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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서...


BY 土心 2004-11-03

남편이 우울증이라는데 내가 왜?
가슴 가득 부글거리는 수 많은 감정들이 마치 헝크러진 실타래 같아 따라 풀릴 가닥 하나 잡기가 꽤나 힘이 들고, 쏟아 놓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한 마디도 못하겠는데 그러려니 눈물샘만 차 올랐는가 수문 열린 댐마냥 눈물은 흘려 내도 흘려 내도 마르지 않고 그게 서러워 그래서 또 운다.

시월 날씨가 때없이 하도 청명하여 이 무슨 축복인가 들떠서 한 달을 살았다. 아침이면 일찌감치 찾아  들어 고운 숨 할딱이며 온 얼굴 애무 하기에 행복한 투정 답례 삼아 아침 단잠 반납하고 그렇게 사랑스런 햇살 맞아 하루를 시작하며 시월이 풍요로웠다. 
게다가 무량한 억새 밭을 난생 처음 감탄으로 목격하고, 천년 아름드리 비자림 숲길 걸으며 역시 첫 경험으로 심신이 감동하고, 약천사 고관사 관음사로 이어지는 삼사 순례로 벅찬 가피의 흥분도 원없이 만끽하고..이런 제주도 여행을 난 한 이십 년 만에 하면서 참으로 설레도록 행복했다.     
그 뿐이 아니지... 관악산 단풍이 절정에 이른 시월 셋째 주말에는 어스름 노을 빛에 더구나 붉어진 단풍 넋 놓고 바라보며 연주암 올라 철야 삼천 오체투지로 참회의 묵은 땀 미련없이 흘려도 냈다. 작년엔 몸이 아파 제대로 못 지킨 내 자신과의 이 약속을 올핸 무사히 완수 했으니 그 환희심 배로 클 수 밖에.
그 뿐일까... 새롭게 시작한 경전 공부 맛에도 흠뻑 빠져 외우라시는 게송 천이백자 한 자도 더듬거림 없을 만큼 달달 외워 아직은 멈추지 않은 머리와 열정에 스스로 감동 또 감사 하면서 꿈 속 잠꼬대도 암송으로 할 만큼 난 이 시월이 벅찼다.
이렇게 행복으로 산 이 시월 끄트머리가 그대로 잘 넘어 갔음 좋았으련마는... 욕심이 과 했음인가...

일요일... 그 날 만큼은 햇살이 너무 좋은 것이 오히려 서러웠다. 강변에 부는 훈풍이 오히려 얄미웠다. 시월의 마지막 날인데 제 처지 잊고 제 분수 모르는 것 같은 날씨가 절대 곱지 않았다.
혼자 울면서 울면서 한강변을 걷다 보니 순간 남편과 살아 온 세월이 고스란히 살아 머릿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기막힌 것은 미움은 어찌 삭은 것이 하나도 없고 사랑은 다 녹아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는지 사랑만 빼 먹고 미움은 남겨 이럴 때 갚음하려고 내장에 쌓아 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미운 기억만 꼬리를 물어 따라 오른다. 이 맘이 결국 25년 살 맞대고 살아 온 남편에 대한 내 진심이라면 이 도리 없고 의리 없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정말 모를 일이다. 측은지심은 어디로 가고, 맘 섞은 묵은 정은 어디로 가고, 참회와 공부와 기도의 노력은 다 어디로 가고, 이 몹쓸 화의 실체만 남아 내 본능 이런 건가 이 본심 보면서 이처럼 비참해 지는 연유를 모르겠다...결국은 몸뚱이만 섞고 살았다는 말인지.....정신없이 생각은 강물 따라 흐르고
걷다 보니 양말 없이 신은 운동화 뒤꿈치가 닿아 발에선 피가 흘러도 내 맘 아픈 것엔 견줄 바도 아니었다.
이렇게 까닭 모를 서러움에 시간 잡아 묶어 놓고 얼마를 걸었을까...결국 발 아픈 것이 신경을 건드리기에 복받치는 감정은 지치고 나갔던 정신 돌아 오는구나... 그럴 즈음 누군가 뒤에서 투박하게 내 손을 잡는데 놀라 보니 남편이었다. "...밥 먹자..."
언제부터 따라 왔는지 모를 남편 그러면서 분노로 불붙어 범접도 못할 아내의 뒤꼭지 보며 참담했을 남편...비로소 내 심장에 마침표 하나를 찍는다.
 
어제도 오늘도 남편은 말도 감추고 표정도 멈추고 행동도 정지 시키고 밤의 나라에 사는 사람처럼 침대 속에 숨어 잠만 잔다. 그러다 바깥세상에 땅거미 올라오면 운동한다고 나간다. 그 모습을 바라 보는 내 심정 온전할 리 없지마는 잠시만 봐 주고 기다려 달라는 남편의 말을 믿고 기다려 주마 입술 물고 다짐한다. 남편은 아마도 비장의 처방전을 내심 감춰 놓고 잠시 동면 하고 싶은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도 기분 좋았던 시월은 이 고비를 기운 내 잘 넘기라는 세상 순리의 배려였던 모양이다. 다만 전에 없이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린 내 경망에 당황스럽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고작 이 정도였나 가슴 철렁 절망도 크고 하지마는 이제는 진정 둘이 하나 되어 사는 도리를 실천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지는 욕정의 세월은 이미 가고 서로 어깨 빌려 기대고 넘어야 할 인생 한 고비 갱년기라는 이름으로 맞딱드리며 생경하여 가늠이 안 되는 이 고개를 우리는 무사히 넘어 갈 수 있을까 지금 그 두려움을 남편과 나는 혼신으로 막아내는 거다 그런 생각으로 마무리 짓는다.

어제는 날씨가 참 변덕을 부리었다. 금방 비 오다 잠시 머뭇하다 또 퍼붓고는 햇살 잠시 내 보이고 그러다 또 우중충해지고.... 헌데 오늘은 그 햇살 여여 함이 전과 다름없다.
그렇다 사는 게 살아 보니 그렇다.
어제 날씨 만큼이나 사람 사는 일이 참으로 변덕스럽다. 허나 虛空이 不動함을 모르지나 말라 오늘 하늘은 그리 말한다.
아이가 학교 다녀 오면 늘 숙제를 한 아름씩 안고 온다. 종류도 다양하고 해결하기도 어려운 숙제들을 날이면 날마다 선생님들은 용케도 찾아 내 준다.
그렇다 사는 게 살다 보니 그렇다.
날마다 숙제 하는 거...삶이 내게 던져 준 숙제 그 거 하는 것... 그러다 그 숙제 마치는 날이 인생 졸업인가 싶다.
허니 이번에도 겸허한 맘으로 오히려 감사하게 과제 받아 들고 전전긍긍하나마 풀어내야 하는 거 그건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