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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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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의 친구


BY 다정 2003-09-13

작은아들의 친구
                                                                홍영숙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 오월에 떨어져 있던 가족이 만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을까! 하물며 몇 년을 얼굴도 못보고 그리움으로 살았던 모자가 다시 만났다면 감격의 순간으로 흥분이 좀체로 가시지 않으리라.
  3월 중순경의 일이다. 휴일날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중학교 2학년인 작은 아들이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한 반 친구인 동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새 엄마와 사는데 밥도 주지 않고 방과후에도 10시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쌍한 친구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는 거였다. 그때는 안됐다는 표정으로 들어만 주었는데, 얼마 후에 애걸하다시피 남편을 조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쌍하니까 우리 집에 데려와 함께 살면 안되느냐고 묻는 말이었다. 심성이 곱고 여린 아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저러다 그만두겠지 하며 잊고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자기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아서 행복하다는 둥 엄마가 너무 좋다는 둥 갑자기 철든 아이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휴일날 친구 생일잔치에 간 아이가 저녁 6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걱정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지금 빨리 오라고 야단을 쳤더니 잠시 후에 잘못했다고 빌며 들어오는게 아닌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온 아이를 향해 야단치고 있는데 남편이 문을 열며 잠깐 나와보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체구, 잔뜩 겁먹은 눈을 한 아이가 현관 앞에 서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하라는 눈짓을 하며
  "어서 들어오너라. 윤성이가 아침에 나가서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와 혼나는 거     야."
   남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아이는 아들이 말한 동현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딸기를 주니 눈치를 보며 연신 먹어도 되느냐고 묻고는 먹는다. 측은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밤 9시가 넘었는데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가기를 독촉하니 10시가 넘어야만 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물어본 난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깨워서 밥도 주지 않고 그냥 내쫒고 저녁에는 10시 이후에야 문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벌써 2년째 그 생활을 한다고 하며, 가끔 아빠가 주는 돈으로 컵 라면이나 빵을 사먹고 지냈다고 한다. 현재 6학년인 동생이 배가 고파 저금통에서 돈을 꺼낸 후부터 10시 이후에 들어오게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어린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점심은 담임선생님께서 무상금식을 하게 해주셔서 해결하며 문방구 앞에서 놀거나 서현문고에서 책을 보다가 시간이 되면 들어간다는 말도 곁들인다. 배가 고파도 어쩔 수 없이 참는단다. 아빠는 새벽 6시에 나가서 밤 12시가 되어서야 들어오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어쩌지를 못한다는 소리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동학대죄로 고발하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담임선생님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게 한 후 동현이는 매일 방과후에 우리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학원에 가는 아들을 따라 밖에서 기다렸다 오기도 하며 지냈다.  밤 10시가 되면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 남편이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고 아침 식사로 빵과 음료수를 준비해주는 일은 내 몫이었다. 하루 이틀 한 달이 다 되어가자 심한 감기까지 앓게 된 나는 온 식구가 밤늦은 시간까지 그 아이에게 매달려 다들 지친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부모가 챙기지 않는 아이를 우리가 이렇게 챙겨야하나 하는 회의도 들고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되었다. 마침 그런 심정일 때 담임선생님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둘이 앞뒤로 앉아 우리 아이가 산만해지는 것 같아 자리를 바꾸었다는 전화가 왔다.  그 다음날부터 동현이는 저녁만 먹고 삼성플라자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10시까지 어디서 무엇을 할까? 그냥 우리 집에 있으라고 할걸……. 어쩌다 그 애가 오지 않았다는 날은 하루종일 걱정이 되고  체증 걸린 듯  가슴이 답답해지곤 하였다. 대개가 그 날은 학교에 오지 않은 날이다.
  수학 여행을 가기 전날 저녁을 먹고 있는 그 애와 오랜만에 만났다. 감기가 심해 약을 먹였더니 얼마 있으면 해결이 날거라며 자포자기의 표정을 짓는다. 아줌마라 부르는 새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는데 내쫒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집이 팔리면 이사를 가는데 절대 데려가지 않는다고 했다고 하며 친엄마를 빨리 찾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점심과 간단한 간식을 내일 아침 윤성이편에 보내준다고 하니 '오랫만에 제대로 된 도시락 먹어보겠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바라보는 나도 이렇게 막막한데 저 아이의 심정은 오죽할까!         
  동현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수학여행을 다녀온 날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열고 복도로 들어오는 순간 현관을 나서는 그 애와 마주쳤다.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감기가 더 심해져서 열에 들뜬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가버리고 만다. 집에 들어와 남편에게 물어보니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집에 가서 씻고 푹 쉬라고 보냈다는 게 아닌가! 그 날은 남편이 야속하게 생각되었다.  다음날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월요일 날 친엄마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아들이 전해주었다. 이틀 전에는 중간고사를 끝내고 친엄마 품으로 돌아갔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엄마 찾아 축하한다는 말을 아들 편으로 전하긴 했지만 좀 더 따뜻하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못내 걸린다. 
  비록 전화 한 통화 없이 가버린 아이지만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으로 건져진 그 아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축복을 내린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내게 있어 이 오월은 마음의 짐을 벗은 의미 있는 날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훈풍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착한 내 아이의 마음 자락을 사랑하면서 우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파이팅을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