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너무 늦게 사진 넣어서 미안해"
잊고 지냈던 그 사진이 메일에 들어온 것은 거의 한달만의 일이다.
무에그리 바쁜지 조카는 이제야 그 사진을 보내오고
할일없이 메일만 들춰 보던 우리들은 잊고 있었다. 그 사진을.
갑작스런 사촌 형부의 부고에 타지에 각자 살던 우리 네 자매가 모이게 되었다.
이젠 나이도 얼추 되고 보니 경사보다는 영안실에서 다들 모이기를 더 쉽게 한다.
명색은 사촌 언니의 위로차였지만 내심 보고 싶었던 피붙이들을 만나니
슬픈 영안실에서도 슬슬 웃음 소리도 내게 되고
우리들만의 추억 거리를 낡은 사진첩 정리 하듯이 차곡차곡 열어 보면서
그 밤을 아쉬워 할 정도였으니
아마 사촌 언니가 이 사실을 안다면 섭섭해 하겠지.
그러던 차에 조카의 디지털로 꽉꽉 조이며 사진까지 찍게 되었으니
이제서야 그 사진을 접하고 보니
시간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야, 니 사진 봤재?, 우리 다 친구 같이 보이재?"
친구라고라...내가 제일 막내인데.
그렇다면 내가 제일 나이를 먹은거네.흑.
나이 차이가 보통 열 서너살은 되고 보니
어릴적에는 감히 언니들과는 말도 잘하지 않았었다.
그저 어린 막내 동생에 불과하고
몇 푼 쥐어 주면 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의 꼬맹이에 불과했었다. 고작 내 위치란 것이.
늦은 겨울 밤에는 한 이불을 두르고선 곧잘 사다리 타기를 했었는데
막내인 나는 따 놓은 심부름꾼이었고
입안을 감도는 아이스크림 통을 바닥까지 긁어 먹는 혜택도 후하게 받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하나 둘 결혼을 하면서 어느 날인가부터 막내는 언니들과 말동무가 되는 수준인
아줌마가 되었고
사진으로는 언니 말처럼 친구로도 보이게 되었으니
질리게 그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내내
어린 시절의 그 얼굴을 떠올려 보아도
떼쟁이 막내는 이젠 보이지 않는다.
그리 닮아 보이지도 않고
언뜻 보기엔 각자 생긴 듯 하지만
이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보니
눈매도, 웃는 입가에도 우리들만의 그 시절이 묻어 있었음을.
비가 그친 아스팔트 위로
내일이면 또 다른 계절이 다가 오겠지...우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