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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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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으로(10부)


BY 로렐라이 2003-09-23

  10부

 

  집에 들어와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엄마는 없었고 언니만 있었다. 그런데 언니가 내게 귀뜸해 주는 것이다.

  "정은아, 너 엄마 무지 화나 있으니까 니 방에 들어가 얌전히 있어. 엄마 시장가셨으니까 곧 오실꺼야. 어서 니 방에 들어가 있어."

  왜 내가 방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지도 모른채 나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조금후 엄마가 오시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 방문이 열리고 닫혔다.

  이미 밖은 어두워 져 있었고 불을 켜놓지 않았던 방안은 어둠이 서서히 잦아 들고 있었고 그래서 방문앞에 우뚝 선 엄마의 모습은 흡사 난장이를 잡아먹으려는 거대한 성난 거인처럼 보여 나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순간 엄마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우리를 종종 따끔하게 하는 방빗자루임을 깨달았다.  

  "너, 이리와 앉아. 어서!"

  엄마는 강압적으로 내게 소리치셨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엄마앞에 무릎을 꿇었다.

  "너 엄마 말을 뭘로 알아 듣는거야? 일찍 들어오라 했는데 그래, 일찍이 6시야?"

  엄마는 집이 떠나갈새라 소리치셨다. 특히나 방안은 불이 꺼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창을 등지고 앉은 엄마의 모습은 더더욱 시커먼 괴물로 흔들리고 있었다.

  "너 그애랑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야 들어 온거야? 바른대로 말해.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너 아주 맞아 죽는 줄 알아. 어서 말해."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호통치는 소리도, 손에서 춤추려 하는 빗자루도, 어두운 방안도 모두 모두 무서웠다.

  "엄마... 아무... 아무 얘기도 안했어. 정말이예요. ... 그냐...앙 만나서 집주변에서 돌아다니다가 온거야. 정말이야."

  그러나 이미 엄마는 나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침나절에 나가서 밤이 되서야 들어와 놓고서 뭐? 얘기를 안했다구? 이게!"

  엄마는 나를 때리려는 듯 빗자루를 하늘높이 치켜 들었고 어둑어둑한 방안에 그나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으로 엄마의 행동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엄마... 엄..마..아앙..."

  난 다급하게 애걸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의 추악한 상상(?)을 부정하면 할 수록 엄마는 더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결국 엄마와의 오랜 실갱이 끝에 엄마는 내게 다짐을 받아갔다.

  "다시는 그애 만나지 마라. 다음에 또 오거든 처음부터 못본척 할 수 없을테니까 처음엔 인사만 하고 그 다음부터는 아는 체도 하지마. 알았어?"

  "..."

  "  왜 대답 안해? 니가 오빠가 없냐, 언니가 없냐, 어떻게 지 친오빠 생일선물은 잊어 버리는 게 남의 오빠한테는 크리스마스라고 선물을 해?

  기가 막혀서. 네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애냐? 다신 만나지 마 알았어?"

  결국 나는 얼굴전체를 눈물로 뒤범벅이 한채 '네' 라는 대답을 함으로써 그 무서운 ,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상황에서 해방될수 있었다. 그날은 바로 수요일 이었기에 엄마가 교회에 가신 사이 집에서 빠져나올수 있었고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걸을 수 있었다. 그후 10년이 지난 지금, 아니 어제까지도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많은 시간, 배갯잇을 적시며 잠을 청해야 했고 슬픈 노랫말을 실은 가요가 들리면 그를 생각하며 울어야 했고 TV에서 사랑하던 연인들의 이별을 보면 어느새 그를 그리워하며 울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고1이 되었다. 이민주 라는 사람이 나라는 아이를 만난 그때쯤...

  나는  도저히 그가 그리워 , 보고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렇게 달달 외웠던 전화번호를 엄마에게 혼줄이 난 후 이민주에게 전화를 하고 나서 바로 그 후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당시 국번이 428이었다는 것 밖에...

  그래서 나는 그당시 나를 가르치셨던 교회 집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정은이..."

  "그럼, 교회는 잘 다니고?"

  "예. 별일 없으시죠?......"

  .........

  "그런데 선생님, 혹시 이 민주라고 선생님이 아끼시던 학생 기억나세요?  그 오빠 전화번호, 혹시 알고 게셰요?"

  염치없는 질문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요감무쌍하게 물어보았다.

  "아니, 정은이가 교회 그만두고 아마 민주도 나오지 않았지... 그래서 그후의 소식도 알지 못해."

 생각외의 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성실히, 열심히, 부평에서도 잘 오가며 다니던 교회를 나와 헤어진 후 나오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그 오빠도 나를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로 인한 아픔때문에 교회까지도 그만 둔 것이 아닌가...

  비록 이민주에 대한 연락처는 알수 없었지만 그러나 막연한 그리움에서 약간의 희망을 건질 수 있었다. 결국 그 선생님께 내 전화번호를 남겨두는 일로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고3이 되었다.

  여전히 이 민주에 대한 그리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 교회 선생님을 좋아해 보긴 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이 민주라는 사람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배치고사도 끝나고 대입을 치루기 한달도 채 남지않은 사이...

  바로 그때...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 , 이미 너무 들어서 테잎상태가 너무나 안좋은 이승환의 노래가 세상에 뜨기 시작했다.

  ...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 눈물로 시를 써도... 비추어주오... 가을 흔적... 너무나 많은 맬로디가 내 가슴을 송두리체 앗아갔다.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핑계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결국, 당연히 붙을거라고 예상했던 대학에 보기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이민주를 향한 그리움이 타오르고 있었고 재수시절 역시 부평을 헤메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결국, 난 다시 낙방을 해야 했고, 삼수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그제서야 그가 살던 집 근처를 어렵사리 알아냈다. 물론 예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많이 변해 버렸기에 정확히 집을 찾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어쨌든 근처만이라도 알아냈다는 위안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애타게 찾고 싶어했던 사람이 사는 곳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그건 내 자신의 현재 모습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그때 떳떳하게 찾아오리라 마음먹었고 결국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점점 내 그러한 열정들은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혹, 이미 결혼하지는 않았는지... 애인이 있지는 않은 지... 이미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린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는 것은 조용한 그의 생활에 혼란만 주는 것이리라...

  이러한 두려움들이 나의 이성을 눈뜨게 했고 결국 나는 어제까지도 그렇게 막연하게나마 부평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하늘아래 살겠지...라는 체념 비슷한 생각들로 지내오게 됐다.

  혹, 정말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나에게도 통한다면 만날것이다 싶어 부평을 지나는 전철이나 버스안에서는 몸가짐도 바로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가 안 우석의 사촌형으로 내 앞에 나타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