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단발 머리 소녀로 남은 경희에게
바람 불고 낙엽 지던 때부터 시작된 나의 병은 새봄이 왔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다. 상사병 앓는 사람처럼 너의 생각을 할 때는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다. 네게 못 다한 얘기들을 간직한 채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난 널 내 가슴에 아픔으로 묻고 그리워한다..
"친구여" 라는 노래를 들을 적마다 눈물이 난다. 그 노랫말이 우리의 이야기 같다. 넌 어디에 있니?
단발머리는 아니었지만 난 널 단발머리 소녀로 기억하고 있다. 하얀 얼굴에서 살짝 스며 나오는 웃음이 널 항상 그런 모습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난 지금 '못 찾겠다 꾀꼬리'를 슬프게 부르면서 술래가 돼있다. 네가 좋아하던 가수가 부른 노래 속으로 우리가 들어온 것일까!
우리는 성적표를 바꿔 봐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였잖아.그때가 그립다. 내마음은 그때와 같건만 넌 내 앞에 없다.
비오던 그 날 널 두고 내가 먼저 집으로 가버린 건 정말 미안해.
네가 그 일로 모든 어려움을 너혼자 짊어진 것이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아픔으로 남는다.
아픔을 나누지 못했으면서 친한 친구였다는 말을 한다는 게 날 부끄럽게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너의 어려움이 나의 어설픈 행동으로 더 큰 상처로 남을까봐 겁이 났어. 내가 망설이고 있는 동안 우리의 인연이 퇴색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졸업했지.
선뜻 네게로 다가서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다.
하얀 백지 속에 깨알처럼 써내려 간 너의 마지막 편지를 보며 그 속에서라도 널 찾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린 사실이 안타깝다.
내가 왜 그렇게 애닳토록 널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네게 진 빚을 갚기 전에는 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난 잘 알고 있다.
난 자주 너의 꿈을 꾼다. 널 찾아 헤매다가 넌지 누군지 모를 사람을 만나 너라고 부르며 반가워한다. 네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넌 내 생각 안하니? 정말 보고 싶어.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을까. 어디 있니?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지 아니? 어디에 꼭꼭 숨은 거니?
오늘도 널 만나지 못하고 하루가 간다.
난 또 한숨을 기록한다.
내가 이 편지를 쓰게 되는 일이 우연이 아니 필연으로 이어지길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길 간절히 빌어 본다.
1995년 3월 28일
박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