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때 쯤일까?
아니면 좀 이른 때 쯤일까?
시골을 떠나 온지가 거의 20년이 되어가니 이제는
제 철의 풍경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벼가 노오란 머리를 숙일 때면 농부들은 옳거니 때가 왔구나 싶은지 낫으로 쓱싹 쓱싹 벤다.마당엔 넓다란 멍석이 펼쳐지고,낱알을 훑기 시작한다.
훑대는
새끼로 양쪽을 매어 지렛대모양의 네모난 널판지로 중심을 잡고서 벼 알이 붙은 쪽을 길다란 톱니바퀴 모양과 흡사한 갈라진 틈새에 넣어서 뒤쪽으로 잡아당기면 벼 알이 후두두둑 떨어지는 그러한 농기구이다.
요즘 세대에는 탈곡기만 거의 기억하려나?
그 탈곡기가 나오기전에는 거의 수작업을 한 것인 셈이다.
어릴때는 그 것을 가지고 어른들이 없는 사이에 가지고 놀기도 했다.
어릴때 벼를 훑어보겠다고 해보면 벼 알은 훑어지지 않고,힘만 쓰다 만 기억도 난다.^^
다 훑고나면 벼 알들이 총총히 산을 이루고 모여있게 된다.
게 중에는 벼 알갱이만 훑어진게 아니라 길다란 지푸라기도 함께 딸려 떨어진 경우도 있다.
그러면,그 것들을 키(머리에 쓰는 키)로 바람을 일으켜 지푸라기들을 알곡에서 몰아낸다.
그 후에 나 온것이 커다란 환풍기(?)인 것으로 기억한다.
제대로 알곡이 골라지면, 넓다란 멍석 몇 개씩을 펼쳐놓고 벼를 말린다.석까래 모양의 길다란 것으로 골을 파 듯이 왔다갔다하며 골고루 마르도록 한다.
아버지께서는 맨발로 가로지르며 말리기도 하셨다.
햇살의 양을 잘 받아야 마르기 때문에 날씨도 좋아야했다.
제대로 마르기까지는 날짜는 셀 수 없지만 아무튼 벼를 베고 난 후 그 풍경은 내 시야에서 한참이나 보였던 것 같다.
그 과정이 끝나고나면 가마니에 하나하나 채우게 되고 드디어 공판이란걸 하게된다.재판의 공판과는 사뭇다른.. 벼는 공판을 하여 등급판정을 받게된다.그리하여 좋은 벼는 돈을 더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과정은 어찌되었는지 어린시절이라 그 다음 기억이 없으므로 여기까지 기억을 옮겨놓는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먹는 쌀 직전의 과정인 것이다.
가을쯤이되면,들녘의 곡식들이 노오란 얼굴을 숙이고 부끄러움을 타는 시기가 오면,훑대에 대한 그리움이 일렁인다.
물론 농부님네들의 노고는 말 할 것도 없고...
요즈음이야 농기계가 발달하여 거의 기계로 하기에 아주 예전보다는 편할 수 있지만,그래도 쌀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수고는 그리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과정은 과정으로 살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