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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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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喜樂이었다.


BY 土心 2006-09-19

 ‘희락 동문회를 합니다. 참석 하십시오.’

하는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모교 동문회 소식이었습니다.


올해는 부쩍 친구 찾기 열풍입니다.

봄부터 시작된 일련의 이 반가운 사건이 마치 릴레이 하듯 이어집니다.

첫 시작이 동아리 동기들이었고,

76학번 home comming day고,

우리 학과 동기 동창들이고,

그리고 이젠 동문까지....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는가? 조금 자제를 해야겠구나.

그런 맘에 그 편진 뒤로 물려 놓고 있었습니다.

헌데 몇몇 친구들이 날짜가 다가오니 성화를 합니다.

우리 가 보자고....궁금하지 않느냐고....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입니다.

‘喜樂’... ‘喜樂館’.... 기쁠 喜, 즐거울 樂.....

내가 공부하던 그 건물이 단독으로 유일하게 이름 지어진 바로

‘喜樂館’ 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들에겐 할머니라 불렸던 총장님이 지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번 동문회 초대장을 받고서야

‘그래, 맞다 그랬지...’그렇게 기억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감회가 새롭습니다...서서히 선명해 집니다. 

학교 정문에서 조금 올라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구름다리가 하나 있었고,

그 구름 다리 건너면 키 큰 아름드리 은행 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 살짝 살짝 가려지면서 전교생에게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야말로 교내의 별채... 규방.

참으로 뭇 남학생들을 몸살나게 했던 남성 금지 구역이던 곳 이었습니다.

그 땐 그 격리(?)나 현판이 학구적이지 못하다고 불평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늦게나마 이 기회에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사.... 그게 공부든 일이든...

즐겁고 기쁘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지.

더 이상 다른 맘가짐 뭐가 더 필요 하겠나 그런 생각에 미칩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그 끔찍한 보호가 당근이요 채찍이었음도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혜안이 나이 들어 이제야 쬐금 이해되는 가 봅니다.

 

어쨌든 자의 반, 타의 반...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졸업하고 처음 참가하는 동문회,

가면서 헤아리니 30년 세월이 어찌 그리 아득 하던지

두근두근 쭈빗쭈빗 행사장에 들어서는 길이 천리는 되는 듯 했습니다.

헌데 고맙게도 선배가 먼저 알아보고 반색을 합니다.

이게 왠 일인가?....형만한 아우 없구나...

찡하게 고맙습니다. 알아 봐 준 선배에게...

곧이어 교수님들께서도 대뜸 기억해 주십니다.

“너 그대로구나! 아무개야!”

노교수님 인자한 환영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교수님, 이리 반기시는데 그동안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으니...’

순간 죄스런 맘이 앞섭니다.

그대로라는 택도 없는 거짓 말씀의 의미가 스승 사랑인 것을

뜨거워진 가슴은 압니다. 

‘근데 선생님이야말로 그대로십니다. 정말 그대로십니다’

그 스승의 그 제자....서로 콩깍지가 씌었습니다.

학교 다닐 시절 언감생심 얼굴 바로 들고 쳐다도 못 보던 선생님을

나는 무슨 용기가 일었는지 얼떨결에 끌어안아 봅니다.

헌데 내 작은 품속에 선생님 그 크신 가슴이 모자라도록 안겨집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그저 뜨겁기만 합니다. 뜨겁기만 합니다.

가슴이 맘이 머리가....온 전신이...선생님 뵙는 그 순간에.


갈까 말까?

망설이던 며칠간의 갈등이 참 어리석은 일인 줄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하마터면 놓치고 말았을 이 귀한 만남이 이제 감동과 깨달음으로 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해 가고, 모인 것은 흩어지고, 왔던 것은 돌아가고

그렇게 덧없이 무상한 가운데 그래도 무상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희망하면

그것이 바로 인연의 고리요, 더불어 함께라는 존재가치인가 봅니다.

사제지간 선후배지간으로 맺어진 인연 참으로 그 의미 새롭게 새겨집니다.

이미 공부하던 건물은 없어지고, 스승님은 연로하시거나 돌아 가셨고...

그렇게 형상은 기약할 것이 못 되었어도 뿌려진 값진 인연의 씨는

시공에 걸림 없이 뿌리 박혔음을 나는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종종 잊어도 좋을 일에 덩달아 묻혀 까맣게 잊혀지는 것.

그거 참으로 안타까워해야 할 일입니다.


老스승님께서 격려사를 하십니다.

"........

여러분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지위가 무엇이든 나이가 얼마이든

그건 다 상관없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위대 할 뿐입니다.

왜?

어머니니까....어머니이니까...!!!

............

사랑하는 희락 동문들이여, 건배!!!”


참석한 동문 대부분 명함들이 너무 화려해서

한편 주눅 들고, 한편 자랑스럽던 차에 선생님 한 말씀에 氣가 뚫립니다.


나는 그래서 용기내어 크게 대답합니다.

'예!

이 시대 진정한 어머니 상을 구축하는데 전념을 다하라는 당부로 듣겠습니다.

앞으로도 천세 만세 오랜동안 이런 귀한 가르침을 주십시오...'

 

85세 노교수님 쩌렁쩌렁한 메세지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살아 가는데 또 한번의 에너지 충전이 되었다고 나는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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