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절 어른들이 우릴보고 말똥만 굴러가도 웃는 때라더니
그 말을 이제서야 알겠다.
소녀들은 하루종일 소근대고 까르르 웃곤 한다.
여름 휴가 때마다 남편과 동네에서 함께 자란
다섯 친구들의 가족이 뭉치곤 했는데,
올해도 여지없이 함께 모여 여름 휴가를 즐겼다.
휴가때 뿐만이 아니라 신정때에도 함께 모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정이 듬뿍 들어서
의무와 책임과 서열간의 법칙이 존재하는 동기간들보다도 오히려
만나면 편안하고 행복해 한다.
지난 신정때 보고 처음 보는, 고등학생이 된 여자아이들은 이제
기다랗고 또렷한 몸의 선을 가진 처녀꼴들을 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일토록 먹고 놀고 조잘조잘 까르르~~
딸이 없는 난 그 애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도무지 설거지 하나도 시키지 않고 남자아이들과 똑같이 키우는
딸 가진 엄마들 또한.
이야기 소재가 뭔가 가만히 들어보니 거의 연예인 이야기다.
시험때에는 거의 꼬박 밤을 세워가며 성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걸 보면 머릿속이 텅 빈 아이들도 아닌데.
우리 때도 그랬었나?? 기억을 돌이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입시에 매여 단조로운 생활을 하기는 마찬가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그 시절의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도 같다.
작은 녀석은 교회에서 가는 학생회 야유회를 이끌어야 한다며 따라가고
이번엔 큰녀석만 데려갔는데,
너네 학교에서도 모꼬지 가면 여대생들이 다 저러니 물어봤더니
녀석의 대답이 참 재미있다.
주로 남자 친구가 없는 여자애들이 모여서 저렇게 소근대고
까르륵거리고 웃는단다.
남자 친구를 가진 여자애들은 마음 속에 무언가 품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편이고.
사랑에 정신 팔린 여자들도 보면
시끌시끌 뒤집어지는 수다판이기 마련인 모임자리에서
성급하게 자리를 빠져 나가곤 하는데 아마도 그런 맥락인 듯?? ㅋㅋ..
아무튼 요즘은 우리때보다도 훨씬 딸 아이 키우는 게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평소에 매직파마는 기본이고,
방학하기 무섭게 뽀글 파마와 염색들을 하고 나타난 걸 보면
그 비용들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런닝셔츠는 중고등학교때만 학생과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만 입었고
속옷은 펜티만 있으면 되었던 우리집 녀석들에 비해,
이쁜 갖가지 속옷은 물론이고 이쁜 바지에 치마에 색색가지 블라우스며 티셔츠며
아기자기한 악세사리등 부속으로 들어가는 비용들 또한 장난이 아니란다.
거기다가 새벽에 독서실까지 데릴러 다녀야 하는 걱정과 수고로움..
휴우.. 게으른 난 역시 아들만 키우는 엄마가 제격이다.
남의 이쁜 딸 보기는 좋아도
아마 난 이쁜 핀 꽂아 예쁘게 머리 빗어주는 일조차도
며칠 잘 해주다가는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딸을 낳았더라면 분명,
소녀시절의 까탈스러운 나처럼 엄마가 애써 빗어 쫑쫑 땋아놓은 긴 머리를
맘에 안들면 그 자리에서 다 풀어버릴 것이 뻔하니까.
당연히 엄마 생각에 또 마음이 아렸다.
울엄마.. 늘 남의 눈에 꽃이 되어야 한다며
구겨진 스커트 그냥 입고 나가는 날이면 벗겨서 갈아입히시던가
다려서라도 날 입히셨다.
미리 이야기 없이 조금만 늦게 돌아와도 집앞에 서서,
추운 겨울 날까지도 팔짱 낀 옴츠린 모습으로 서성이다 날 맞으셨는데,
난 그런 엄마가 많이 짜증 나기도 했었다.
새로 이사해서 제방이 생긴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노라 했을 때
허락해 주지 않는 엄마는 거의 지겨울 정도였었는데.
엄마는 그렇게 당신 할 수 있는 만큼은 애지중지 키운 작은 딸,
얼 결에 시부모 모시는 맏며느리로 시집 보내고는
금방이라도 일구대기 속에서 더는 못살겠다고 되돌아 올까봐
작은 녀석까지 낳아서 끽소리 없이 잘 키우며 사는 것 보실 때까지
밤잠을 설치곤 하셨다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늘 '너 잘 사는 것이 이 엄마를 위해 사는 것이다..'
라고만 말씀하셨던 엄마..
'그러다 시어른들 눈밖에 벗어나면 어쩌려 그러니..'
라고만 말씀하셨던 바보같은 우리 엄마..
세상에서 그럴 수 없이 천치 바보였던 난,
그런 엄마가 천년만년 살아계실 줄 믿고
철저히 시댁식구들에게만 좋은 며느리다.. 라고 인정 받고 살면
그게 다인 줄 알았다.
물론 날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엄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나자신에 대한 회한과 회의가 마음속 한자리,
극히 일부분이나마 차지하는 이유일 거라고도 생각하는데..
아무튼 난 여태껏 딸에 대한 아쉬움을 모른다.
삶, 혹은 삶의 방식이 유전되는 것이 싫다고나 할까..
살아갈 수록 엄마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고 있는 내가
참 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때로
지겨운 이유.
내 스스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가는 습관에 익숙한 내 삶의 방식을
내 딸아이에게까지 본받으라고는 하게 될까봐.
그럭저럭 내나이 사십중반..
시어머니 마흔일곱에 시집을 왔는데
어느새 그 나이에 근접해 있다.
발자욱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꾸중 들을까 주눅들던
그 시어머니가
겨우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이먹은 새파란 여자였나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힌다.
난 아닐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당신은 왜 그렇게 내게 가혹했나 싶다.
좀 더 따뜻하게 대견스러워하고 칭찬만 해 주실 일이지..
핀잔과 꾸중 끝에 지금의 이집 맏며느리가 있는 거라고 말씀하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훗..
그러고보니 나 어느새 며느리 볼 걱정을 하고있는 중이다.
지금의 저 말똥만 굴러가도 웃는 시절의 소녀들 중에
내 아들들의 배필이 존재하므로.. 쿠쿠..
난 가능하다면 친구같은 며느리를 보고싶다.
책은 커녕 영화조차도 모르는 머리가 텅 빈 여자가 아니었음 좋겠다.
청소는 조금 게을리하더라도 문화적인 대화와 분위기가 통하는 아이였으면.
성격도 물론 좋아야 하고.
이쁘면 더욱 좋고.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이런 내 여자가 아직 여친이 없는 큰녀석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살림을 잘하고 요리솜씨가 좋아도
취향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결혼생활이라는 걸 주장하는
이 왕푼이 엄마의 영향을 받아.. ㅋㅋ..
만약 그렇지 못한 며느리가 내아들을 장악하게되는 슬픈일이 일어난다면??
그래도 난 그 애를 사랑해야겠지.
좋은 점만 봐주려고 노력해야겠지.
살아온 날의 삶의 지혜를 나눠주려고 노력해야겠지.
온화하게.. 인자하게..
어디에 있을까.. 내 아들들의 배필이 될 그 아이들은..
아마도 지금.. 딸을 낳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이 들만큼
엄마의 무릎옆에서 엄마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으려나??
아니면 자아와 이기심으로 야무지게 돌돌 뭉쳐서
제 공부하는 데에만 급급하려나??
남의 집 귀한 딸이 자라 남의 집 며느리가 되고
그 며느리가 나이먹어 또 시어머니가 되고..
삶은 오늘도 여지없이 순환하고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다시 다가올 내일과 다가올 사람을
언제나 기대하며, 기다리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
그런 것들을 일러 희망이라 하는 것이겠지??
어느새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가냄새나는 손주를
품에 안고있는 상상까지 하고있다.
사람들이 내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늘 이쁜 할머니가 되고싶다고 말해 왔던 것처럼..
그렇게 당근으로 이쁜 할머니가 되어.
(그때가서 며느리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해도 할 수 없겠지만.. ㅋㅋ..)
炅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