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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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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엽편)


BY 수련 2004-04-17


그 여자!
그녀는 경남에 살면서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이들에게 가끔씩 다니러 서울에 온다. 지하철을 탈때마다 표를 사서
구멍으로 밀어넣고 지하철안에서도 잊어버릴까봐 손에 꼭 쥔채 나갈때
또 작은 틈으로 밀어 넣고 빠져나오곤 했다. 처음 서울 왔을때 들어가면서
표를 빼지않는 바람에 나갈때 표가 없어 사람들이 다 나가고
혼자 덩그라니 남아 어쩔줄 몰라했던 기억때문에
중요한 문서처럼 목적지에 내릴때 까지 손에서 놓지를 않았었다.

서울을 몇번째 다니러 왔을때 다른 사람들 하는 모양을 가만히 보니 지갑째로
출구 윗판에다 턱 하니 대고는 나가고 들어간다.신기하다.
그 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만 시골뜨기라서 일일이 표를 넣었다가 꺼내나?'
싶어 탈때는 그냥 표를 넣고 탔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남이 볼새라
지갑속에 표를 슬쩍 넣고는 내려서 나갈때 남들이 하는대로
지갑을 슬그머니 올렸다가 나갈려니 앞사람만 내 보내고 덜컥!.
걸림쇠가 비켜가지를 않았다. 어!!

작은 웅성거림에 저만치 제복을 입은 남자가 수상쩍은 눈으로
그 녀를 응시하며 몸을 돌린다.그여자는 비켜가는 뒷사람에게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진다.
돌아서서 얼른 표을 꺼내어 틈새를 밀어넣으니
몸이 쑥 딸려나온다.다가서던 제복의 남자는 다시 돌아섰다.
그 녀는 지하철역을 걸어나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그렇지??!!'

아이들의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그 녀는 대학생인 딸에게 그 사건(?)이야기 했더니
배를 잡고 방바닥을 뒹군다. 어릴때부터 유난스레 큰소리로 웃어
아무리 야단을 쳐도 고쳐지지가 않아 내버려 두었는데 "우 하 하 하 하 하..."
계속 웃는다.그 녀는 딸에게 눈을 흘겼다.

"엄마,그 표랑 엄마가 산 표는 달라요"하면서
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보여준다. 일명 'pass card! '
엄마의 주책에 딸애의 웃음은 멈추지를 않는다. "히히히~엄마도 만들어드려요?"
"됐다,어쩌다 오는데 뭐하러 사니"하며 딸애를 끝내 한대 쥐어박는다.
엄마의 실수가 저리도 웃음을 자아내나 싶으니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데,그 여자네가 전혀 예상밖에 남편이 서울로 발령을 받는바람에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거래하던 지방은행이 이사온 아파트 근처에 없어 다른 은행에서
통장을 새로 만들면서 카드도 만들었다.
그 녀는 일주일후에 은행에서 발급받은 카드에 ' pass card!'라는 영어가 찍혀있다.
"이 카드로 지하철이나 버스도 탈수 있나요?"
"그럼요." 웃는 모양이 이쁘다.그 녀는 돌아서다말고 다시 다짐하듯 창구 아가씨에게 물어본다.
"이 카드를 지갑속에 넣어 지하철출입구에 대면 되죠?"
"녜, 그렇다니까요."

친구가 운전면허증을 받던날에
액자속에 넣어 마루에 걸고 싶을 만큼 뿌듯하더라는 말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그녀친구와 같은 마음이 된다.카드하나가 이렇게 든든할수 있을까!.
괜히 카드를 사용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베란다 너머 햇살이 그 녀에게 손짓을 하는 따뜻한 봄 날.
그 녀는 한껏 멋을 내며 하릴없이 집을 나선다.
카드가 든 지갑을 꼭 챙겨들고 갤러리가 많은 인사동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서울에 오면 천천히 둘러보고싶었던 곳이기 때문이다.아이들에게 다니러 오면
반찬,청소 빨래를 해주고나면 서둘러 다시 내려가야하기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인사동거리는 그녀에게는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내심 걱정이 된다.
'과연 이 지갑을 출입구에 올리면 들어갈수있을까.? 또 창피당하면 어쩌지?'
조심스레 출입구 위쪽에 지갑을 올리니 여자의 기우와는 달리 "삐~"소리가 나며
몸이 앞으로 나간다. 신기하다는 마음과 함께 그 녀의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문이 열리고 ,빈자리에 앉은 여자는 맞은편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실없는 웃음을 날린다.
딱히그 남자를 보고 웃는건 아닌데 '정신나간 여자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지
멋쩍은 남자는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천천히 지하철 안의 사람들을 둘러본다.
'나도 이제 이방인이 아니고 당신들과 같이 속해있는 사람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