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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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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야.


BY 다정 2003-10-22

 "축하해 줘, 나 이혼했어"

한대 얻어 맞은 듯이 앉아 있는 나에게 조용한 목소리도 아니고

화들짝거리게 그녀는 말한다.

 

 "이.....혼...?"

축하를 꼭 받고 싶다는 듯이 천연덕스레 웃음을 머금은 그녀가 갑자기 낯설다.

아이들이 자라고

훌렁 벗은 몸매가 둥그레해 지기까지 우린 얼마나 많이 욕을 했던가.

 "내가 저 인간하고 다시 살면....나 말야..그때부턴 네 딸할께.."

그래,차라리 내딸은 하지 말고 그냥 친구하자.

그렇다고 나보고 에미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매번 그 소리를 했었다.

그런 그녀가 조금은 조용히 늙고 싶다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마지막 건넨 이야기가 '이혼'이란다.

 

부럽지 않을 만큼의 물려 받은 재산.

언제나 싹싹한 남편,그랬다.남들 앞에서만.

사업상의 접대가 끝이 나면 그 다음의 접대는 그녀 차례임을

어느 날 짙은 아이샤도우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보이며 말을 했을 때

 "설마..너 정말 그러고 살았니?"

 

간사한게 인간이 아니던가.

솔직히 부러울 것이 없는 그녀가 얄미웁게 여겨지기도 했었음을.

번져 가는 눈화장 밑으로 붉그죽죽한 멍자국이 드러 났을때에는

간혹 숨겨 온 치졸한 마음이 순간 미안하고 당혹스러움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었다.

여자 연예인이 야구 방망이로 맞은 사건이 화면을 채우고

온갖 매체를 들썩이던 그 무렵

 "오죽하면 맞겄냐?"

보통의 남편들은 그렇게 반응을 보였다나.

'오죽하면'에 내포된 뜻은

 남성적인 우월감에서 나오는 수컷의 지배적인 성향이 아니었을까.

그 연예인이 이혼을 하였을 때

저마다 잘 했다고.그런 반응을 보인이들은 여자들이 대부분이었었다.

그런데, 친구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차마 건드릴 수가 없다라고 느꼈었기에.

 

더 늦기 전에 힘들었던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

'그래. 잘 했다'

그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럼 아이는?"

바보 같으니라구. 그 말을 다음에 해도 되는데,,정말 바보 같이.

 

 "아이? 줬어. 너도 알지? 울 시어머니.죽을라 그러드라."

 

갈비뼈에 금이 간 몸으로 시어머니를 만났을 때

당신 자식의 무모함에 늙은 노모는 그저

 "내가 몹쓸거여..."

 

결혼의 끝은 같이 묘에 합장 되어짐이 아니고

이혼이 되어 감을 심심찮게 본다.

외도도 시린 고통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은 인간임을 상실한 일이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절대로 알려지지 않게.

그녀는 그러고 십여년을 살았으니.

 

그녀의 결혼식이 생각난다.

우린 함께 꿈을 그렸었다.

평범하게.보통으로.남들처럼 살아가자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들쑥날쑥 칼질을 하는데

씽크대 위에 그녀의 남겨진 찻잔이 눈에 들어 온다.

이 말을 못했구나.

 

 "그래, 잘했다.

  전부터 너에게 말하고 싶었어.그렇게 하라고.

  늦은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