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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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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BY 행운목 2003-10-28

"오겡끼데스까~"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이 여운이 들려오는 듯 하다.

요즘 인터넷으로 소설을 종종 즐겨본다.

책으로 읽는 재미 보다야 못하지만 바쁜 시간 틈틈히 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다.

오늘 읽은 작품. 러브레터...

이름이 같은 남과 여.

히로꼬라는 여자가 사랑했던 남자. 후즈이 이츠키...

그 남자는 3년전 산에서 죽었다.

그 남잘 잊지 못하고 있던 히로꼬는 그의 기일날 이츠키의 집을 가게 되고, 오래된 중학교

앨범을 발견했다. 앨범 뒤 주소록에서 옛날 그가 살았던 주소로 장난 삼아 편지를 하게 되고,

놀랍게도 후즈이 이츠키라는 사람에게서 답장을 받게 된다.

사실은 답장을 한 사람은 히로꼬의 애인과 동명의 같은 반 동창이었던 후즈이 이츠키라는

여자였다.

처음 본 히로꼬라는 여자에게서 편지를 받은 이츠키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같은 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 이츠키를 기억해 내었고, 나중에 그 약간은 괴짜스러운 남자 이츠키

의  첫사랑이 자신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히로꼬는 자신이 이츠키와 너무나 닮은 외모 때문에 그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가 죽은 산으로 가서 그를 마음속에서 보내며 눈 내리는 산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오겡끼데스까~"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모른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아, 그때 그가 날 사랑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될 때의 기분....

아마도 한번쯤은 경험이 있으리라.

오늘은 이 러브레터란 소설 때문에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 올랐다.

나를 쫓아온 첫 남자아이. 내가 사귄 첫 남자친구. 내가 처음 짝사랑한 사람. 그리고 내가

받은 첫번째 러브레터까지도...

 

초등학교때 나를 너무 괴롭히던 말썽꾸러기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애와 짝이 되었을때 정말이지 학교가기가 싫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가 그렇게 날 괴롭혔던 건 나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는

고백을 들었다.

첫사랑.

빛바랜 사진처럼 모두들 첫사랑이라는 추억을 마음 속에 묻어두고 사는 것 같다.

내게 처음 러브레터를 주었던 아이는 중학교 겨울방학때 시골에 내려갔을때 보았던 남자

아이였다. 그 아이의 서툰 글씨체와 유치한 문장에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처음으로 날 쫓아왔던 남자아이는 고등학교때 같은 학원을 다니던 아이였다.

내가 탄 버스를 뒤따라 타고, 내가 내린 정거장에서 내리며 우리집을 갈때까지 주저주저

하면서 힘겹게 말을 꺼내던 그 아이...

난 다음날로 학원을 옮겼다. 그 아이들의 모습은 내 기억속에 없다. 길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전혀 모르고 지나가리라... 한번쯤 내 추억의 한 부분을 차지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리고 내가 사귄 첫 남자친구는 고등학교에서 였다.

쌍거풀진 큰 눈에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

그 아이 덕분에 내 고교시절은 풍요로웠다. 우리는 주로 도서관에서 만나, 점심을 도서관

매점에서 같이 먹었고, 육교위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함께

연극도 보곤 했었다.

그 아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아리다...

태어나서 처음 본 남자의 눈물... 그땐 서로 너무 어렸고, 너무 서툴렀었지...

그 아이의 결혼식... 커다란 성당이었다.

그리고 내 결혼식에 그는 오지 않았다.

지금은 서로 세월의 때가 묻은 중년의 모습이 되어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을터였다.

 

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아직 단풍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나뭇잎들은 벌써 그 메마른 잎들을 떨구고 애처로이

거리를 뒹굴고 있다. 이 낙엽처럼 무미건조해진 남편과 나...

그러고보니 우리도 헤어지기가 싫어서 마음 조리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스치는 손길에도

떨리던 그 순간이 분명 있었더랬다.

오랫만에 남편에게 진한 러브레터 한장 써볼까나?

"그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