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마지막 토요일, 토요휴무일이라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 날 하루를 아이들과 뭔가 특별한 일로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러다 오랫만에, 영화보러 극장에 갈 생각을 했다. 마침, '안녕,형아'라는 가족 영화가 개봉을 했으니 이래 저래 극장 구경을 나서면 좋을것 같았다.
영화가 좋으면서도 정작 극장 가는 일이 드물었다. 소도시인 이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극장은 자동차 극장이고 그 극장 마저도 심야 상영을 하는 관계로 아이들과 극장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위해선 멀리 구리까지 가거나, 아니면 서울까지 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게 어디 쉬운가...
5월 28일, 학교 가는 날 보다 더 서둘러 아이들과 구리에 있는 극장을 찾았다. 교통체증을 피해 (경춘도로를 따라 양옆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언제 길이 막힐지 알수가 없는...) 일찍 나선 덕분에 영화시작 이십여분 전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도 좌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극장이긴 했지만 조조라서 자리가 남아 돌거라 예상을 했는데 좌석은 매진을 기록하기 일보 직전 이었다. 할수 없이 맨 앞좌석에서 영화를 봐야 했다.
팝콘을 먹으며 영화 시작을 기다리는 아이들 옆에서 가방 속 화장지를 확인해 보았다. 화장지가 석장이다. 아무리 최루성 이라도 석 장이면 충분하겠지 싶었다.
이 영화의 입소문은 박지빈 이라는 아역배우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빈이는 극중, 아픈 형의 개구장이 동생 역활을 얄미울 정도로 잘해 냈다.한별, 한이 형제가 있다. 형은 의젓하고 듬직한 반면 세살 아래 동생은 천하의 개구장이다. 형제의 엄마(배종옥)는 맞벌이를 하는 주부고 그녀는 여느 엄마처럼 학원을 빼먹었다고, 말썽을 부렸다고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기도 하고 잔소리를 해대는 평범한 엄마다.
그날, 한별이가 쓰러진 날도 그랬다. 아파서 학원에 못가는 아들이 꾀병을 부린다고 회초리를 들었다. 쓰러진 아이를 업고 병원에 갔을 때 만 해도 그녀는 설마 아들이 불치병이 걸렸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입원을 하고 아이 눈을 피해 몰래 우는 엄마의 슬픔에 내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울지마'라고 위로해 주는 남편의 말이 너무 쉽다.남편도 나름대로 슬픔을 삭이고 있을 테지만 엄마의 마음이란 얼마나 깊고도 복잡한가.
사소한 잘못으로 야단을 치고 회초리를 들때마다 남편들은 그저 구경꾼에 머물지 않았는지...배종옥의 대사로 작가는 엄마의 마음을 예리하게 표현해 낸다. 엄마의 잔소리는 이유있는 잔소리다. 하지만 그 잔소리를 했던 기억이 자신의 아이가 아파 누워 있으니 그렇게 후회스러울수가 없다. 그러지 말걸....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좀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을까? 내가 바쁘다고, 귀찮다고 매를 들고 야단을 치고 잔소리를 해대고... 그러지 말걸...
하지만 아이는 수술을 해도 완치를 보장할 수 없는 '뇌종양'판정을 받는다. 억장이 무너지는 엄마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해 내는 영화의 연출력이 놀랍다. 영화보다 한 템포 느리게 슬픔이 잔물결로 건너와 파도처럼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화장지가 두장 남았다.
아이는 무균실로 들어가 세상과 고립되고 약을 먹기 전에 혹시 모를 균을 제거하기 위해 입안을 소독하고 약을 먹는다.그것이 아픈 아이의 일상이고 그 낯설고도 불안한 현실을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엄마가 있다. 어느덧 엄마에게도 그것은 현실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이 낯선 현실은 좀체 받아 들이기 힘들다.
관객인 내가 엄마 이므로 자꾸 엄마 역활의 배종옥의 입장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아픈 형아를 둔 개구장이 한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는 장난꾸러기다. 유희왕 카드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휠릭스 타기가 취미인 녀석에게도 형의 아픈 모습은 참으로 낯설기만 하다. 어떻게 받아 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엄마고 아빠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형 얘기만 하고 형 만 걱정한다.
수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형은 아예 왕 대접을 받고 자신을 뒷전이다. 엄마를 완전히 뺏어간 형이 미워 절대 쓰지 말아야 할 형 수건에 얼굴을 문지르고 코까지 풀어 팽개친다. 그냥, 화가 나서 그랬을뿐 인데 형이 응급실에 실려 간다. 자신 때문에 형이 다시 입원 했다고 생각한 한이가 후회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성장을 경험한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유희왕 카드를 형에게 건네기도 하고 형 침대 옆에 새로 입원한 욱이라는 친구에게도 마음을 주기 시작한다.
한이의 성장 속에는 욱이와의 우정도 자리 잡는다. 구절초 피고 단풍잎 드는 가을날, 한이는 욱이의 시골집으로 따라 나선다. 텔레비젼에도 나왔다는 타잔 아저씨를 만날 심산으로 둘이 뒷산을 향하다 쓰러진 욱이를 타잔 아저씨가 살리는 대목에선 판타지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타잔 아저씨가 두 아이를 양 팔에 끼고 마치 날개를 펼치듯 나는 장면에서도 조금도 어색한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 더러 그런 판타지 요소가 오히려 영화를 생기있게 하는 것 같았다.
그 기억을 따라 한이는 형의 수술날 학교에 가는 대신 타잔아저씨가 사는 욱이네 시골집으로 향한다. 쓰러진 욱이를 살렸던 신비의 약숫물을 구하기 위해. 어렵게 떠온 한이의 약숫물을 형이 마시진 못하지만 동생의 간절함으로 형은 기적적으로 다시 눈을 뜨는 과정 속에서 개구장이 한이는 한뼘 쯤 마음의 성장을 경험하는 것이다.
'안녕, 형아' 라는 제목에서 한이가 형 한별이를 떠나 보내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욱이가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극중에서 그런 암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약숫물을 떠온 한이의 소동 속에서 한이의 형은 눈을 뜨는데 '안녕, 형아'라고 조용히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그것이 욱이의 마지막 말이었다. 다 쓴 화장지로 눈가를 훔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형아'는 현재까지도 투병중이고 수술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점자를 배우고 있는 형에게 여전히 어릿광을 피우는 동생이 형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극장을 나섰다.
눈가에 화장지 부스러기가 덕지 덕지 붙어 있어서 아이들이 우습단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엉망이다. 벌써 서울에서 밀려오는 차들로 경춘도로가 꽉 막혀 있었지만 마음은 영화의 내용이 주는 슬픔'속으로 극중 아이들이 만들어낸 맑은 순수가 아름답게 교차 되고 있어 만족스럽게 극장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