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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있어 참 좋다


BY 수련 2004-05-08

"엄마, 첫 월급 탔는데 이번 주에 내려갈게요"
덧붙여 대구에 계시는 이모도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식이 없이 혼자 사는 이모가 마음이 쓰이나 보다.
 
교대에 들어갈 때, 딸아이는 적성에 맞지않는다며 엉덩이를 내밀었지만

남편이 강력하게 밀어부치는 바람에 많은 갈등속에 마지못해 입학을 했다.
학교에 다닐 동안에도 아버지 몰래 다시 수능을 봤지만, 교대 들어갈 만큼의
점수가 나와 할 수없이 계속 다녔다. 4학년 한 학기를 남겨놓고
또 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 완강하게 반대하는 나에게 암묵적인 시위를 하던
딸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교직이 정말 이 아이의 길이 아니라면 여기서 중단 할 수 있는 핑게를 만들어 주십사고..

그렇게 나를 애타게 했던  딸애가 무사히 졸업을 하고,

집 근처 초등학교에 1학년 담임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 학교에 1학년들의 반 인원수가 많아 5명씩 떼어 한 반을 만들었고, 마침 3월 중순에
발령을 받은  딸애가 1학년 끝 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한다.
초임인데 천방지축인 1학년 아이들을 맡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우려대로 발령 받은 며칠 후의 전화목소리가 꽉 잠겨 말이 들리지를 않아,
부랴부랴 아이들 집으로 올라갔고, 예상대로 딸애는 눈도 쑥 들어가고,
감기기운에 쉰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퇴근시간을 맞추어 괜찮다는 딸애를 데리고 이비인후과로 한의원으로...
 안쓰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내려왔지만,

그 후로 별 탈 없이  학교생활에 적응되어 가는 것 같아 서 다행이다 싶었다.

 

저녁을 먹으며 1학년 담임을 맡은 소감을 말해보라고 집적거리니,

어떤 아이는 다른 반에 있다가 떨어져 나왔다고 다시 그 반으로 보내달라며

떼를 쓰는 바람에 딸애가 애를 먹었단다. 그러던 아이가 일주일쯤 지나자
색종이마차를 만들어 선생님 타시라며 부끄러운듯 내밀더란다.
 그리고, 프린트물을 앞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한 장씩 뒤로 돌리라고 했더니, 앞 자리의 한 아이는 벌떡 일어서더니, 교실을 돌아다니며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피가 나는 아이에게 약을 발라주었더니,  다른 아이 하나가 자기도 피가 난다며
손을 내밀더란다. 그런데, 빨간 색연필을 손가락에 칠해서 나왔길래 웃었다며
매일 그런 일들이 한 두건씩 일어난단다.


"  그렇다고 아이들을 절대 때리지는 말아라"
" 때리긴 왜 때려요. 얼마나 귀여운데요. " 


딸애가  실습을 나갔을 때, 수업 중인데도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떠드는데 담임선생님이 모른 채 수업을 계속 하고 있어서
화가 나서 대신 한 대 때려주고 싶었는데 참는다고 혼났다면서,

 난 아무래도 선생이 될 자격이 없나보다 하던 딸애였는데...

"너, 진짜로 애들이 이뻐보이니?"
" 그럼요. 선배들이 담임을 맡으면 자기 반 애들이 마냥 예쁘다더니
내가 담임을 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같아요."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한  달이 지났고, 내가 올라가랴 했더니 딸애가 내려온다 했다.
첫 월급을 타서, 취업 준비하는 오빠에게도 용돈을 주고,
지 아버지에게는 시계를 사와서 내밀었다. 남편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시계 좋네. 이거 얼마 줬냐. 돈 많이 준거 아이가 .싸구려라도 괘안타!"
꽤 비싸 보이는데  돈을 제법 준것 같다.
"너거 옴마보다 울 딸 안목이 훨씬 높네. 디자인도 멋있고. 조오타~"
"엄마하고 이모는 같이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 드릴게요"
이모에게는 반짝거리는 큐빅이 박힌 티셔츠를 사주고, 나는 그린 색의 니트앙상블을
사주었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 딸을 키운 맛이 이렇게 고소할 수가..

 

아들이 둘이면 두번째 아이가 딸처럼 싹싹하고 엄마를 잘 따른다는데
아들하나 딸하나 있는 나로서는 그래도 딸만 할까 싶다.
아들놈은 커갈수록 말이 줄어들고 일부러 찝적거려 말을 걸어야만 마지못해
대답하고 머리가 커지니 잔 재미가 없다. 남편과 다투고 속상해서 투덜거리면

같이 맞장구쳐서 엄마의 속앓이를 덜어주는 딸 .

핸드폰을 처음 마련하였을 때, 문자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엄마 문자를 많이 보내면 이 다음에 치매가 안걸리니까 속상하면 문자로 푸세요."

전화요금도 절약할 수있다는 말에 지금도 딸에게 문자를 자주보낸다.

그러면 금방 찌르르 하며 돌아오는 답글, 그런 재미를 알게 해준 딸.

내 눈에는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로만 보이는데, 초등학생들을 가르키는 선생님이

되어있는 딸이 여간 대견스럽지가 않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교대 다니는 동안 딸애의 갈등에 주저앉을까봐 노심초사   딸애를 붙잡으려 얼마나 고심을 했던가. 4년을 무사히 졸업을 하고,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새내기 선생님으로 교단에 선
딸애가 그저 고맙고 예쁘다.  
교육계의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엄마의 간절한 바램이다.
오늘은 그린색의 니트 앙상블을 입고 친구와 약속했던 장소로 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