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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자녀에게 식당에서 술을 권하는 부모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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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난 아들놈!


BY 수련 2005-05-17

5월7일에 아들놈 회사에서 '어버이날 행사'초청장이 왔다.
마침 7일에 꼭 참석하고 싶은 시화전이 열리는 서울에서 작가들과의 만남에
가고싶은터라 오후에 가면 되겠다싶기도하고, 다음 날은 보고싶은
카페의 멋진 만남도 계산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런 계산은 남편이 가지않고 나 혼자 갔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슬며시 남편에게 운을 뗐다.
"쉬는 토요일이 아니라서 못가겠죠?"
"무슨소리야. 나도 가야지."
"어떻게? 결근하고?"
"못 찾아먹은 휴가를 내면 되지."
어휴~ 모든게 수포로 돌아가버리는 좌절의 슬픈 순간이었다.

아들을 보고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당연히 가야한다는 남편을 어떻게 떨궈놓고 간단말인가.
포기와 함께 마음을 달리 먹고 좋은 기분으로 부부동반해서
자식을 만나러 가야지.

남편이나 나나 둘 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어버이날이라해서 꽃을
달아 드릴때가 없다. 어느 새 자식들에게 꽃과 용돈을 받는
부모가 되었음이 서글픔보다 뿌뜻함을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개인적인 일은 다 접어두고 오로지 아들놈의 변한 모습이
보고싶고 사서 고생하는 애처러운 딸년의 얼굴도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아들이 교육받는 곳에 도착하였다.

입구는 군대처럼 베레모를 쓴 경비군인이 총을 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그 옆에는 면회실겸 매점이 있어 꼭 군대에 아들면회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차 넘버에 '경북,울산, 전남등 여러지방에서 올라왔음이 표가 났다.
부모님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고, 경남 넘버를 단 우리 차에서도
약간은 촌스러운 우리 부부가 내렸다.

그래도 한껏 멋을 낸다고 큐빅이 잔뜩박힌 하얀 탑을 속에 입고
겉에는 청록색 슈츠를 입었는데
왜그리 떨리는지..옷 사이로 화창한 날씨와는 다르게 바람이 솔솔들어와
병아리처럼 덜덜 떨면서 양지쪽으로만 옮겨다녔다.

경남은 여름으로 접어들었는데 서울은 아직도 봄이 여물지도 않았나보다.


작은 봉고가 한 대 오더니 까만 양복을 입은 단아한 여자 두 명과 말쑥한
청년 5명이 내려선다. '와 뉘집 아~들들인지 잘 생겼네'
어, 그런데 반갑게 웃으면 다가서는 장정! 내 아들놈이다.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는 어깨를 감싸안으며
등어리를 툭툭친다. 내가 어미인지 자식인지 헛갈린다.

-보살핌에 감사합니다-라는 리본이 달린 카네이션을
남편과 내 가슴에 달아주는 내 아들놈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세상에 부모가 나 혼자인것만 같다. 
그리고는 다른 부모님들에게도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물론 다른 청년들도
아가씨도 우리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짓는다. 
아들놈의 귀에 소곤거린다.
'어이, 저 여자애들도 같은 동기니?"
"녜, 몇 명있어요.저리보여도 보통내기가 아니예요"
그렇겠지. 요 앞번 공수훈련도 남자애들이랑 똑 같은 조건으로
훈련을 받았다는데 한 사람의 낙오자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똑부러지게 생겼다.

 

버스를 타고 깊숙히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주변의 조경이 봄의 햇살에

초록의 어울림과 연산홍의 울긋불긋한 조화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내부시설을 둘러보는데
미리 의논을 했는지 부모님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게
질서정연하게 구경시켜주다가 서로 마주치면
아들놈과 동기생은 상대부모님들께 깍듯이 인사를 하고 우리도
엉겹결에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시간에 맞춰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아들놈의 숙소로 들어가니 평소에 지저분하게 널려놓던
습관은 어디갔는지 너무 깨끗하게 정돈되어있어 우리 온다고 청소했느냐고
물으니 항상 이렇게 해 놓는단다.
아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음을 확인하니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다.

그동안 받은 교육과 훈련내용을 담은 영상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예절,에티켓, 체력다지기, 밝힐수없는 여러
훈련들을 받는 모습을 보니 새삼 내 아들이 자랑스럽다.
아들의 손을 꼭 잡아본다.

마지막으로 점심 만찬때 두 명의 교육생이
그간 받은 교육소감을 발표하는 자리가 되었다.
맞은편이 앉은 얌전해보이면서도 다부져보이는
여자아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마이크앞에서
똑똑하게 소감을 말하는데 전혀 더듬거림도 없이
말한다. 뉘집 딸인지 정말 똑똑하다.
다음은 남자 대표가 호명되는데 우리 아들과 같은 이름이다.

옆자리의 내 아들이 일어서 나간다.
일언반구 귀띰을 안해주더니만..
내심 불안해 죽겠다. 평소 말이 없는 놈인데
더듬거리면 우짜꼬, 말문이 막히면..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그러면서도 귀와 눈은 아들놈에게 꽂혀있다.

괜한 우려다.
'우리 아들 맞나?'
어쩜 그리도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지,
메모지 한 장 없이 많은 사람들앞에서 늠름하게
소감을 피력하는 모습에 홀딱 반하겠다.

경상도 억양은 어디로 갔는지 아나운서(내 생각에)처럼
매끄럽게 너무 잘한다.
자리로 돌아온 아들놈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미리 연습을 했냐?"
"웬걸요. 어제 저녁에 갑자기 발표하래서 그냥 준비도 못했어요"
ㅎㅎㅎ 내속에서 나온 놈 맞나??!! ㅎㅎㅎ
자꾸 주책스럽게 웃음이 삐져나온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준비해간 디카로 지정된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아들과 함께 화정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에 아들이 보낸 문자에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하던 일이 생각난다.
여자친구가 없어 여동생에게 친구소개하라고 했더니 
안해도 된다는 말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뜻이다. 

후배 중에 전문적인 중매장이는 아니지만
역학을 공부하다보니 주위에 아들,딸들을 소개시켜주는 이가 있는데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정보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아들놈이 사귀는 여자친구는 초등학교때 동창생이며 그 엄마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같은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안면은 있다.

 그 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갔고
아들놈에게서 동창생사이트에서 만나 가끔씩 차도 마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친구 이상으로 진행되지도 않았고,
그 엄마도 후배에게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중매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은터라 우리 아들은 해당사항이 없겠네 싶었다.

그 엄마가 너무 수다스럽다는 기억만 간직한 나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먼저 그 엄마를 떠올렸기 때문에
마음이 더 내키지않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교회를 지나치게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지도 알고. (일요일에는 돈 지출도 안되고

남의 집 제삿밥도 안 먹고, 십일조는 철두철미하단다)

물론 신앙가지고 왈가왈부하지않으리라 했지만
그래도 같은 종교면 좋겠다는 생각이기에 좀 걸린다.

아들놈이 장손인데 제사를 안 지낸다면, 제삿밥도 못먹겠다면,
조상님께 절도 안 하겠다고 고집피우면 일가친척들을 볼 면목도,
특히 남편의 태도가 더 걱정스럽다. 지금의 내 마음은

재산도 물려주지 않겠지만 제사도 최대한 줄여서 물려줄 생각이다.

조부모님도 한 날로 뭉치고 우리가 죽고나면 역시 한 날로 정하게 유언을 하고,

그것도 귀찮다고 생각되면 제삿날에 미사에 올려 동생식구와 같이

미사를 보고 저녁이나 먹으라고 할 참이다.

내 평소지론은 어느 종교든 서로 존중해야한다는 주의이고,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실제로 절에가면 대웅전 앞에서 90도 각도로 절을 하면서
'부처님, 조용히 잘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하고,
아는 집에 놀러갔을때 구역예배 중이면 같이 앉아 찬송가를 응얼거리며
목사님의 기도에 눈을 감는다.

어찌 보면 날라리 같지만,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함에 있어 서로의
가는길이 다를 뿐이라는 믿음에 타 종교에 거부감을 가져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여자애를 들먹이며 슬며시
아들놈에게 불만스럽게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니
정색을 하면서 그 여자애는 자기 엄마처럼 교회에 열성적이지는 않고
결혼하면 시집의 풍속에 따르게 할거란다.
벌써부터 편을 드는데 괜히 심통이 난다.

요즘은 시집오는게 아니고 처가집에 아들을 보낸다는 말이 있단다.

고부간의 갈등은 옛말이고 요즘은 장모의 간섭에 사위들이

꼼짝못한다는 말이 있다.


서울,연,고대 출신이 아니면 안된다더니
@#$에 취직했다니까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도 마음이 싹 바뀌었나보다.
전해 들은 바로는 어릴때 봤던 아들을 상상했다가(배가 나오고 키도 작고 통통한 편이었음)
딸을 배웅해주는 모습을 자기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니 너무 잘 자랐더라고 
후배에게 말하면서 사윗감으로 마음에 쏙 든단다. 
그리고 덧 붙이는 말이 더 심술이 난다.
"그 집 아들이 우리 딸을 너무 좋아하나봐. "

거기다가 그 애 아버지가 내년이 정년이라 그 안에 결혼을 시켰으면 한다고했다.
게다가 아들놈이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 애보다 한 살 어린데 이놈이 동갑이라고 거짓말을 했는지 궁합도

좋다며 하루빨리 결혼을 시켰으면 한다는데 기가막힌다. 

내년이면 그 여자애는 29살이라 급하겠지만  내 아들은 28살이 되니

아직은 결혼시키고싶은 마음이 없다. 2,3년후쯤 보내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데.

 

어버이날 행사에서 늠름하게 달라진 아들의 모습을 보니 팔불출이 된다.

잘나보이는 내 아들을 남의 엄마가 탐을 내니 요상스럽게 속이 꼬인다.

여자애가 연상인데다가 실제 아들나이로 궁합을 보니  별로 안 좋은지 후배의 말이
보통이라는데 떨떠름하다.  그 '보통'이란 말은 좋지않다고 해석해도 된다.
'궁합' 이야기를 꺼내니 아들놈이 또 펄쩍뛴다. 구시대적발상이라나.

에이 잘난 놈아.

자식들이 누구를 선택하던지 최대한 자식들 편에서 잣대를 대리라
다짐했던 내가 결국 테레비에서 자식들과 실랑이하던 보편적인 엄마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안 그래야지 하는 마음이 들수록 상대적으로 자꾸 심술보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