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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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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바꾸기


BY 다정 2003-09-28

간밤에 내려 앉은 먼지를 털어버리려 문을 열어 보니
아래층 난간에 호박이 널려 있다.
어느날에는 표고 버섯과 무 채 썰어진 것들이
광주리째 볕을 받더니
나박하게 썰여진 호박이 대나무 소쿠리에 가즈런히 누워 있다.
부지런한 아낙의 살림 솜씨가
가을 볕에서 한층 빛을 더해 간다.
한 켠의 인도 쪽에는 누구네 고추인지
야외용 반짝이 자리에서 빛깔 곱게 말려 지고
소리없이 동네에선 계절 채비를 어느새 하고 있었는지.
멍하니 내려다 보는 게으른 아줌마는 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가득이다.

출근하는 남편의 가디건을 주면서
너무 튀지 않냐고
은근히 걱정반으로 묻기에
가을이니깐 괜찮어..그랬다.
뭐가 그리 튀는 색인지,
빨간색의 가디간에 괜히 얼굴이 상기된 남편은
차안에서 분명 벗을 것이고
그냥 가을이니깐,, 으로 무심히 건네는 내 말은
이미 그의 안중에는 없을 것이다.

끄적끄적 쌓여진 여름 옷을 접으며
딸에게 실데없이 한마디 하다가 핀잔만 들었다,어젠.
ㅡ엄마 옷은 나중에 네가 입어도 돼..알았재??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여름에 가신 형님의 남겨진 옷가지들을 두고
시댁의 식구들은 한결같이
태워 버리기를 종용했었고
아이들은 끝내 그 뜻에 따르지 않은 기억이 나기에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더니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고
이미 뱉어 버린 말에 속으로는 아차 싶었지만
ㅡ야,,옷값이 아깝잖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서 수습도 못하고 난 왜 이런지.

이미 와버린 계절은 농염해져 가는데
먼발치에서 서성이는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계절앓이인지.....
200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