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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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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게 진 빚


BY 뜰에비친햇살 2004-09-08

 
    쉬쉬하며 아프던 몇 날 사이 엄마의 정기적인 병원 동반을 한번 잊어 먹었고 사춘기를 넘기는 큰 녀석과 징그러운 다섯살을 보내는 작은녀석의 몸서리 나고 법석스러운 여름방학을 불볕 더위속에 함께 하는 동안 풀었다 감았다 뜨게질을 하며 두문불출하던 나의 소식을 궁금해 하던 친구들에게 그동안 도를 닦았노라고 둘러댔다. 그러던 며칠 전 매번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 주던 엄마에게 몇 날만에 밑반찬 두어가지를 싸 들고 갔다가 차가 흔들리는지 내가 흔들리는지도 모르게 휘청거리며 들어와 목젖이 아프도록 구역질을 해 대며 울었다. 구태여 체했다기보다 속절없는 원망과 통탄이 엉어리가 되어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함께 쏟아 내었다고 해야 맞을거다. 고쟁이 바람으로 따라 나오며 무거운 입을 떼고 들어가던 그녀을 뒤로 하고 나오던 걸음이 천근이었다. 5층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현기증이 나고 귓전이 윙윙거리고 뻣뻣한 뒷목에 손을 움켜 쥐며 걸어 내려오는 다리가 바라바리 챙겨 들려주던 봉지들과 함께 후들거렸다. 어찌 사는게 맨날 그 모양이냐 측은해 하며 한번도 내색않던 그녀가 조만간 얼마라도 해 줄 수 없겠냐며 미안한듯 입을 떼던 모습이 영 지워지지 않아 그동안 당신께서 주었던 물질적 정신적 사랑이 빚이 되어 버린지 오랜 죄스러운 나의 마음에 무거운 돌이 되어 얹힌듯 가슴 속으로 체증이 몰려 답답하고 숨막히는 급체가 되어 되돌아 왔다 . 그녀가 고혈압과 당뇨라는 지병을 얻어 일손을 놓은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아프고 늙는다는걸 그토록 서러워하고 일 손을 놓는다는걸 두려워하던 당신이 정작 그리 되고보니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에 당신의 세 나무들마저 든든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더욱 기운이 빠지고 있는듯 하다. 허구헌날 잔병과 생활고로 아둥바둥하는 측은한 첫째 나무 제대 앞두고 당한 교통사고로 장애을 얻은 둘째 나무 돈에 포은이 져 버려 제 손으로 뭔가를 이루기 전엔 당신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막내 나무 그녀의 나무들은 여직 든든한 나무가 되질 못하고 흔들리고 있으니 아무 도움이 되질 못하는 첫째 나무의 가슴에 눈물이 솟는다. 내가 아프다는걸 당신이 알면 득달같이 와 주는데도 내가 아프면 엄마가 아프다는걸 나는 곧 잘 잊는다. 말로는 걱정할까봐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아프다는 걸 까맣게 잊고 눈물을 보이고 만다. 고질병인 기관지염과 스무날은 넘게 줄달음 하다가 겉보기엔 멀쩡한 큰나무는 최근에 내원한 병원에서 당분간은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할거라는 경고성 발언을 또 하나 보탰다. 지난 해 부터 종종 뒷목이 뻣뻣해지며 오르락거리는 혈압이 이상 신호를 보내 왔다. 어릴적부터 잔병과 감기다 결핵이다 뭐다하며 애를 태웠는데 난 서서히 당신의 병력도 닮아 가고 있는게 아닌지 내 몸부터 또 걱정을 한다. 그녀에겐 이건만은 비밀로 해야 겠다. 알게되면 그녀 가슴에 대 못 하나 더 박아야 할지 모르니... 늦은 밤 해산일을 앞 둔 동서네를 다녀오는 길에 음주 단속반의 대열에서 순번을 기다리다 창문을 열고 긴 숨을 훅 쏟아 뱉으며 속으로 지껄였다. 우이씨~ 로또 복권같은 건 왜 내겐 떨어지지 않는거야? 갈지字 저 양반은 내 속을 모르겠지? 어이 신참~ 뱉어 놓은 내 속내를 너는 알 것 같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