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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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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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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전생에 원수랬지.


BY 수련 2005-03-30

" 뭣이라?! 이게 무신소리고. 참말로 카나 거짓부렁으로카나.
어이 봐라 마누라야 야가 시방 뭐라캤노 앙!"

머리위에서 스톱해 있던 벼락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눈앞이 아찔하다.
"아이고마, 나도 모리겠심더, 아아 말을 찬찬히 들어보이소.무조건 화만 내지말고
성질 좀 수그리고 끝까지 들어보라니께요"
"그래 정 니가 선생을 못하겠다면 적을 두고 공부해라"
"아빠 그렇게는 안돼요. 학교일이 그렇게 수월 한게 아니라서
두가지는 다 못해요. 사표를 내고 공부에만 전념할랍니다"
울음먹은 소리로 아빠를 쳐다보며 말하는 딸년.
어휴 저놈의 가시나! 고마 한대 쥐어박고싶다.

술잔을 탁! 상에 놓는데 반은 다 엎지러졌다.
"뭐, 사표? 니 지금 말이라고 하나. 허허 참 내.ㅎ허허허"
웃는건지 우는건지 도무지 감을 못잡겠다. 충격으로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나?!!
나는 그저 죽여줍쇼하고 머리만 조아리고 앉아 갈라진 뒤쿰치만 쥐어뜯는다.



설을 일주일 남겨놓고 딸이 내려왔다.
그전에 전화로 사표를 내겠다고 일방적인 선언을 한 터이고
학교에서도 못믿기어 교감선생님이 나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었다.부모의 허락을 받아야한다며,
무슨말을 해야 할것인가." 애가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럼 사표처리합니다"
어제오늘 결심한 터가 아닌데 5년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고있었는데 더이상 혜은이의 마음을 잡아두지를 못하겠다.

덜컥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다고 동의를 하고나서
일주일을 잠을 설쳤다. 남편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쩌나.
생전에 제대로 된꿈을 꾸어보지 않았는데
일주일동안은 산에서 떨어졌다가 차에 치였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가
별의별 꿈을 다 꾸는 악몽속에서 설을 어찌 쇠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그전에 남편에게 말하려다가 마침 인사발령이 나서 좋아하는 모습을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않았고, 또 아이들이 내려온다니까 그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남편이 두려워 표도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앓았다.

내려오자마자 아빠에게 말씀드리겠다는 딸을 한사코 말렸다.
설쇠고,친척들 다 가고,
또 네 오빠도 가고나면 그때 조용히 말씀드리자고 미루었었다.

먼저 사표를 냈다는 말을 하지말자고 둘이 말을 맞춘 다음에
올라가기 하루전 날,
인사하러 온 조카들을 다 보내고 기분좋은 남편을 보면서 나는 이제 죽었다.
땅으로 꺼지고 싶고 하늘로 날아가버리고 싶었다.

"봐라 혜은아. 니가 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얼마나 힘든지 아나 모리나?
취업이 안되어 난리인데 니는 무신 배부른 소리를 해샀노.앙?"
"아빠 잘아요. 하지만 아무리 참고 해 볼려고 해도 도저히 이건 아니다싶어요"
"세상에는 지가 하고싶은거 다할 수있는 세상이 아이다 말이다.암말말고
그냥 댕기라.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이 된다. 알았나"
"자꾸 욱박지르지만 마세요.
당신에게 일일이 말은 안했지만 야가 교대 들어감시로부터
지금까지 내내 못하겠다고 그랬어요. 실습나갔을 때도 안 가는바람에
그 학교가 발칵 뒤집어 졌다니께요. 내가 얼매나 달래고 또 달랬다고.
졸업만 하라고, 그라고 일년이라도 해보라고. "
"뭐, 그럼 왜 그때 말 안했어? "
"그랬다가는 뼈도 못추리게. 휴,그래요 차라리 그때 말할걸, 아니
교대들어가서 휴학계 내고 싶다고 할 때 그때 그럴걸.
이제와 생각하니 뼈속깊이 후회가 되네요"
" 치아라마. 너거 둘이 똑같이 한 통속이 되어서 날 골탕멕이재 에이 씨"

자리를 박차고 집이 흔들 흔들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에구 이놈의 가시나야 너땜에 내 명대로 몬살고 죽겄다. 아이고 내 팔자야!"
"그러면 말 안하고 사표 낼걸 그랬나. 엄마가 설에 와서 말하라며.내려오자마자 할려니
올라가기 하루전날 하라며? 내보고 우짜라고 아 미치겠네. 내가 연예인한다고
했으면 우리집이 발칵 뒤집어 질 뻔했겠네"
" 니가 내 손에 죽고 싶냐?"

자랑이 아니라 어릴때부터 예능에 소질이 많았다.
kbs어린이 합창단에, 청소년오케스트라악장까지 하면서 바이얼린선생이
예고를 보내라고 했지만 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부터 바이얼린렛슨을 끊어버렸고, 평범하게 공부를 해서 효도나 하라고 했지만
딸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딸년은 취미로만 바이올린을 했고 이과를 선택한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처음 수능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면서 남편이 니가 원하는 대로 못가면
아빠가 정하는대로 가라고 한게 교대였다.
재수끝에도 원하는 점수를 얻지못해 실망을 했지만 어쩌겠는가.
호랑보다 더 무서운 지 아빠에게 감히'한번 만 더" 라는 말을 입밖으로
낼수가 없는걸.
1지망도 교대 2지망도 교대 3지망은 약대.
지금 생각하니 약대를 보냈으면 낫지않았을까 싶었지만 ...

이미 엎지르진 물!
줏어 담을수는 없다.
그 날 밤늦게 들어 온 남편의 발악에 가까운 횡포에 나는 덜덜 떨기만 할 뿐,
어떤 대항도 입도, 방긋 못했다.
'그래 소리를 질러서라도 속상함을 푸세요.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디 있습디까.
다 때려부셔도 암말 안할께요. 내가 죄인이로소리다.'
간이 오그러 붙어 남편의 하는양만 지켜보았다.

우당탕 우지끈~ 액자가 날아갔다.
국방대에서 찍은 가족사진속의 혜은이의 웃는 모습을 보더니
"다 필요 없다. 문디 가시나 사진도 보기싫으니 없애뿌리라"
아이고 저 비싼 액자 다 부셔졌다. 처음 정식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배웠답시고 몇해 걸러 스냅으로 찍어 확대를 해서 걸곤하다가
멋지게 수정된 사진인데. 돈이 얼만데.. 던질때 받을걸. 아까워라 쯧쯧!

"니도 꼴뵈기싫으니 꺼져라. 내일 당장 저 가시나하고 서울로 가삐라"
슬금슬금 방으로 들어가니 겁먹은 복길이를 꼭 끌어안고 울먹이는 딸년이
가여워진다. "그냥 절 때리라 하세요."
" 니 때릴데가 어디있다고.
괜찮아. 어차피 알아야되는데 아빠가 충격이 크셨나봐"
"내일 나는 가면 되지만 엄마는 어떻게해. 흑흑"
"됐어. 너거 옴마가 언제적 옴마냐.걱정붙들어매라이. 내가 알아서 할껴.
안되면 이판사판이지뭐 나도 보따리 싸들고 서울로 올라가지 뭐"

다음 날. 용감한 척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엄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딸은 서울로 올라가고 패잔병처럼 나만 남겨졌다.
우짜든지 죽여줍쇼해야지. 아니다 그러면 남편은 더 배신감에 치를 떨것이다.
그러면? 됐어. 딸에게 전화를 해서 작전을 짰다.
" 나도 네편을 안들고 욕을 할테니 서운케 생각마래이. 아빠보는데서
전화를 할테니 그리 알고 있거라이"

그날 나도 이불 뒤집어 쓰고 드러누웠다. 연기가 아니라도 심신이
힘들어 거짓말처럼 토,일요일 이틀을 밥도 안먹고 산 송장이 되어버렸다.
남편은 남편대로 마루에서 생활하고 아예 둘이 대면도 않고 며칠을 지냈다.

나야 몇년을 딸의 투정을 들으면서 언제쯤 저 화약이 폭발할까 조마했지만
딸이 학교 선생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늘어놓았던 남편의
그 충격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내년쯤에나 시집보낼거라고 여기저기 신랑감도 알아보는것 같았지만
남편을 바라보는 나는 속으로 '시집은 무슨, 딸이 딴 생각하고 있는줄도 모르고'
그러나 딸이 사표를 내면 당장 의료보험공단에서 사무실로 연락오는데
숨길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깨가 쳐질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노.

아이고 더는 못 버티겠다 싶어 딸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에게 전화드려라."
"뭐라고 말하라고?"
"무슨 말이든 해. 나도 이대로 더는 못살겠다"
.....
"엄마!아빠 전화 안받는데요"
.....
이어 남편의 전화다.
"당신이 혜은이에게 전화하라고 했나? 내 일부러 안 받았다. 취소한다나?"
"아뇨. 사표내서 미안하니까 전화했겠지뭐"
남편과 5일만의 첫 대화였다.
" 내가 지금 몸이 억수로 안좋다. 밥도 안넘어가고 호흡도 제대로 안되는것 같고
가슴이 뛰어서 일을 못하겠다.혜은이 그 아가 와그라노. 당신은 진작에 눈치를 챘더나?"
" 예. .....이만코 저만코요로코 저러코......"

그간의 말못한 속내를 삼십분넘게 전화선을 통해 전달했다.
남편의 신음소리만 간간히 들려 올 뿐 전화기 저쪽에서는 아무 대꾸도 없다.
봇물터지듯이 일방적으로 나는 이야기를 계속이어갔다.
결재받으러 왔는가보다.
"알았다. 나중에 집에가서 이야기 하자" 탁,

아이구 속이 다 쉬원하네. 이왕 터진말 이 참에 다 털어놔야지.

밤늦도록 우리 부부는 소주를 앞에 놓고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남편은 깊은 후회를 하면서 딸과의 살가운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함을
안타까워했지만 결국은 자식을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아버지가 되었다.
딸에게 전화를 건다.
"혜은아! 니가 하고 싶은거 해라. 아무조건도 약속도 안 받을란다.
그냥 니 원대로 한 번 해봐라. 아빠가 밀어줄꾸마. 너거 옴마도 속이
많이 상한가보다 바꾸어줄께."
"야, 인자부터 옴마라고 부르지마래이. 반찬도 안해줄끼고 니 보기싫어서
서울도 안가끼구마. 니는 지금부터 내 딸이 아니다이"

내가 생각해도 연기를 잘하네.
"이사람아, 그리 말을 하모 되나.니는 옴마아이가.그래도 우리 딸인데
그라모 안되재. 다 내 잘못아이가."
되려 내가 남편에게서 위로를 받는짝이다.
한 잔, 두 잔, 세잔.... 그날 나는 고주망태가 되었다.

냉전기간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문자만 허용되는 아들에게 그간의 속상함을 날렸더니
지 동생에게 문자로 야단을 많이 쳤었나보다.
우리 가족외에는 일가친척 어느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겠다.
그러나 속을 뒤집어 털어놓지 않으면 병이 날것만 같아
글로서나마 풀어내본다.

그래도 일년동안 우리부부를 행복하게 해주었으니
그나마 효도를 한 셈이네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메일을 보내고 나니 후련하다.
그렇다고 진짜 속내는 후련할까.
다시 처음부터 몇년을 딸년의 뒷바라지를 해야하는데.

자식과 부모는 전생에 원수지간이라고 했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