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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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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무도 모른다-


BY 빨강머리앤 2005-07-14

영화평론가들의 호평속에 개봉된, 그러나 관객으로 부터 외면을 받은 몇몇 좋은 작품들을 알고 있다. 그중에 '아무도 모른다'가 슬몃 끼어 들어 정말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대단히 예술적인 작품도 아닌데, 지나치게 지루해서 하품나게 하는 영화도 아닌데 관객에게 외면을 받은 이 일본영화에는 아이들 넷이 주인공이다.그리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이기도 하다.

열두살 '아키라'와 그의 동생 셋이 주인공인 영화. 어른들은 살짝 얼굴을 내밀다 사라진다. 마치 배고프고 사랑고픈 아이들을 외면하듯... 아이들을 버린 엄마가 그랬고, 엄마보다 더 비정한 아빠들이 그랬고 의심의 눈초리를 굴리던 마트의 주인아저씨가 그랬고... 누구보다 헤진 옷을 입고 못 먹어서 금방 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네 아이를 모른채 지나쳐간 수많은 어른들이 그랬다.

이 영화는 버려진 아이들 넷이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스스로 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처음엔 네 아이를 돌보던 엄마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재밌게, 절대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을 것 같은 착한 엄마가 있었다. 아이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고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 끼니를 대 주던 그런 엄마가 있었다. '나도 행복해 지고  싶다'며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린 엄마가 그래서 꼭 나쁜 엄마는 아닌것 처럼 보인다.

어처구니 없게도 아이 넷의 엄마는 한명이지만 아빠는 다르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 였다면 엄마가 백번 잘못 했을 수도 있다. 이 엄마를 철 없다고 해야 할지, 너무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다. 사실은 아빠들이 더 나쁘다. 좋을 땐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다가 아이가 생기니 도망치는 파렴치범들이 그 아빠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파렴치범들이 우리나라에도 득시글 댄다지.. 동남아 여성들을 농락하는 여차하면 한국으로 내빼는 우리나라 얼굴에 먹칠하는 그런 남자들에 관한 기사을 엊그제 신문에서 보았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채 엄마와 살아가는 아이 넷, 아키라, 쿄코, 시게루, 유코는 또 이사를 해야 한다. 아빠도 없는 아이들이 넷인걸 아는 주인이 집을 나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번의 이사를 하고 이젠 꾀가 생겼다. 아키라만 외부에 노출시키고 세아이는 감춰 두는 방법으로... 이사를 할때 세 아이는 트렁크에 숨은채 짐짝 취급을 당해가며 새 집으로 온다.

이삿짐이 다 옮겨지고 새 주인과 인사를 하고 급히 돌아와 엄마와 아키라가 트렁크를 연다. 땀벅벅인채로 트렁크에서 기지개를 켜며 나오는 쿄코, 시게루, 유코는 밖으로 나와서 다행이라는 듯 활짝 웃는다. 영화속 아이들은 줄곧 그렇게 순한 눈망울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싫은 것'도 없고 '안될 것'도 없고 더이상 '나쁠 것'도 없다는 듯 극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눈물 대신에 미소를 보였다. 천사... 그랬다. 네아이는 날개를 잃어 버리고 지상으로 낙하한 천사들이었다. 그 천사들에게 어른들은 한없는 슬픔을 안겨 준다. 가슴을 후벼 파는듯한 슬픔을 미풍이 날리듯 처연하게 연기하는 아이들을 아무렇지도 않는 듯 바라볼 수가 없다.

엄마가 일하러 가면 아키라는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시장보고 요리하고 동생들 목욕시키고 ... 다행히 의젓한 동생 쿄코가 있어 빨래도 하고 집안이 어느정도 정돈이 된다.개구장이 시게루 이 일곱살 한창 장난꾸러기 여야 할 아이는 집안에는 있는 것이 한없이 갑갑한 일이었을 텐데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꾹 눌러 참는다. 그걸 보는 일이 또 가슴 아프다. 이런 장면이 있다. 빨래 담당인 쿄코가 벗어놓은 신발이 흐트러 진걸 시게루가 본다. 그걸 정리하는 척 하면서 살짝 베란다로 나서고 싶은데 형이 못하게 한다.시게루는 안 나갈 거라며 몸은 방에 걸친채 손만 뻗어 누나의 신발을 끌어 오며 어색하게 웃는다. 감질맛 나게 느껴지는 밖의 공기, 햇살에 그렇게 잠깐 노출한 시게루는 그것만으로 한없이 좋다.

가장 안되어 보이는 아이는 아무래도 막내다. 유코, 다섯살이다. 동그란 눈망울이 이쁜 유코는 인형을 좋아한다. 이쁘고 유순한 이 아이가 좋아하는 다른것은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는 일이다. 내놓고 보고 싶다 얘기하지 않는 대신 이 작은 아이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일은 크레파스로 엄마를 그려놓고 그 그림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제법 성숙한 티가 나는 쿄코의 가장 큰 소망은 피아노를 사는것 이다. 조금씩 돈을 모으고 모형 피아노를 두드리는 일이 쿄코의 유일한 낙이다.

이 천사같은 아이들에게 늘상 있어 왔던 시련 중 가장 큰 시련이 닥친다. 크리스마스때 돌아 오마고 했던 엄마가 돈이 다 떨어져 가는데 오지 않는 것이다.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지막 동전 몇푼 남은 돈으로 엄마가 적어준 대로 전화를 해 보지만 마지막 동전이 딸각, 소리를 내며 전화가 끊기고 만다.

 

                          전기도 수도도 끊기고 먹을 것도 없지만 넷이 있어 좋았는데...

 

머잖아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긴다. 전기는 안쓰는 걸고 물은 동네 공원에서 받아다가 쓰고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받아와 끼니를 잇는 아이들의 몸짓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릿하다. 밖에 나가지 말라는 엄마의 말이 힘을 잃은 시점에서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간다. 세상 밖에 펼쳐진 나쁘고 좋은 것들을 경험 하면서도 순수를 잃지 않은 아이들.

아이들은 외출에서  길모퉁이 통풍구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고 길을 멈춘다. 씨앗을 받고 주변의 흙을 담아다 먹고난 일회용 그릇에 꽃씨를 심는다. 제일 열심히 꽃을 가꾸는 아이는 놀랍게도 개구장이 시게루이다. 햇살 환한 베란다에 줄줄히 꽃씨를 심은 스트로폼 화분에 물을 주는 시게루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의외로 꽃을 가장 열심히 가꾸던 장난꾸러기 시게루

그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얼마전까지 저희들을 거둬 주었던 엄마로 부터 받은 작은사랑이었다. 아이들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작은꽃씨에게 사랑을 전해 줄줄 알았다.

마침내 베란다 가득 어룽이는 햇살에 새싹들이 피어나  한들거렸다.그 모습이 너무 좋아 의자에 올라 꽃들에게 다가가려다 유코가 그만 의자에서 떨어지고 만다. 잠이 든 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유코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처음으로 아키라가 울었다. 그리고 잠깐 친구가 되어 주었던 조종련계 여학생에게 도움을 청한다. 유코를 이사올때 실려왔던 트렁크에 담아 꼭 보여주고 싶었던 하네다 공항으로 데려간다. 까만밤, 유코가 보고 싶었던 비행기는 쉴새없이 이착륙을 거듭하고 두 아이들은 열악한 도구로 땅을 판다. 유코가 담긴 트렁크를 그곳에 묻는다. 죽어서라도 실컷 비행기를 보라고.

 

                                   천사같은 유코

유코는 다시 날개를 얻고 천상으로 날아 갔을 것이다. 다시 일상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다시 거리로 나선다. 마트에선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건네주고 그것을 받아 쥐고 아이들은 다시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공간으로 향한다.

시종 담담하게 카메라가 네아이의 동선을 쫒는 듯한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굳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멘트가 없었어도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어른인 나도 그 '아무도 모르는' 이들 속에 속해 있지 않은지 아프게 돌아 봐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날개를 꺽은 무책임한 어른들이 있는 한, 세상이 점점 개인화 되고 기계화 되고 있는 한 그런 아이들이 점점 더 많이 양상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이 부디 비켜 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