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함 봐봐..."
퇴근길에 내놓는 남편의 손에는 밀폐용기와 책자가 들려있었다.
겉지부터 고급스러운 책자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안내 책자였고
평수도 운동장 크기의 놀라운 평수의
아무튼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는 내용이었다.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받아온 밀폐용기에 좋아라 하니
남편은 괜히 성질을 낸다.
그러든 말든
"캬..역시 돈이 많은 회사는 틀리네..공짜로 주는 선물도 쓸만한 것만 주네..흐흐"
욕실로 들어가면서 그런다.
"돈 많은 넘들 많드라..복권이라도 되야지..."
그렇지 않았다.
돈에 대한 개념도
집에 대한 넓이도
그저 주머니에 있으면 쓰고 없으면 있을때 쓰면 되고
집은 바람 막아주고 비 안새면 되는 줄 알고 그렇게 살아왔다.
어느 날 부터 남편은
가진 것에 대한 허망함과
부풀려 지지 않는 금전에 대해 침을 삼키기 시작하였고
불안한 여러 말들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였다.
더 웃기는 것은
그러한 남편의 달라짐과 정반대로
그러한 관심 사항들이 이젠 심드렁해지기한 나는
그전의 그처럼
돈은 없으면 안 쓰면 되고
등 따습고 배 부르면 된다는 식으로
그래, 건강하면 된다로 바뀌어 지고
올 한해 동안 우린 그렇게 자리바꿈을 하고 있었으니.
처음 이 집으로 이사를 한 날
그 기쁨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침 저녁으로 쓸고 닦으며
새로 장만한 물건들에 조금이라도 흠이 생길까봐
손에 걸레를 놓지 않았었고
정돈된 살림들을 앉아서도 보고
이쪽으로도 누워서 보고
반대편으로 돌아서도 보고
그저 흐뭇하고
반공기의 밥을 먹어도 뽀얗게 살이 오르는 듯이 살았다.
하루가 멀다하게 보며 쓰다듬고 그러던 것이
이젠 익숙하게 내버려 두고
햇살에 폴폴거리며 먼지가 날려도
마냥 구경만 하게 된다.
누가 그랬던 말이 생각난다.
십대에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욕심을 부리고
이십대에는 잃어 버릴 듯한 사랑때문에 가슴을 졸이고
삼십대에는 아파트 평수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사십대에는 남편의 혹시나 하는 바람때문에 심장을 상하고
오십대에는 건강하지 못한 육체로 인해 서러움을 삼키고
인생이 어찌보면 그러한 욕심때문에 바둥거리다 끝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숫자로 약속되어진 일년이 벌써 마지막을 보이고 있다.
오늘이 내일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나날들이 영원하리라 여기며 지내겠지만
글쎄, 어쩜 이러한 일상들이
가슴 저미게 그리운 그 어떤 하루가 있겠지.
볕이 맞춤맞게 들어 온 거실에 가만히 드러 누워
내가 가진 여러가지들에 대해
하나 둘 손가락으로 꼽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