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할 것 같아"
엄마는 나를 째려 본다.
"토할 것 같단 말야"
"참어"
"멀었어"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속이 울렁거리고 아침 나절에 먹은 참외가 다 올라 올 것 같다.
목도 타고 물이 마시고 싶다.
"엄마 물"
엄마는 대답도 안 한다.
버스 창 밖으로 얼굴을 내 밀었다. 마른 먼지가 코로 들어온다.
속이 더 울렁거린다. 식은땀까지 나고 오줌도 마렵다.
엄마를 본다.
얼굴이 까만 엄마. 양쪽 눈 밑으로 검은 깨 같은 점들이 소복하다.
자세히 보니 엄마도 속이 안 좋은 가. 표정이 굳어져 있다.
"다 와가, 조금만 더 참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햇볕이 뽀얗다.
조금 전과는 기분이 정말 딴 판이다.
미류나무들이 줄지어 선 길을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간다.
바람이 살랑 거리고 나뭇잎들이 사그락 거린다.
엄마 손을 놓고 뛰고 싶다.
어느 가게 앞에 섰다. 국수 삶는 냄새가 난다.
가게 앞 평상에는 국수를 먹는 아저씨들이 몇 분 있다.
엄마를 본다. 먹고 싶다.
분홍 꽃무늬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예쁜 아줌마가 눈에 띈다.
치마가 이쁘다. 고무신도 꽃고무신이다.
얼굴도 뽀얗다.
"엄마, 저 여자 누구야"
"누구"
"왜 나 보고 웃어"
"알땅구"
"알땅구, 그게 뭐야"
"알땅구라니까"
"알땅구가 뭐야"
"알땅구가 알땅구지 뭐긴 뭐야, 보면 몰라 거지지"
"거지, 무슨 거지가 저렇게 이쁜 옷 입고 있어"
"잘 지내셨어요. 얘 국수 좀 주세요. 전 저기 좀 들어갔다가 와서 먹을게요"
국수 집 아줌마는 알았다고 한다.
"여기서 국수 먹고 있어 엄마 저기 들어갔다가 금방 올께"
엄마가 가리키는 곳은 국수 집 건너편에 있는 '대화 의원'이다.
대화는 좀 큰 줄 알았다. 그런데 대화라는 곳은 고개를 왼쪽으로 최대한
돌렸다가 천천히 오른쪽 끝까지 돌렸을 때 보이는 거리가 다다.
칫, 벌거 아니네.
"아이고 알땅구 그거 먹지마 내가 새로 말아 줄께 이리로 와 어여"
예쁜 아줌마는 아저씨들이 먹다 남기고 간 국수 국물을 그릇째 들고 서서 마신다.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대화 의원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대화의원'이라고 내려 쓴 글자 옆에 있는
나무문을 바라보고 있다.
삐걱 거리며 문이 열리고 엄마가 뒤뚱거리며 나온다.
옷이 더워 보인다. 왜 엄만 저 옷만 입을까. 여름 내 저 옷만 입는다.
검은 색과 회색으로 된 바둑 무늬 옷. 윗도리가 꼭 치마같이 생긴 옷.
저게 그렇게 좋을까.
나는 멀리 미류나무 밑으로 사라져 가는 알땅구의 분홍 꽃무늬 치마를 바라본다.
그 날 일은 더 이상 기억에 없다. 초등학교 2학년이면 더 기억해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국수를 다 먹은 다음 가게 주인 아줌마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곱게 하던 알땅구.
미류나무 잎사이로 햇빛이 뽀얗게 비추었고, 그 밑으로 희적희적 걸어가던 분홍 점
하나가 기억 날 뿐이다.
그 여름 엄마는 막네 동생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