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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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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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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휴지 수집일


BY 다정 2003-09-13

폐휴지 수집일
                                                                      

  매월 마지막 목요일과 금요일은 학교 월중행사인 폐휴지 수집일이다. 오늘도 학교 앞 정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란스러움과 북적거림이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낑낑대며 들고 오는 학생들의 낯익은 모습에서부터 각양각색의 진풍경은 생동감과 함께 가벼운 흥분까지 느끼게 해준다.
  학교 운동장까지 차를 끌고 들어와 폐품을 내려놓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자식에 대한 의무를 다한 양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손수레를 끌고 오는 엄마들의 모습 역시 출근시간에 쫒기는 초조한 눈빛과는 달리 걸음걸이는 마냥 의기양양해 보인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꾸리기 위해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마음아픔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이날이 되면 학교에 학부형들이 가장 많이 오시는 날이다. 자식사랑을 몸으로 마음으로 보여주는 그 모습에서 조금씩 차 오르는 따뜻함과 상큼한 행복감에 갑자기 들뜨고 만다. 그 들뜬 기분은 가속도가 붙어 수고하시는 담당 선생님과 어머니 그리고 학교 기사아저씨한테까지 상냥한 인사와 함께 미소를 선사하게 한다. 괜히 즐겁다.
  "흘린 것은 다 주워서 함께 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이마에 주름살이 쪼글쪼글한 할아버지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지시하듯 교육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네, 네"하며 주워서 가지고 가는 엄마들... 그때까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여기 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손자 손녀를 위해 손수 폐품을 들고 와 폐품수집 기록카드를 들고 서있는 모습, 숨을 천천히 몰아 쉬며 폐휴지를 놓았다 들었다 하시며 들고 오시는 모습, 아이들 곁에서 대견스러운 듯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다워 보인다. 그때 인자한 눈빛을 한 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전혀 낯설지 않은 얼굴, 사랑으로 가득한 얼굴은 누군가를 닮은 듯하다. 눈인사를 한 후에 '누굴까' 생각하니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왈칵 치미는 그리움과 함께 나의 국민학교 시절이 되살아났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에도 폐휴지 수집일이 아닌 학교행사로 매월 전교생 수집일이 있었다. 1960년대로 시멘트 포장지가 화장실 용지로 쓰이던 때라 폐휴지 수집이란 언감생심인 시절이었다. 지금의 폐휴지 수집일 대신에 '쥐꼬리 수집일', '파리 수집일', '퇴비 수집일'이란 것이 있었다.
  '쥐꼬리 수집일'은 쥐틀에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 말렸다 성냥갑에 넣어오는 날로
그 당시 집집마다 쥐틀이 없는 집이 없었다. 우리 집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이어 혀를 끌끌 차며
  "우리 영숙이 학교 숙제감이 잡혔는데 웬 방정이냐"
  "빨리 가위나 가져오너라"
  하시던 할머니의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우리 할머니는 쥐도 무서워하지 않고 더러워 하지도 않는다"
  자랑스럽게 친구들께 이야기하던 그 철없음까지 대견해하시던 할머니셨다. 쥐꼬리를 잘라 어김없이 성냥통에 넣어 주시며
  "잊어버리지 말고 학교 가거든 선생님께 꼭 갖다내거라"
  몇 번이고 내게 다짐하듯 이르시던 말이다. 그 덕분에 한번도 선생님께 꾸중을 듣거나 가져가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그 사랑 앞에 감사할 뿐이다. 한 번은 쥐꼬리 대신에 마른 오징어 다리를 넣어왔다고 종아리를 피나게 맞았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남자 동급생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 아파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야단만 칠 일이지, 그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종아리를 그    렇게 피나게 때리누 쯧쯧..."
  손녀를 위해 쥐꼬리를 자르시던 그 손길이 그립다. 그뿐만이 아니다.
  "잊어버리지 말고 학교 가거든 선생님께 꼭 갖다내거라"
  밤낮으로 파리채를 손에 들고 파리를 잡아 작은 성냥갑에 소중하게 넣어 두었다가 똑같이 반복하시는 말씀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 많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팔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새벽기도를 다녀오시자 마자 낫을 들고 들판이나 풀밭으로 가셨다 오시는 할머니의 손에는 어김없이 몇 웅쿰의 풀이 들려 있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을 비오는 날을 빼고는 매일같이 가져와 그늘에 말리시곤 하셨다. '퇴비 수집일'날이면 풀어질까 묶고 또 묶어서 학교까지 들어다 주셨다. 그래도 못미더워 선생님께 내는 모습을 지켜본 후 집으로 향하시던 할머니의 따뜻하기만 하던 작은 등이 오늘따라 눈물나도록 그리워진다.
  시간이 흐르고 생활의 풍속도는 달라졌어도 내 가슴에 살아있는 국민학교의 '쥐꼬리 수집일', '파리 수집일', '퇴비 수집일'은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받은 축복 받은 나의 어린 시절이라 할 수 있다. 먼 훗날 지금의 아이들도 그들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의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입 속으로 "할머니"라고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