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에 형님들과 남편은 고구마를 캐러갔다. 나는 아이들 차지에 점심당번이었고.. 작년보다 심는 양이 적었고, 인원수는 많아서였는지 점심 먹을 때에 고구마를 다 캐었다. 아버님의 경운기에 잔뜩 실려온, 싱싱한 흙이 치렁치렁 메달려있는 보랏빛의 고구마가 참 예뻐보였다. 내가 캐지 않아서 그런지..얼른 쩌서 먹어보고도싶고. 그러나 웬걸.. 점심을 먹고 난후 여자들 넷이서 작년 겨울부터 묵어온 장독을 헹궈내기로 한 것이다. 동치미독, 고추삭인 독, 묵은 김장김치가 담겨져 있던 독, 오이지가 잔뜩 들어 있는독... 여기저기서 다 끌고 나와보니 소영이 키만큼이나 되는 장독들이 6~7개가 되는 거였다. 몇십년이나 된 독들일까. 궁금함도 잠시. 우물가로 햇빛구경을 하러 나온 독들에게서 차마 숨을 쉴 수 없게만드는 악취가 내 정신을 뒤흔어 놓았다. 묵은..썩는 듯한 내용물들을 다 쏟아버리고 우물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물로다가 한놈씩 목욕을 씻겨주었다. 어떤건 떄가 잘 벗겨지지 않아 몇번씩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더니 고르지 못한 벽면에서 묵은 때가 씻겨져 나가고, 독의 투박한 질감이 정직하게 드러났다. 마당 수도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독들을 보고 나니, 이렇게 가슴이 후련해질 줄이야..
생각해보니 겨울준비의 시작인 셈이다. 이제 하나 둘씩 소소한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베기를 하고 나면 긴긴 겨울이 찾아 올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잠깐의 가을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왔다. 몇일을 장독마다 물이 그득히 채워진 채로 따가운 햇빛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묵은 냄새가 가셔지고 나면 다시 긴 겨울잠을 시작할테지..
당분간 마당을 오갈 때마다, 그 독들을 볼 수 있어 참 흐믓할거 같으다.
그러고 보니 몸살 기운이 웬만큼 날아가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고된 노동후의 이 가벼운 느낌..을 데이빗 소로우가 좋아했었던 건 아닐까..싶은생각..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이제 잠을 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