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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맛


BY 행운목 2003-09-27

맞벌이로 직장생활만 할땐 그래도 김치는 꼭 담가 먹었었는데, 남편이 일을 시작

하면서부터 덩달아 나도 바빠졌고, 김치담글 시간조차 없어 고심 끝에 사다 먹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한달에 한번정도 주문을 하는데 맛도 깔끔하고, 식구들 반응도

괜찮았다.

게다가 남편 도시락 때문에 밑반찬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것 역시 파는 밑반찬을

주로 애용하게 되었다.

지난 봄, 딸아이 소풍때는 김밥도 동네 김밥집에서 맞춰서 보냈다.

누드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등등... 깔끔하고 맛깔스러워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종종 이용하곤 하던 집이어서 고민 없이 사서 보냈었다.

이번주 금요일에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간다고 했다.

이번에도 김밥집에서 사서 보내야지 하면서 딸에게 어떤 김밥으로 해 줄까? 하고

물었더니 딸이 그런다.

"엄마, 맘대로 해.... 근데 난 엄마가 싸 준 김밥이 제일 맛있던데..."

"그집 김밥 맛있게 잘 하던데, 왜?"

"몰라, 그래도 엄마가 싸준 김밥만큼 맛 없어."

그랬구나. 난 그저 바쁘고 내 몸 편한것 만 찾느라고 엄마의 손맛이 담긴 김밥을

싸 줄 생각은 아예 안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저녁 무슨 반찬, 무슨 국을 해먹어야 할까 하는 고민조차 거추장스러워

국배달 서비스라도 받아 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힘들어도 내손으로 꼭 김밥을 싸서 보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전날 문구점에 색상지전용 앵글과 색상지가 새로 들어왔다.

그동안 색상지나 시트지 같은 것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한쪽에 쌓여 있어서

고르는 사람이나 빼주는 사람이나 힘들었었다.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앵글을, 깨끗이 청소하고, 색색으로 맞춰서 칸칸이 정리하고

하다보니 시간이 10시가 넘어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문구점으로 가서, 저녁도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계속 일을 했더니

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이 상태로 내일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싸야 한다는 건 무리다. 출근도 해야 하는데...

 수 없이 늦은 시간에 딸을 불러내서 음료수와 과자, 과일을 같이 사면서 김밥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딸은 "괜찮아, 엄마. 참치 김밥 맛있으니까 그거로 주문하자." 하는 거였다.

요즘 벌써 사춘기에 들어서는지 - 초등 4년인데 - 짜증이 늘고, 퉁퉁거리기만  하던

녀석이 제법 어른스럽게 넘어가 주니 미안하기만 했다.

김밥집에서 건네준 1회용 도시락에 그대로 보내기가 마음아파 예전에 늘 담아

보내던 도시락에 1층에는 과일을, 2층에는 참치김밥을 넣어 싸서 보냈다.

 

엄마의 손맛이 그리운 아이...

그 딸에게 내손으로 김밥 한번 못싸주는 나는 나쁜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