면서 인사를 한다. 인숙은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뒤따라 병호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선다. 인숙은 숫자 15을 누르고 병호를 쳐다본다.
병호는 10를 누른다. 주민 두 사람도 5를 누른다. 인숙은 뒤로 물러서면서 병호의 팔에 인숙의 팔이 닿는다. 순간 인숙은 움찔한다.

주민 1: 민욱이 엄마는 요즘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병호:   아, 예. 예. 산에 가더니.....
주민 2: 민욱아빠가 너무 자상하니까 우리 집사람이 자꾸 바가지를  긁잖아요. 허허허.
병호:  뭘요. (병호는 머리를 긁적인다)

 

 

병호:  뭘요. (병호는 머리를 긁적인다)
땡 소리와 함께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주민 두 사람은 내린다.

주민 1,2 : 그럼....
병호   :  아, 예. 안녕히 가세요.
 문이 닫히고 병호와 둘이 남은 인숙은 병호를 쳐다본다.
인숙: 와이프가 아팠나봐.
병호: 응, 좀.. 큰 수술을 했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워낙 몸이 약해서..
인숙: 집안 일을 잘 해주나보네. 울 남편은 손가락도 까딱 안 하는데.

병호가 인숙을 쳐다본다. 인숙도 병호를 올려다본다. 침묵이 흐른다. 병호는 인숙의 손을 잡는다. 인숙은 눈물을 글썽인다.
병호: 인숙아, 보고싶었어.
인숙: (고개를 끄떡이며 ) 나도.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흔들거리며 멈춘다. 문이 열리고 병호가 내린다. 문이 닫힐 때까지 병호는 인숙을 쳐다본다. 인숙도 병호를 쳐다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S 17 인숙의 아파트 실내
쇼파에 누워서 리모콘을 돌리고 있는 경철은 인숙을 흘낏 쳐다보고는 계속 리모콘을 작동한다. 인숙은 뭔가 말하려다 말고 그냥 욕실로 들어간다.
경철은 여전히 쇼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속의 외화에 열중하고 인숙은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간다.

#S 18 주방의 식탁
경철은 말없이 반찬을 차리는 인숙을 쳐다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경철: 어제 밤에 자러 들어가니 벌써 잠이 들었더군. 나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       었어. 요즘 일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해. 그놈들의 이중장부를 만들어 주려니 골치가 아       파. 작은 방에 바다스케치 해놓은 것 보니 괜찮을 것 같군. 친구들도 놀러오라고 하지.
인숙: 안 그래도 내일은 동창회 모임이 있어서 갈까해요. 아마 좀 늦을 거예요.
경철: 그래? 너무 혼자 외떨어져 있으면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친구들과 오랜만에 실        컷 놀다가와. 마지막 배타고 오면 되겠네.
인숙: (경철을 의아한 눈으로 보며 찌개 냄비를 올려놓는다) 알았어요.
경철: 친구들도 놀러오라고 해. 여기 바다경치가 좀 좋아. 하룻밤 묵어가도 좋잖아.
인숙: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비꼬는 말투로) 자기네들 신랑은 어쩌고 마누라들이 밤을         샐 수 있나? 당일치기로 왔다가야지.
경철: (눈을 가늘게 뜨며 인숙을 바라본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며) 흠..........

경철은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간다. 인숙은 주전자를 가스 불에 올려놓고 머그잔에 걸름종이를 깔고 원두커피가루를 한 수저 넣고 주전자의 물을 부었다. 조금 있다가 종이를 들어올리니 헤즐럿향이 나는 원두커피가 인숙의 코를 자극한다. 인숙은 커피를 마시면서 베란다 바깥을 쳐다보고 서 있다. 병호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병호를 쳐다보며 무언가 말을 하고  병호는 고개를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병호의 차가 천천히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S 19 배 선착장. '대양 카페리호'라는 이름이 새겨진 배는 차를 싣기 위해 아가리를 벌린 채 정박하고 있다. 인숙은 차를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까만 슈츠를 입고 가벼운 핸드백 하나만 어깨에 매고 배에 승선한다. 계단을 올라 선내로 들어가려다 말고 배의 후미로 나간다.
배의 끄트머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던 병호와 인숙은 서로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병호: 어, 부산 가니?
인숙: (손가락으로 병호를 가리키며) 응, 너도? .
병호: 오늘 오후에 학술 세미나가 있어. 오전에 친구도 좀 만나보고 뭐 좀 살 것도 있어서...       집에 가니? 남편은? (병호는 두리번거린다.)
인숙: 남편은 회사에 있어. 나도 오늘 친구들 모임이 있어.
병호: 음, 그래... (인숙의 아래위를 본다.) 몸매관리를 잘하나봐. 여전하네.
인숙: 아냐.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뭐.
병호: (병호는 움찔한다) 흠... 일부러 안 낳아?
인숙: (씁쓸하게 웃으며) 아니...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결혼한 지 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무소       식이네. 네 아이들 참 예쁘더라.
병호: 뭘... 너한테 문제가 있어? 아니면 네 남편이 문제가 있니?
인숙: 처음에는 나한테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병원문턱이 닿도록 치료받으러 다녔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무정자증이라네. 그냥 포기하고 살아. 

인숙의 표정이 흐려진다. 병호도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연이어 한 개피 더 꺼낸다.
배가 지나온 자리에 생긴 뱃길위로 갈매기 두 세 마리가 끼룩거리며 뒤따라온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있던 이십대 남녀가 새우깡을 갈매기를 향해 던지자
순식간에 여러 마리의 갈매기가 몰려든다. 여자는 환호성을 지르고 남자는 다시 한번 새우깡을 한웅큼을 던지자 거짓말처럼 갈매기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인숙은 놀라며 병호에게 몸을  기댄다. 병호는 엉겁결에 인숙의 어깨를 감싸안는다. 둘이 쳐다보며 어색하게 떨어진다.

인숙: 갈매기들이 어디 있다가 저리 많이 몰려오는 걸까?
병호: 아마 무전연락을 했겠지. 하하하.
인숙: (눈을 흘기며 웃는다) 바다 밑에 숨어 있다가 나왔을 거야. 호호호.
병호: 그림은 그리니?
인숙: 가끔 이젤 앞에 앉기는 하는데 집중이 잘 안되네. 결혼 후 3년 간은 전시회도 했는데       차츰 시들해져서 요 근래는 한 점도 완성을 못하고 있어.
     넌, 학자타입이라 역시 교수직이 어울리는 것 같아. 네 와이프는 어떻게 만났니?
병호: 응.. 공모전에 글을 냈는데 같이 당선이 되어 시상식에 갔다가 같이 내려오면서 가         까워 졌어. 전화를 한 두 번 하다가 자연히 몇 번 만나게 되고...참 순수한 여자였어.
인숙:  그래 보이더군. 착한 여자 같아. 너하고 잘 어울려. 큰애는 너를 닮고 작은 애는 네         와이프를 많이 닮았대?
병호:  음... 너도 아이가 하나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인숙:  ( 말없이 바다만 내려다본다) .....
병호: 어, 미안해. 나는 그저... 다 온 것 같아. 내리자.
인숙:  응. 그래.
 인숙과 병호는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간다.

병호: 차를 안 가지고 왔니?
인숙: 응, 큰 짐이 없어 그냥 선착장 주차장에 세워놓고 왔어.
병호: 그래. 집이 어딘데?. 내가 태워 줄게.
인숙: 서대신동이야.

인숙은 병호의 렉스턴에 올라탄다. 차는 배 안에서 빠져나와 부산 시내로 진입한다.

#S 20.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동네.

25층 고층 아파트가 촘촘히 들어서 있는 단지로 차가 들어간다.
인숙: 잠깐 차 한잔 마시고 가.
병호: 응?. 남들 눈이 있는데 괜찮겠어?. 동네에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인숙: 친척이라고 하면 되지 뭐. 괜찮아. 내 사는 거 보고싶지 않아?
병호: 그런 건 아닌데.... 그래 잠깐 들어갔다 가지.

#S 21. 인숙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인숙: 주차장에서 현관까지 엘리베이터가 연결되어있어서 편리해.
병호: 좋은 아파트에 사는구나. 

 인숙과 병호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는 초고속이라 22층 번호 앞에 이십 초만에 '땡'하고 멈춘다.

#S 22. 인숙의 아파트 실내.
 인숙과 병호는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선다.
병호는 넓고 바로크 풍의 가구로 장식된 실내를 둘러보며 벽에 대형으로 걸려있는 인숙의 결혼 사진 앞에서 멈춘다. 인숙은 곧바로 주방으로 가서 커피메이커에 물을 부어놓고 스위치를 켜고 냉장고를 열어 노오란 참외를 꺼내어 카키색 가죽 쇼파가 놓여있는 거실로 나온다.

인숙:  병호야, 이리와.
병호: 으응. (주춤하며 쇼파에 앉는다) 네 결혼식에서 봤었는데 가까이 보니 잘 생겼구나.
인숙: 참, 그때 왔었지...  평범한 얼굴이지 뭐.
병호: 자주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나봐.
인숙: ( 참외를 깎으며) 주로 부산이나 근교에 있는 회사의 회계장부를 봐주었는데 이번에는 거제로 가게 되었어. 매일 배를 타고 출퇴근하기도 번거롭고 하니까 그냥 내가 따라 갔어. 아이도 없으니 혼자 집에 있기도 그렇고 남편도 따라가기를 원하고... 한 삼 개월이면 끝난다니까 구경도 하고  좋지 뭐, 그래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네. 빠르다.
병호: 벌써 그렇게 됐어?. 남편이 잘해 주나보지?
인숙: (대답은 않고 과일을 깎다가 말고 일어서서 주방으로 간다) ......

인숙은 붉은 장미 무늬가 있는 영국 제 커피 잔에 커피를 따라 다시 거실로 나온다.

인숙: 마셔.
병호: 응, 정말 오랜만이구나. 십 년만인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너는 하나도 변하       지 않았네.
인숙: (얼굴이 붉어지며) 무슨 소리야. 많이 늙었지 뭐.

병호는 맞은 편의 붉은 석양이 깔린 배경에 나룻배가 갯벌에 비스듬히 매여져있는 40호 유화를 바라본다.

병호: 저 그림 배경이 송도 아니니?
인숙: 맞아. 너하고 같이 가서 스케치하고 왔었지. 넌 팔레트에 물감을 짜 주고는 즉흥시를       읊었지 아마. " 저 붉은 노을 속으로 암사슴 한 마리와 늑대가 뒤엉켜....."
병호: 하하하 그래 . 그림 그리다가 말고 갯벌 뛰어가다가 네가 넘어져 옷을 다 버리고, 바       다로 뛰어 들어가 옷 입은 채로 목욕을 했었지. 부끄럽다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가 내 옷을 뒤집어쓰고 버스를 타고 너희 집에 데려다주었지.
인숙: (병호를 빤히 쳐다본다) 응. 너는 나의 기사였어. 항상 내 옆을 떠나지 않았는데 나는       왜 네가 친구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병호: (커피를 들다가 잔이 옆으로 기우려져 옷에 쏟아진다.) 어, 어,...
인숙: 어머나, 잠깐만 기다려.

인숙은 수건을 가져와서 병호의  와이셔츠와 바지를 닦는다. 병호는 몸을 움츠리며 난감해 한다. 인숙은 병호의 바지 혁대 밑으로 닦다가 움찔한다.
병호: (인숙의 손을 잡는다) 내, 내가 할게.
인숙: (인숙은 얼굴이 빨개진다) 그, 그래...
     와이셔츠는 잠깐 벗어봐, 그냥은 안되겠어. 얼룩이 심한데...
병호: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 어, 괜찮아.
인숙: 아무래도 안되겠어. 건조 세탁기라서 세탁하면 금방 탈수 할 수 있어.
병호: (와이셔츠를 쳐다보며) 그, 그럴까.

병호는 와이셔츠를 벗어 인숙에게 건넨다. 인숙은 뒷 베란다로 들어가고 병호는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에 세미나에서 만나자고 한다. 인숙은 병호의 바지를 보며 수건으로 다시 닦으려 한다. 병호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고 인숙은 서슴없이 병호의 허벅지 쪽의 젖은 수건으로 닦아낸다. 병호의 바지 지퍼 쪽이 불룩 일어선다. 인숙도 멈칫한다.

인숙: 아무래도 바지도 벗어야겠어. 와이셔츠 마를 동안 널어놓으면 될거야.
병호: 으, 응....
병호는 주섬주섬 바지를 벗는다. 병호의 팬티가운데가 불룩 치솟아 손으로 가린다.
인숙은 병호의 바지를 널어놓고 남편의 파자마를 들고 와서 입으라고 준다.
병호가 입으려고 하자 갑자기 인숙은 파자마를 뺏는다.

인숙: 입지마. 너한테 남편 옷을 입히기가 싫어. 그냥, 그대로 앉아있어.
병호: 왜 그래?.
병호는 파자마를 다시 뺏으려하고 인숙은 주지 않으려고 하다가 둘이 끌어안는 모양새가 된다. 인숙은 병호의 가슴에 안긴다.  병호도 인숙을 꼭 끌어안는다.

인숙: (인숙은 울먹이며) 남편의 더러운 기가 너한데 옮을까봐 입히기 싫어.
병호: (인숙의 얼굴을 쳐다본다) 왜 울어.
손으로 인숙의 눈물을 닦아준다.
병호: 힘들게 살았구나.
인숙: (고개를 끄떡인다) 응, 자기에게 결점이 있으니 나를 꼼짝을 못하게 해. 요즈음은 조금 덜하지만 전에는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나봐. 숨이 막혀서 몇 번이나 이혼하려했지만 엄마 때문에 그냥 참고 사는 거야. 이혼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엄마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적 있었어. 그 후로 남편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 버릇이 어디 가니? 하루 일과를 일일이 보고해야해. 이제는 나도 만성이 되어 그냥 포기하고 사는데 때때로 죽음이 자꾸 밀려와.
병호: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면 되잖아.
인숙: 시댁에서도 그렇게 하자고 하고, 엄마도 그러라고 하는데 그건 또 절대 안한대.
     그냥 둘이 살면 된다나. 난 아닌데. 정말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 남의 아이라도....
병호의 입술이 인숙의 말을 막는다. 인숙은 물기 젖은 눈으로 병호를 쳐다본다.
병호의 혀가 인숙의 입 속으로 밀려들어오고 인숙은 병호의 혀를 부드럽게 터치한다.
인숙의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자 병호는 인숙을 안고 카페트가 깔린 거실 바닥으로 눕힌다. 인숙의 브라우스가 단추를 하나 하나 열자 아이보리 레이스가 달린 브라자가 드러난다. 병호는 등뒤로 손을 넣어 브라자를 벗겨내자 분홍빛 젖꼭지가 단단하게 하얀 가슴가운데 앙증맞게 꼿꼿하게 내민다. 병호는 젖꼭지를 입안에 넣어 살짝 문다.  인숙은 가느다란 신음을 내며 다리를 오므린다. 한 손으로 인숙의 탄력 있는 가슴을 움켜쥐고 한 손으로 인숙의 바지를 끌어내린다. 작은 팬티가 밀림만을 겨우 가리고 떨고 있다. 그 안으로 병호의 손이 미끄러지듯이 들어간다. 인숙은 더욱 더 다리를 옥죄고 뜨거운 입김을 뿜어낸다.
인숙: 으,음...
병호: (젖꼭지에 입을 떼어 인숙의 배꼽으로 옮겨가면서 애무를 계속한다. 병호는 인숙의 봉곳한 가슴을 만지며 혓바닥으로 인숙의 가장 은밀한 곳으로 더듬어 내려간다. 인숙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비틀고 병호는 인숙의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애무한다. 인숙의 입에서는 점점 소리가 커지고 병호는 애무를 멈추고 한껏 부풀어있는 자신의 패니스를 인숙의 깊은 동굴 속으로 거칠게 밀어 넣는다. 인숙은 눈물을 흘린다. 병호도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물기 젖은 얼굴 위에 얼굴을 밀착시키고 가만히 엎드려있다.

인숙: 아, 이런 기분 처음이야. 한번도 ...절정에 도달해 본적이 없었어. 정말...
병호: 그럼 결혼하고 오르가즘을 한번도 못 느꼈다 말이야?
인숙: 응, 남편은 조루증이 있는 것 같아. 애무도 없이 혼자서 사정하면 그냥 내려와.
병호: 음...
인숙: 그래서 가끔 혼자서 자위를 해. 하고 나면 비참해져서 잘 안 하려고 하는데...
병호는 인숙의 입술을 가만히 누른다.

#S 23. 선착장
인숙은 배를 타고 다시 계단을 통해 배의 후미로 나간다.
병호도 아까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인숙: (웃으며 병호에게 다가간다) 세미나는 잘 마쳤어?
병호: 응, 넌 친구들 모임에 늦었지?.
인숙: 괜찮아 . 워낙 수다가 많은 애들이니까 내가 늦어도 상관 안 하는 것 같아.

4월말경의 오후 7시 마지막 배의 사위는 어두워진다.  불빛이 보이고 바다는 캄캄하다.
병호: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있겠네.
인숙: 응 . 아까 전화 왔어.
병호는 인숙의 손을 잡는다. 인숙도 병호의 손을 꼭 잡으며 기대어 선다.
인숙: 아까는 정말 좋았어. 넌 아직 정력이 넘치나봐. 호호호
병호: 아직 38살인데 한참인 것 아니니? 하하하

밤바람이 차가웠지만 인숙과 병호는 까만 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인숙: 내 차는 주차장에 있으니 너는 차를 타고 바로 가. 나도 뒤따라갈게. 같이 들어가면         좀 그래.
병호: 벌써 죄인이 되었어? 후후후
인숙: ( 손으로 병호를 툭 친다) 그래. 불륜을 저질렀으니까. 후후후

#S 24 인숙의 아파트
경철: 오늘 친구들 만나니까 좋았어? 얼굴이 환하네.
인숙: 맨날 만나면 수다나 떨다가 오는 거지 뭐, 당신 저녁은 먹었어요?
경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오늘 저녁을 같이 했어. 끝마무리 잘 해달라고 아부하는        건지 식사대접이 아주 융숭하더군. 당신은?
인숙: 낮에 친구들이랑 많이 먹어서 생각이 없어요.
 #S 25. 침대
인숙은 눈을 감고 있지만 낮에 병호와의 정사를 생각한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몸을 뒤척인다. 경철은 코를 골며 잠이 깊이 들었다.

#S 26. 산부인과
인숙은 아파트 근처의 작은 산부인과의 여의사 앞에 앉아있다.

여의사: 임신 2개월입니다.
인숙: 예? 임, 임신이라구요?  저, 정말이세요?
여의사:(여의사는 안경너머로 눈을 깜빡이며 ) 38살에  첫 임신을 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         랍니다. 몸조심해야해요. 노산이니 아마 낳을 때 고생할거예요. 요즘은 제왕절개하면         되니까 그리 염려는 안 해도 되지만. 어쨌든 축하해요.
인숙:  생리가 한번밖에 빠지지 않았는데 벌써 2 개월 째가 되나요?
여의사: 그럼요. 생리가 끝나고 바로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생명체          가 형성되는 거예요. 이미 하나의 생명체로서 나팔관을 거쳐서 자궁에 착상하게 되          는 시기가  2개월로 접어들게 된답니다. 곧 입덧이 시작될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증상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요.
인숙:  (표정이 일그러진다.) 입덧이라구요?
여의사:  예. 신음식도 먹고싶고 김치 등 여러 냄새가 싫어 질 수도 있답니다. 그래도 아기          를 생각해서 잘 먹어야 합니다.
인숙:  예....
인숙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진찰실을 빠져나온다.

#S 27. 아파트 마당
병호의 아내와 두 아이가 맞은편에서 다가온다. 아이들은 인숙을 보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 아줌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병호아내: (미소를 지으며)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인숙: 아, 예. 잠깐 밖에..... 애들아, 안녕.
병호의 아내와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아파트 상가 쪽으로 걸어간다.
인숙은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자리에 한 동안 서있다.

#S 28. 아파트 실내.
인숙은 주전자를 가스 불에 올리다가 그만두고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꺼내어 컵에 붓는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비춰보고 배를 만져본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S 29. 6월 달력을 보며 인숙은 짐을 싼다. 전화벨이 울리고 인숙은 전화를 받는다.
인숙: 예, 준비 다했어요. 당신은 언제 올 거예요? 10 분후에요?
     알았어요. 예. 예.......
인숙은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른다.
인숙:  여보세요. 나야. 인숙이..지금 통화 할 수 있어?
(병호의 얼굴이 나온다.)
병호: 응, 괜찮아. 수업 끝났어.
인숙: 우리 오늘 떠나. 남편일을 다 마쳤나봐.
병호: 아니 벌써? 아 ,그렇구나. 넉 달이 지났네.
인숙: 병호야. 잘 지내. ... 그 날...일..을 잊을 수가 없어. 고마워...
병호: ......무슨...나도. 너 요즘 얼굴이 안 좋던데 몸은 괜찮은 거니?
인숙: 응, 괜찮아. 몸살기운이 있었나봐.
병호: 부산으로 돌아가니? 음, 가끔씩 전화해. 밥 잘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남편하고도 잘         지내고... 세월이 가면 점차 나아지겠지. 널 너무 사랑해서 그런다고 여겨.
인숙: ..........
병호: 내 말듣고 있는거니?
인숙: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응,  잘 지낼게.
병호: 우는거니? 그러지 마라. 가끔씩 전화하고 그러면 되지 뭐. 정 보고싶으면 한번씩 만나       면되고.....
인숙: 병호야, 난 ...아이가 정말 갖고싶었거든. 내 아이를....네 애들 참 귀엽더라.
병호: (전화만 든 채 아무 말을 못한다)........
인숙: 전화 끊을게. 잘 있어.
병호: 그래. 잘 가.

인숙은 전화기를 닫으며 흐느껴 운다.

#S 30. 배의 뒷 갑판.
경철: 넉 달이 금방 지나가네. 처음에 올 때는 지루할 것 같더니.. 당신도 그렇지?.
인숙: 예.. 그래요.
경철: 요즘 당신 이상해. 밥도 통 못 먹고 꼭 임신한 사람처럼 신 과일만 찾고. 왜 그래?
     혹 상상 임신한거야? 하하하 참 내. 애들 있어봐 우리가 이렇게 같이 다닐 수 있어?
     애들 학교 때문에 나 혼자 떨어져있어야 하는데 애들이 없으니 편하고 좋잖아.
     안 그래?.  요즘 애들 키우기도 힘들대. 거기다가 잘못되기나 해봐 평생 골병들어.
인숙: (경철을 빤히 쳐다보며) 아기가 있으면 좋잖아. 내가 아기를 하나 낳을까요?.
경철: 뭐? 뭐라고 했어? 당신이 아기를 낳는다고?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랬다가는
      죽여 버릴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비가 올 것 같은데 선실로 들어가자.
인숙: 먼저 들어가요. 난 멀미가 날 것 같아서 조금 더 있다가 갈게요.

경철은 인숙을 힐끔 쳐다보며 선실로 들어가 버린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갑판에 나와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선실로 들어간다.
인숙은 머리에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끝없이 하얀 포말을 일어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내밀고 있는 인숙의 몸이 바다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새우깡을 던져주지도 않는데 갈매기 떼가 배를 따라오며 끼룩끼룩 거리며 인숙의 머리 위를 날고 있다.
인숙은 갈매기를 잡으려는 듯이 난간에 발을 올리고 팔을 내민다. 인숙의 몸은 갈매기처럼 바다로 날아간다. 배의 엔진소리와 갈매기 떼의 울음소리만 요란하다.
소나기로 변한 비는 사정없이 바다로 떨어진다. 인숙을 삼킨 바다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뱃길만 만들어 내며 바다를 가르고 나아간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