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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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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와 드라마


BY 영원 2003-09-06

 

아줌마가 된 지도 어언 2년. 누가 들으면 웃겠지만 생활은 여느 10년, 20년차 아줌마 못지않다. 내 자신도 설마했는데 현실임을 남편이 꼬집어 주었다.


어느 날 한참 재미있게 일일드라마에 빠져서 보고 있는데 퇴근하던 남편이

“저거 아직도 해? 저 뻔한 스토리. 저 여자 주인공 아마 배신 때리고 돈을 선택할 걸.”하며 삿대질까지 해가며 나보고 들으란 듯이 한 마디 했다.

“조용히 좀 해. 지금 결정적인 순간인데. 안 들리잖아.”

“아이구. 서방이 오는지 오방이 가는지 관심도 없고 흑흑. 마누라는 드라마에 빠져서...”남편은 장난삼아 말한 거였지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새벽에 별보고 출근했다가 오늘은 그래도 일찍 온다고 저녁 8시 반에 퇴근한 남편을 본 체 만 체하고 드라마에 빠져서 침을 젤젤 흘리고 있었으니. 하루 종일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고 와서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 정말 미안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난 또 드라마에 빠져있다. 8시 30분만 되면 어김없이 TV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꿋꿋이 앉아 있다. 9시. 다른 채널로 재빨리 돌려 또 다른 드라마에 빠진다. 9시 25분. 또 다시 채널을 돌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시 50분에 한 번 더 돌린다. 그리고 드라마와 드라마 사이 광고 시간엔 못 다한 설거지를 잽싸게 해 치운다. 참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업 주부인 나는 다른 채널에서 하고 있는 드라마의 내용이 궁금해져 끝내 그 다음날 재방송으로 챙겨 보고야 만다. 드라마 세 편 이상 보면 ‘아줌마’라던데 그런 말 무시한 지 오래다. ‘그럼 아줌마보고 아줌마라고 하지 뭐래?’하며 되레 큰 소리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0시에 퇴근하던 우리 남편. TV 앞에 바짝 앉아 드라마에서 눈을 못 떼며 얼굴까지 벌개져서 “음~ 너무 낭만적이야!”하며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나에게...

글쎄 배를 쑥 들이밀며(사실 남편이 젊은데도 배가 많이 나와서 가만히 서 있어도 배가 불룩함) “우리 햄 구워먹자! 배고파!”하는 게 아닌가.

와~ 어찌나 허탈하던지. 세상에 남은 낭만적인 드라마를 보며 연애할 때의 추억이 떠올라 감상에 젖어있는데 그렇게 허무개그를 하다니...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루 종일 육체적, 정신적 노동으로 피곤해 하며 배고프다고 배를 잡고 있는 남편이,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남편이 보였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귀까지 빨개져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바로 TV끄고 나와 냉장고를 열었다.

“오늘은 왠지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싶네.”하며 난 있는 재료 총동원하여 솜씨는 없지만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남편만을 위한 안주를 정성껏 만들었다.


“쨘~! 행복한 우리 가정과 사랑을 위하여! 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