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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 올리는 곰탱이 며느리의 연서


BY 土心 2003-12-02

 

꼭 25년 전입니다.
어머님을 처음 뵈 온 것이.
그 때 제 눈에 비친 어머님은 어머니라기 보다 할머니 이셨습니다.
중년의 모습인 내 엄마의 모습만 익숙해져 있는데 노인이신 어머니 모습이 많이 비교되어 좀 낯설었답니다.
외모, 말투, 생각은 물론 생활 하시는 모든 방법이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웠지요.
어머니 생각 나십니까?
어머니와 제가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서 저는 계속 엉뚱한 짓만 하고, 어머니는 내 말 못 알아 들어 답답하시다며 형님께 '쟤 도대체 뭐라는 겨?' 하면서 절 얼마나 무안하게 하셨는지...
갓 시집 온 어머니의 새 며느리 시절 그 때 황당했던 사건 몇 가지만 여쭤 볼까요.
'김치 가져와라' 하면 그야 말로 빨갛게 버무린 배추 김치를 갖다 드리는 건 당연 하다 생각 했는데 아니라고 하시니 그게 물 김치라는 걸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김치와 짠지의 구분된 의미 전달이 제겐 안 되는 거였거든요.
감자 쪄라 하면 말 그대로 감자 찌는 거지 고구마 잡숫고 싶다는 걸 도대체 전 몰랐답니다.
'쌀 팔지 마라' 하면 '제가 언제 쌀 팔아 먹었다구...' 그렇게 속으로 꽁하고, 그 말이 '쌀 사 먹지 마라 내 줄께' 그 말씀인걸 제가 몰랐답니다.
그리고 명절에 어머니께 내려가면 세배 손님이 어찌 그리 많이 오시던지요. 안 그래도 동동 걸음인데,
'야! 과일 내 와라'... '예,... 좀 부드럽게 부르시지...'투덜투덜 과일 깎아 쟁반 받쳐 내갔더니 어머님 얼굴 금새 노여움으로 빨개 지시며 절 정지로 끌고 가셨죠. 그리곤 '제대로 술상 봐서 내 와야지!' 하시던 어머님의 준엄한 호령.
와~눈물 주루룩 도대체 절 보고 어떻게 어머님 그 깊은 의중을 헤아리라는 건지 선문답 하는 것도 아니고....어머님 제발 부탁인데요 저 좀 알아듣게 해 주세요 아님 저 어머니의 며느리 노릇 사표 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속으로만 외칠 뿐, 꿀꺽 꿀꺽 눈물 콧물 닥치는 대로 삼키고, 그래서 안 먹어도 배 부르고 정말 한 나라 땅에서 산 거 맞나요 싶을 정도로 난감하고 속수 무책. 이렇듯 눈치 코치 메주라 타느니 내 속이고,  열불 나는 건 어머니 심사라...그랬던 거 맞지요?
그렇게 명절 한 번 치루고 서울 올라 오면 이 며느린 탈진 상태요, 어머닌 뒷 수습 하고 다니느라 몸살 나셨을 테고 그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저 정말 지금까지도 섭섭해서 목 아래로 안 내려 가는 거 있는데요 그게 뭐냐면 어머님이 저 한테 한 번도 다정하게 '얘, 아가야' 하는 그 닭살스런 호칭을 안 불러 주셨다는 겁니다.
새 며느리 시절 내내 '야!' 이걸로 통하셨잖아요.
그래도 내가 어머니의 막내 며느린데 꿈에도 오매 불망 그 '아가야' 소리...아, 제 가슴속  한이랍니다.
그 때 어머니와 저의 거리는 나이 차이 숫자 만큼이었을까요, 아님 지리적 거리 만큼 이었을까요, 아님 맘의 거리 만큼이었을까요?
아무래도 격세지감 이었던 것 같아요. 맘 하곤 상관 없는, 왜냐면 한 번도 어머니가 절 마음 밖으로 밀어 낸 적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죠.

어머니, 그렇게 25년 전에도 제 눈엔 할머니시던 우리 어머님이 여전히 지금도 할머니십니다.
다만 지금은 아주 세련 된 도시 할머니가 되셨다는 거지요.
서울로 모신지 한 10년 지났나요.
많이 편찮으셔서 부랴부랴 서울 종합 병원 응급실로 모신 그 날이 어머님 고향 충청도 부여군 임천면을 아주 떠나시는 날이 되실 줄 짐작도 못 하셨을 겁니다.
어머님 혼자 사시는 게 마음 쓰여 시댁 4남매 형제들이 그렇게 애타게 서울 오실 것을 간청하여도 꿈쩍 않으시더니 결국 병 앞에 장사 없으셨습니다.
어머님, 그 때 돌아 가시는 줄만 알았는데 숨가쁜 고비 장하게 넘기셨지요.
어쩌면 그대로 한 쪽이 마비 되신 상태로 사셨어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어머님의 강한 의지와 형님 내외분의 지극한 효심으로 어머님은 지금 우리 옆에 이렇게 건강하신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어머니께서 요즘은 매일 노인정에 나가시며 서울 사람 만나 대화 하고, 수도물 드시고, 서울 공기 마시더니 어머니 이제 서울 노인 다 되신 거 아시나요.
저 보고 언제부턴가 '얘, 막내야~~' 하고 부르신답니다.
짠지가 김치 되고, 감자가 고구마 되고, 정지가 주방이 되고, 다과상이면 다과상, 술상이면 술상, 밥상이면 밥상, 꼭 집어 일러 주시고, 쪽진 머리 커트 머리 되시고, 치마 패션이 바지 코디로 바뀌시고....
물론 저 또한 충청도 며느리 절반은 된 것 같지만 어쨌든 어머니와 저의 25년 세월이 충청도와 서울마저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처럼 된 것은 좋고 나쁨의 분별을 떠나 어머니와 저의 정서적 코드가 맞아 떨어지고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이 기쁜 거죠.
오히려 이젠 친정에서 절 보고 낯설다 하네요. 충청도 아짐이라고 말이죠.

어머니, 지금 어머니의 모습을 뵈면 백설이던 어머님 머리에 귀 밑부터 검은 머리 올라 오고, 농사일 밭일에 고목껍질 같던 손에 보드라움이 살아 나고, 까맣게 그을렸던 어머님 얼굴이 솜털까지 보송보송한 백옥이 되셨고, 골 깊게 패였던 주름은 오히려 잔잔하게 유한 주름으로 펴 지셨습니다.
남들이 소위 말하는 회춘이라는 걸 하시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전엔 우리 어머님이 못생겼다고 여겼는데 요즘은 어머니 얼굴이 세상에 더없는 미인으로 보인답니다.
이제와 제가 어머님께 아부 할 이유는 없는데 제 눈에 그리 보이니 그렇다 고백하는 거랍니다.
어머니, 그러고 보면 서로의 눈에 콩깍지 씌우는 건 부부만 하는 일은 아닌가 봅니다.
어머니도 얹그제 제 얼굴 쓰다듬으시며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눈 빛으로 쳐다 보셨죠.
어머니의 그 손길과 눈길이 얼마나 따사롭고 좋던지 순간 내가 어린아이가 된 듯한 착각으로 어머니 가슴을 파고 들며 어리광을 부렸잖아요.
어머님 눈엔 그저 제가 아직도 철없는 막내 아가 일 뿐이구나 느끼니 울컥하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목을 타고 내려 가는 바람에 목젖이 데이는 줄 알았답니다.
내 나이가 이미 50을 바라 보는데 아직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며 달겨들 노모의 품이 있다는 사실이 이런 행복감을 주는 건지도 이 미련한 며느리는 이제야 깨닫는 거랍니다.
그래서 제가 결심 했지요. 어머니가 계시는 한 난 더 이상 나이를 못 먹겠다고 말입니다.

사람에게 인생 90이라는 세월이 이토록 경건하고 고매한 것인 줄 이제 어머니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됩니다.
송구한 표현이지만 어머님의 산 세월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전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님처럼 그리 살 자신이 없어요.
그 오랜 세월을 이처럼 정신도 맘도 가슴도 맑게 갈무리 할 수 있다는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죠.
항상 그렇듯이 달력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마저 열고 나면 갖가지 회한이 지나 간 날짜 수 만큼이나 가슴에 쌓여 옵니다.
잘 했다는 생각 보다는 잘 못 했다는 생각에 맘은 무겁고, 또 실없이 한 해를 보내고 격없는 나이만 하나 더 보탠다는 사실에 씁쓸하고, 지난 날은 어쨌거나 아쉽고, 후회스럽고, 허허롭고, 속절없고 ...뭐 기타 등등 그런 불편한 생각만 피어 오르죠.
허나 감히 어머니 앞에 세월 운운 하며 내 나이 들먹거리고 인생의 덧없음을 입에 올리는 것은 어머님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예의도 아니며 불경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이 숙연한 시간과 마주 대하면서 모든 것 다 차지 하고 올해 만큼은 어머니의 세월에 박수를 보내고, 이제 90을 맞으시는 그 연륜에 존경과 감사한 맘만을 올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말씀 땜에 저희가 한바탕 웃으며 12월을 시작했으니 그로 족하다 하겠습니다.

'엄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100세 까지만 살어'
'얼마나 더 살면 100살인데?'
'10년'
'너무 오래 살면 못 써'
.......

10년 후에도 우린 다시 그리 여쭐 테니 그 때도 그리 대답 하시면 우린 또 웃으며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막내는 그저 어머니 옆에서 아이마냥 재롱 떨며 어머니 사시는 내내 그 얼굴에 그늘 없게만 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참 뚱하기가 곰탱이 같은 며느리 25년만에 첨으로 어머님께 이런 어줍짢은 글로 맘 한 자락 열어 올렸습니다.
모자라는 말 맘으로 헤아려 이쁘게 받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올해 만큼만 건강 하시라고 깊이 깊이 부탁 드립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