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56

비온 뒤 햇살이 반갑다


BY 土心 2006-07-22

 

요즘 내 친구들 중엔 우울증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니 갑자기 한가해진 시간을 감당 못해 우울하고,

뒤늦게 깨달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우울하고,

직장 가진 친구들은 타성 붙은 직장 일이 지겹고 싫증나서 우울하고,

새롭게 일하고 싶은 친구들은 정착할 곳 없는 현실이 슬퍼 우울하고,

성공한 듯 보여도 부부 사이의 남모를 고충 운운하며 우울하고,

성공 못한 남편과 사는 친구들은 남편 무능에 환멸 하여 우울하고,

짝꿍 없는 친구는 그만 외로움에 지쳐서 우울하고,

자식이 똑똑하면 품안에 들어오지 않아 우울하고,

자식이 미련하면 절망과 회복되지 않는 자존심에 우울하고,

생활이 평탄하면 지루해서 우울하고,

굴곡 있는 삶에는 안정이 없어 우울하고

.........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시간이 남으면 남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가족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채워지지 않을 끊임없는 욕망에 온갖 불평 섞어 우울하다.

..............

그렇지.

우울하자고 들면 모든 것이 다 그럴만한 원인이고 이유이다.

당연하고 마땅하고 타당하지.

허나 그러다가도 친구들의 그런 투정들이

때론 비위가 거슬려서 비아냥거리고 혼내 주기도 한다.

그러다 친구에게 봉변당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들여 다 보면 나는 더 한다.

가슴 속에 눈물샘 하나 감춰두고 내숭 떨며 사는 인생이 나고,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춰둔 여린 속내를 나는 보이기 싫어 가증 떠는 인생이며,

분출 못하는 용암이 속으로만 흘러 가슴은 뜨겁게 부글거려도

겉은 서리가 내리는 사람이 나 일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치열하게 계산하고, 망설이고, 타협하고, 불평하고, 좌절하고, 욕구하고,

비교하고, 낙담하고, 불안하고, 갈등하고, 두렵고, 억울하고, 초조하고, 열등하여도

겉으론 어떠한 미동도 용납 않으려는 위선의 자존심이 내 인생일지 모른다.


진정 그러하다.

젊음을 잃고 꿈이 빛바랬는데 안 우울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상여 메니 이미 시신은 나갔는데 허망한 맘 당연하고 당연하다.

천하의 측천무후도 세월 앞에선 좌절하며 비굴했다.

하물며 일개 아녀자로 크게 호령 한 번 못해 보고 지는 인생

생각하면 참으로 우울을 넘어 억울하지.

저물어가는 인생에 무슨 꽃비가 내려 새삼 새로운 영화를 바라겠나.

걸어 온 길 돌아보면 아득하여도 앞길 낯설어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확신 없는 삶의 회의가 세월에 겹치면 겉잡을 수 없는 슬픔이 되곤 하지.

기도와 철학과 시로 행여 달래 지려나...

허나 무엇으로 애를 써도 허물어지는 맘 막을 수는 없다.

...........

이렇듯 허망한 생각 끌어올리기 시작 하면 고구마 줄기 딸려 오 듯 

졸졸이 졸졸이 끝은 날 줄 모른다.


장대비가 내리고 한강을 나가 보니 뒤집힌 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갈하게 흐르던 도도한 물빛이 간 곳 없다.

속에 많은 걸 감추고 살았다는 얘기다.

끄덕 없을 위엄 갖춘 나무도 작은 바람에 흔들리고

부시도록 해맑은 청명 하늘이 구름 한 점으로 울어 버린다.

맑은 호수에 비친 둥근 달이 개구리 뒷발질에 이지러지고

드넓은 망망대해가 보이지도 않는 바람 앞에 질풍노도 한다.


오늘은 보니 바람 멈춘 나무에 매미 앉아 소리 내고,

비 멈춘 하늘에 포드득 새가 난다.

파문 멈춘 강물 위에 흰 오리 한 쌍이 정겹고,

물기 마른 담벼락에 담쟁이가 안겨 행복해 한다.

굳어진 땅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사라진 어둠 속에서 무궁화가 보랏빛 얼굴 되어 웃는다.


어찌 보면 세상은 다 그냥 그렇게 안과 밖 이면의 모습이

경계 따라 적응할 뿐인가 보다.

세상은 그냥 그렇게 다 품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곳만을

찾아 들고 대접하나 보다.


깊은 가슴 속에 우울과 희망을 나는 어찌 보면 더부살이 시키면서

세상 향해 그저 이렇게 부둥키며 안깐힘을 쓸 뿐이다.

누르고 감춰 진 우울 그 자리 위에 고랑 파고 희망의 씨를 뿌리고자 할 뿐이다.


“나 맑은 웃음으로 세상이 맑아지고,

나 밝은 언행으로 세상이 밝아진다.”

그것이 善이요, 慧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