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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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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가 산타를 믿지 않는 이유


BY 아미라 2005-12-01

리스마스를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가 질문이었다.

신나게.. 그러니까 가슴 뛰게 지냈던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언제였던가를

더듬어 보았다.

 

.. 그러고보니 나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늘 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더듬기억1]

    내가 어렸을 때에 우리집에는 페치카(벽난로)가 있었다.

    서양영화의 중산층들이 사는 집 거실에 있는 바로 그 붉은 벽돌 페치카다.

 

    한국의 농촌에다가 아버지가 우겨서 지으신 집이었는 데

    한국의 기후에 왜 지붕이 납작한 한국형 주택들이 어울리는 지를 전혀

    궁금해하지 않으신 우리 아버지.

    지붕이 뾰죽하게 높고 새빨갛게 칠해두어서 오며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은 많이도 찍혔었지만, 쉴틈없이 밀려드는 그 한기라니으으으

    생각만해도 온몸이 움츠러든다.

 

    아버지는 가까운 미군부대 수퍼(피엑스)에서 페치카용 땔감을 사오셨는데

    이 페치카라는 것이 딱 전방 일미터까지만 따뜻한 거였다.

    소파를 질질 끌어다 옹기종기 페치카 앞에 모여앉은 우리들. 한 시간을

    지나고 두시간이 지날 무렵에는 콧속까지 새까맣게 땔감 검정이 묻어있곤

    했다. 이게 아닌데. 뭐가 잘못됐지. 하며 굴뚝을 청소해야 한다고 부산하시던

    우리 아버지.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덕으로 그다음 겨울부터 우리는

    제법 따뜻한 거실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더듬기억2]

   지금은 흔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우리집 거실에서 한 시즌을 떡 버티고

 

   있던 것은 도자기를 사려니 너무 비싸고 거실은 품새없이 너무나 커서

   장식장으로는  한쪽 벽도 채우지 못해 느껴진 썰렁함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늘 크리스마스 장식 박스를 지하실에 보관해두고 계셨는 데 정작 이를

    즐기는 건 우리들이었다. 별을 달고 금방울 은방울 막대지팡이를 주렁주렁 단

    마지막에는 항상 새끼등을 쪼르르 달았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반짝이를 새것으로

    사온 것 말고는 늘 작년에 쓰던 것들이었다.

 

    그 다음엔 벽에다 솜을 듬성듬성 붙였다.

    함박눈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는 데 이 것만큼은 아버지가 대단히 질색하신 부분

    이었다. 그걸 나중에 어떻게 떼내려고. 에그.쯧쯧. 이쁜 벽 다 망가진다.

    물론 아버지가 뭐라시든 눈 붙이기에 정신없는 우리들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더듬기억3]

    트리를 세우고 장식을 달고 눈까지 만들어 붙였으니 다음단계는 당연히 선물이다

 

    아버지가 준비하신 선물상자는 물론이고 모양만 이쁜 빈박스를 이쁘게 포장해서

    트리 아래에 그야말로 '쌓아두곤' 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열어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룰이었다.

 

더듬기억4]

    내가 더 어렸을 때에는 여기에다 한술 더 떠 목이 긴 줄무늬 양말

    잠자는 내 머리맡 (유리창이 있었다) 유리창 틀의 작은 못에 걸어두었다.

 

    그러면 밤새 아버지가 사탕이며 초컬릿을 잔뜩 넣어두셨다. 나는 잠자는 척

    하면서도 실눈을 뜨고 있어 키다리 아버지가 '살금살금' 내 방으로 들어와

    선물을 꾹꾹 눌러담으시는 것을 목격하고 부터는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다.

    이 줄무늬 양말은 내가 자라면서 점점 우리집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쉽다.

 

   , 그러고보니 다음달이 크리스마스네... 나두 한번 해봐??[카이로29/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