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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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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BY 土心 2006-09-09

때론 혼자 걷고, 때론 함께 걷고, 나는 그렇게 걷는다.

걷노라니 혼자 걷는 날엔 혼자 걷는 외로운 그 맛에 취하고

둘이 또는 여럿이 걷는 날은 오고 가는 담소 그 정에 취한다.

혼자 걷는 날 세상에 오감을 집중해 보면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둘이 걷는 날 벗의 말에 집중해 보면 어제와 오늘 그 맘이 다르더라.

그러고 보면 머물고 고임 없이 흐르고 변하는 이치가

자연이나 인간이나 다름없겠거늘

어제는 어제대로 진실이요, 오늘은 오늘대로 모두 다 진실일 거다.


어느새 계절은 변해서 숨도 못 쉴 만큼 뜨거운 열기 주춤 뒤로 물러가고

한 뼘 올라 간 파란 하늘빛에 구름 미처 범접 못하고 뭉실 뭉실 도망가는데

걸러지지 않은 햇살 천지로 자유자재하여 눅진 곳이 없다.

반갑다고 건드린 바람 서늘한 반응에 내놓은 살갗 오돌 오돌 움츠리고,

짧아지는 해 꼬리에 가랑가랑 목마르고 속 탄 초목이 까치발 들어 키만 세운다.  

내 어제 가던 길 오늘도 똑같이 가는데 날이면 날마다 어찌 이리 다른가.

가고 오고 돌고 도는 윤회가 바로 이런 것이려니....


어제는 행복으로 미소 만연하던 벗이

오늘은 얼굴에 세상 근심 다 드리우고 먹빛이다.

큰 맘 먹고 두런두런 터놓는 일상사와 맘자리가

너와 나 다름없으니 옳다구나 이게 세상사 삶이다.

특별히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는 이 모두가 중생 사바세계 아니겠는가.


백일을 작정하고 시작한 기도 이제 한달이 지난다.

가는 길은 이른 아침 출근 길 혼잡 버스에 동승해서 가고,

오는 길은 이렇게 한 시간 남짓 걸으면서 나는 세상과 만난다.

기도가 무엇인가

단잠 반납하고 이른 아침 서둘러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세상의 선이라고 보인다.

변화무상한 조건에 한 치 거스름 없이 순응하고 순행하는 자연의 이치가

바로 도라고 여겨지며,

이 사람 저 사람 오다가다 만난 사람 각기 그들의 생각과 경험과 사는 이야기가

바로 법문이라고 여겨진다.


허면 구하고 바랄 것이 따로 무엇인가.

내가 뿌린 대로 거둘 이치 그 하나 바로 알고자 할 뿐이지.

그러고 보니 영글고 익어 가기 바쁘긴 이 계절이나 나나 다를 바 없나 보다.


낼은 또 어떤 세상과 만나게 될까?

설레임으로 기대해 볼 일이며, 나는 여전히 걸으려고 한다.

이 좋은 계절 하루하루 지나는 것이 참으로 아까워 소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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