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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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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땅구


BY 솜틀집 2003-08-01

"토할 것 같아"

엄마는 나를 째려 본다.

"토할 것 같단 말야"

"참어"

"멀었어"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속이 울렁거리고 아침 나절에 먹은 참외가 다 올라 올 것 같다.

목도 타고 물이 마시고 싶다.

"엄마 물"

엄마는 대답도 안 한다.

버스 창 밖으로 얼굴을 내 밀었다. 마른 먼지가 코로 들어온다.

속이 더 울렁거린다. 식은땀까지 나고 오줌도 마렵다.

엄마를 본다.

얼굴이 까만 엄마. 양쪽 눈 밑으로 검은 깨 같은 점들이 소복하다.

자세히 보니 엄마도 속이 안 좋은 가.  표정이 굳어져 있다.

"다 와가, 조금만 더 참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햇볕이 뽀얗다.

조금 전과는 기분이 정말 딴 판이다.

미류나무들이 줄지어 선 길을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간다.

바람이 살랑 거리고 나뭇잎들이 사그락 거린다.

엄마 손을 놓고 뛰고 싶다.

어느 가게 앞에 섰다. 국수 삶는 냄새가 난다.

가게 앞 평상에는 국수를 먹는 아저씨들이 몇 분 있다.

엄마를 본다. 먹고 싶다.

 

 

분홍 꽃무늬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예쁜 아줌마가 눈에 띈다.

치마가 이쁘다. 고무신도 꽃고무신이다.

얼굴도 뽀얗다.

"엄마, 저 여자 누구야"

"누구"

"왜 나 보고 웃어"

"알땅구"

"알땅구, 그게  뭐야"

"알땅구라니까"

"알땅구가 뭐야"

"알땅구가 알땅구지 뭐긴 뭐야, 보면 몰라 거지지"

"거지, 무슨 거지가 저렇게 이쁜 옷 입고 있어"

 

 

"잘 지내셨어요. 얘 국수 좀 주세요. 전 저기 좀 들어갔다가 와서 먹을게요"

국수 집 아줌마는 알았다고 한다.

"여기서 국수 먹고 있어 엄마 저기 들어갔다가 금방 올께"

엄마가 가리키는 곳은 국수 집 건너편에 있는 '대화 의원'이다.

대화는 좀 큰 줄 알았다. 그런데 대화라는 곳은 고개를 왼쪽으로 최대한

돌렸다가 천천히 오른쪽 끝까지 돌렸을 때 보이는 거리가 다다.

칫, 벌거 아니네.

"아이고 알땅구 그거 먹지마 내가 새로 말아 줄께 이리로 와 어여"

예쁜 아줌마는 아저씨들이 먹다 남기고 간 국수 국물을 그릇째 들고 서서 마신다.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대화 의원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대화의원'이라고 내려 쓴 글자 옆에 있는

나무문을 바라보고 있다.

삐걱 거리며 문이 열리고 엄마가 뒤뚱거리며 나온다.

옷이 더워 보인다. 왜 엄만 저 옷만 입을까. 여름 내 저 옷만 입는다.

검은 색과 회색으로 된 바둑 무늬 옷. 윗도리가 꼭 치마같이 생긴 옷.

저게 그렇게 좋을까.

나는 멀리 미류나무 밑으로 사라져 가는 알땅구의 분홍 꽃무늬 치마를 바라본다.

 

 

그 날 일은 더 이상 기억에 없다. 초등학교 2학년이면 더 기억해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국수를 다 먹은 다음 가게 주인 아줌마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곱게 하던 알땅구.

미류나무 잎사이로 햇빛이 뽀얗게 비추었고, 그 밑으로 희적희적 걸어가던 분홍 점

하나가 기억 날 뿐이다.

그 여름 엄마는 막네 동생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