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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을 다녀 오고 순천에 반했다


BY 土心 2003-11-24

 

작은 땅덩어리란 말이 수식으로 붙어 다니는 내 땅 대한 민국,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반도의 지형인 내 나라 대한 민국, 허리 잘려 그나마 절반은 가도 절반은 가 보지도 못하는 나 태어난 나라 대한 민국.
이 땅에서 수십 년을 살았으되 그 작다는  땅도 난 그 중 얼마만큼의 부분이나 밟아 보았을까.
내가 밟고 다닌 흙을 모아도 좀 과장 하면 한 줌이나 될까. 족적의 길이가 한 뼘이나 될까.
이 달엔 행복하게도 이 서울을 벗어 난 타 지방 여행을 두 번씩이나 하게 되었다.
이번 주말엔 순천을 다녀 왔다. 아마 기억에 없으니 초행인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초행에서 그만 순천에 반해 버렸다.
어느 작가가 순천을 지극하게 찬양 했기에 고향이니 그럴 테지 혼자 멋대로 생각 했는데 이번 투어를  통해 그 자랑 오히려 부족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서울 토박이인 내 눈에 비친 순천을 단편으로나마 잠시 소개랄까 기록이랄까 그런 의미로 여기 몇 자 적고자  한다.

내 다녀 온 곳은 순천에 소재한 순천만, 상사댐, 선암사 그리고 낙안 읍성이다.

먼저 순천만 이 곳은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기수 지역이라 한다.
기수 지역이라 함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을 이름인데 수천 평 되는 이 지역에는 만조와 뻘이 교차 되고 끝간데 없는 갈대가 숲을 이루며 천연 기념물 흑 두루미가 살고, 세계 260여 종의 철새들이 서식하는 곳이라 한다.
그리고 수천종의 미생물 보고로서 각종 생물의 먹이 군이 되고, 자동 정화 시스템의 자원이 되고, 염생 식물과의 공생 관계를 이루고,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터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이와 같은 만이 하나 형성 되기까지 6000여 년이 걸린 것으로 추정 하며, 사방 1cm정도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의 사슬 관계가 만약 오염으로 끊어 지게 되면 그 눈꼽 만큼의 땅을 회복 하는데는 10여 년이 걸린다고도 한다.
그러니 이 순천 땅이 얼마나 비옥 하며 이 지역을 이처럼 청정하게 지키기 위해 순천 주민들은 얼마만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지 짐작이 갔다.
그건 그렇고 내 눈앞에 펼쳐진 무한의 갈대숲은 뭐라고 형언 하면 될까?
누렇게 익을 대로 익은 갈잎 사이 사이로 아직 딱지 덜 뗀 노란 잎사귀는 서로 어우러져 명조 대비의 무늬를 이루고, 송이 송이 홀씨 꽃송이는 한 바람에 눈비 날리 듯 천지에 너풀대고, 바람결 따라 휘어지며 한 구령에 방향 맞추는 갈대 군락들의 춤 사위는 가히 장관을 이루며, 거기에 몸짓 따라 사각 거리는 갈잎의 흐느낌은 명창의 애절한 남녀 상열 지사 노래인가 싶었다.
헌데 듣기로는 어스름 해 기울기 시작 하면 낙조를 촬영 하기 위한 수백명의 사진 작가들이 산 등성이에 무리 지어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때를 기다리는 모습도 이 지역 장관 중 하나라 했다.
그렇다면 그 낙조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낙조가 장관을 이룸도 부족하여 그걸 보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의 무리마저 장관을 이룬다 하겠는가 싶으니 그 곳에 그 해 떨어 지는 모습을 못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 못 내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 싶은 한가지를 그 곳에 남겨 두고 그래야 다음을 기약 할 수 있다고 갈대와 하직 인사 나누고는 다음 행선지로 옮겼다.

두 번째로 가 본 곳은 상사댐이다.
순천에는 주암호와 상사호 두 곳에 댐을 건설해 놓았는데 늘 용수 조절을 할 수 있어 호남 대부분 지역의 식수와 공업, 농업 용수의 근원지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상수 보호 지역으로 그 곳에서는 절대로 물고기의 포획이 금지 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고 했다.
오로지 그 사람만이 낚시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니 그것도 신기한 사실이었다.
그처럼 철저하게 물을 보호 하는 노력이 있으니 그야 말로 순천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뜻을 알만 했다.
정말로 얼마나 물빛이 맑은지 바라 보는 눈이 부시고, 아마 신선이라 해도 감히 저 물에는 손도 못 담그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그 하늘에서 빛나는 투명한 햇살과 가볍게 흔들어 주는 청량한 초겨울 바람과 순하게 흘러 가는 그 청정천이 서로 한 몸 되니 이 땅에서 일구어지는 만물 생명은 그 자체로 보배구나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절로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다음엔 선암사로 가 보는데 이 사찰은 태고종 원찰로 많은 대덕 스님들을 배출해 내는 강원이며 선원이다.
일명 일철불, 이보탑, 삼부도라 별호도 붙은 사찰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 곳 사찰로 들어 가기 위한 초입에서부터 도량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그 도량을 감싸 안은 조계산의 푸근하고 유연한 모습을 어떻게 말로 풀어 내야 할지 이 대목에 와서는 그저 내 표현의 재주 없음이  한스러울 뿐이다.
어쩌면 뭐라 말로 옮기는 자체가 대자연에 대한 모독이고 불경이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아쉬워서 어눌한 주변으로나마 사족을 달자면 이러 하다.
몇백 미터쯤 걸어 들어가는 길 양 옆으로는 아름드리 나무와, 사이 사이 자라나는 자그마한 대나무와, 뻗은 가지가 멋스런 소나무들과, 수액을 만들어 가는 고로쇠 나무들이 군락 군락 어우러져 있는데 나뭇가지는 하늘에서 서로 만나 지붕 잇 듯 하고,  잎새 없는 가지 그 사이 사이로는 높디 높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하늘 색이 얼마나 짙게 파랗고, 티없이 선명하고, 맑고 또 맑고, 밝고 또 밝은지 나 지금까지 그런 하늘 본 기억이 전혀 없거니와 앞으로도 또다시 그런 하늘 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아마도 절반은 고개 들어 하늘만 보면서 걸어 간 듯 하다. 그러다 잠시 고개 아파 시선을 떨구고 보면 대나무 잎새에서 풍기는 기막힌 상그러운 풀내가 또한 내 코를 호사스럽게 하니 저도 한 번 봐 달라는 애교인 듯 하여 콧노래로 화답했다.
도량 거의 다가서는 야생 차 나무가 또 한 번 발길을 멈추게 하는데 차 나무만은 진 초록의 한 잎 낙엽도 없는 독야 청정 그대로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야생이라 크기는 제 각각, 자란 모양새도 제 각각, 널려 있는 자리도 줄맞추기 안 한채 그렇게  제 성질대로 멋대로 초겨울 기운을 얕잡아 도도하게 푸르러 있었다.
그러니 저 차 잎을 덖음 하여 향을 우려 내면 거기서 五味만 날까 신선의 그런 맛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 뿐이 아니고 주렁 주렁 붉게 매달린 감나무의 후덕한 모습과.  덜 벗겨진 산자락 각양 각색의 단풍 모습, 좀 누워 보자 느긋하게 누워 계신 와송의 연륜, 눈에 띄어 누굴 유혹하겠다는 건지 불타듯 홍조 띤 동백꽃의 자태, 묵어 쌓인 모든 오물 순간에 씻어 주겠다 주술 섞인 약수의 기막힌 짜르르함, 동짓날 본 볼일(?)이 내년 동짓날이 되어야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깊디 깊은 뒷간-그래서 볼 일을 봐 놓고 왔다. 내년 이맘때 가서 들어 보려고-,복원하고도 600년이 지났다는 고풍스런 전각의 단청, 불국사 석가탑 모습과 똑같다는 두 개의 탑.....'아~~~!'
두루 돌아 보는 내내 입은 그저 헤 벌리는 것 외엔 쓸 일 없고, 나머지 세포는 다 열어 놓았다. 보이는 것 있음 하나 남김 없이 꼭꼭 눈에 담고, 맡아 지는 것 있음 꼭꼭 코에 담고, 들리는 것 있음 꼭꼭 귀에 담고, 느껴지는 것 있음 꼭꼭 가슴에 담으려 얼마나 부릅뜨고 다녔는지 세포가 경련을 일으켰을 노릇이다.
그럼에도 일일이 어찌 다 말로 할 수 없고, 옮겨도 옮겨도 미처 다 옮길 수 없어 그러니 내 말재주가 한탄스럽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곳 역시 밤이 되면 하늘에서 축복의 폭죽을 터뜨리듯 얼마나 많은 별이 쏟아 질 까 생각하니 그 별 축제에 동참 할 수 없음이 또 하나 욕심으로 남아 서운하게 돌아섰다.

마지막으로 돌아 본 곳은 낙안 읍성인데 이 곳은 빈번했던 왜구의 침입이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임경업 장군의 지혜있는 통치력으로 사람과 마소의 힘으로 하루만에 쌓아 올렸다는 전설이 남은 유일한 민가의 성곽이다.
이 곳 또한 보고 들은 바가 많고 느낀 바도 많아 이 곳에 다 피력하기 어려우니 후일 소재로 남겨 두려 한다.
다만 마을 이름이 즐거울 樂 편안 할 安,  樂安이며, 동헌 명칭도 동헌이라 아니하고 이 곳 현판에는 無事軒이라 하였으니 얼마나 농경시대에는 태평 성대였을지 이름이 말해 준다 하겠다.

이렇게 나 혼자 보기 아까워 쬐금 포문을 열었으나 다시 한 번 제대로 설명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은 보되 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들리되 아는 만큼만 들리며, 느끼되 가진 가슴 크기 만큼 뿐이고, 말 하되 아는 식견 만큼이라 했으니 그 모든 것이 턱 없이 짧아 제대로 옮기지를 못 하겠다.
말 머리에 대한 민국 운운 하며 거창하게 시작은 했으나 이제 말미에는 오로지 일어 나는 소망 하나 있어 기회 있을 때마다 내 땅 밟아 보는 일에 마음 두자 함이다.
세계를 발 아래 두고 태평양 대서양을 넘나 드는 사람들 앞에 늘 주눅 들었었는데, 정작 주눅들어야 할 일은 내 땅 내 문화도 보려 하지 않고 또한 제대로 알려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지금까지 살았기에 이 곳을  벗어나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지냈던 옹졸함과 무지함이 새삼 부끄럽다.
지역 지역 마다 지방 곳곳 마다 우리의 금수 강산을 지키기 위한 노고가 부단히 진행 되기에 이런 청정 지역이 있음을 알아야 했다.
헌데 때 아닌 개나리 하나 보고 금방 세상이 뒤바뀌나 싶어 호들갑 떨고, 좋은 것 하나 보면 혼자 다 본 것처럼 호들갑 떨고, 나 스스로 생각 해도 경망스러움에 비웃음이 나니 이것이 바로 우둔하게 산 소치라는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메마른 가슴으로 살았기에 이슬비 한 방울에도 마른 흙 날리듯 마치 그리 가벼이 날리는가 새삼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허나 내가 좋은 것은 남도 좋겠거니 그 단순한 진리(?) 하나만 믿고 앞으로도  나 좋은 것 있음 앞뒤 없이 또 여기 이렇게 보따리 풀 것이다.
슬프고 화 나는 것 있음 그 것 또한 역시 마찬 가지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한 번 순천을 찾을 것이다.
아직 남겨 놓고 온 아쉬움이 많기에.
그리고 무료로 운행하는 투어 버스와 친절하게 설명하며 함께 다녀 준 자원 봉사자의 배려가 순천을 절대로 잊지 못하게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니 모든 것이 참으로 감사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