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물질적인 선물이 과연 선생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옳은 일인가 싶었으나 어쩔수 없이 대한민국의 펑범한 학부모인 나도 스승의날 선물에 대한 고민으로 꽤 걱정스런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딸아이의 담임은 여자선생님이고 아들아이 담임은 남자 선생님이다. 여자인 까닭에 동성인 여자선생님의 선물 목록은 몇개가 떠올랐으나 남자선생님께는 어떤 선물을 할 것인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딸아이는 학부모에게 보내는 담임선생님의 편지를 내밀었다. 선생님의 편지를 읽어 가다 보니 며칠전부터 선물로 고민했던 내가 참 부끄러웠다. 선생님의 편지인즉, 선생님도 어린시절 선생님의 가르치심으로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라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말과 함께 교사초임 시절에 받았던 초코파이 하나, 음료수 한개, 편지 한줄이 지금도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고 쓰셨다. 그것은 아이들의 작은 정성이요 순수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기에 기꺼이 선물로 받아 들일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물질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오늘날의 아이들에게서 마음의 선물이 아닌 부모님들이 마련한 선물을 받아 드는 심정이 매우 착찹했노라고, 그러니 스승의 날에 아이들 손에 아무것도 보내주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
다만, 너희 선생님은 참 훌륭하신 분이고 너희들을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구나 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새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진정 스승이라고 부를만한 분이라는 사실이다. '너는 정말 좋은 선생님을 가졌구나' 라고 편지를 읽고난 후 딸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꼭 스승의 날을 앞에 두고 보낸 편지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가 반 배정을 받고 담임선생님을 만난 첫날 선생님은 학부모께 보내는 첫 편지를 보내셨다.편지에는 아이들을 처음 만난 첫날의 설레임과 각오 그리고 앞으로 일년 동안의 기본학교 생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학과 공부에 충실할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독서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을 시도해 보겠다는 선생님의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에서 나 역시 선생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뜻으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체계적인 독서활동과 더불어 틀에 박힌 글쓰기가 아인 순수한 아이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는 독후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을 읽으면서는 정말 이 선생님은 진정으로 아이들을 생각하시는 훌륭한 선생님 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선생님의 교육방침이 새로울건 없을 것이다. 당연히 교사라면 그런 지향점을 향해 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아이의 선생님이 새롭게 보이는것은 지금까지 그런 선생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와 가정이 교육의 통로로 긴밀하게 연계가 되어야 한다면서도 현실에서는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학교에서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아이의 교육을 전적으로 학교에 맡기고 싶은것이 부모된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학교교육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중성을 가진채 공교육에 대한 비판이 불거질때마 아주 쉽게 나 역시도 그 비판의 대열에 합류하고는 했던 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그런 나를 부끄럽게 돌아보게 했다. 학교 교육에 조금씩 눈을돌릴줄 아는 여유를 갖게 했다. 아이들 교육을 우선한다고 하면서도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심했던 내게 아이의 학교생활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수 있게 했던 직접적인 계기는 선생님이 한달에 한번씩 보내는 학급신문을 통해서였다.
한달 동안 학급아이들에게 있었던 재밌고 안타까웠던 사연들을 읽으며 함께 웃고 위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럴때면 아이는 신문을 읽고 있는 엄마 옆에서 말이 많아졌다. 이 사건은 이러저래 해서 저 일은 이 누가 이러저래 해서... 신문에 난 내용을 통해 대충 알아 들을만한 이야기를 아이는 마치 자신이 다 한 것 처럼 신이나서 설명을 하곤 했는데 생생한 현장감을 살린 아이의 부연설명을 듣다 보면 아이가 적어도 학교생활을 참 즐겁게 해 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해 지곤 했다.
그런 선생님이 스승의 날에 일절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스승의날' 선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부터 놓여나서 그렇게 홀가분 할수가 없었다. 선물을 안하자니 내 아이만 밉보일것 같고 선물을 하자니 쉽지가 않았던 마음은 단지 나 혼자만이 갖는 고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 퇴근길에 작은아이 담임선생님의 선물을 샀다. 소박한 선물 꾸러미를 하나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꽃집엘 들렀다. 선물은 일절 받지 않겠다고 하신 큰아이의 선생님께 꽃 한송이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스승의 날을 위한 카네이션과 장미가 꽃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꽃값도 만만치 않았다. '한 송이? 아니면 한 다발? ' .'선물은 사양'이라고 선언하셨지만 꽃 한송이라도 드려야 할것 같아 붉은 카네이션과 빨간 장미들 속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노란장미 바구니를 골랐다. 화려하게 포장한 붉은색 일색의 꽃들 중에 그중 수수해 보이면서도 진노랑색으로 눈길을 끄는 장미바구니가 선생님을 생각나게 했다. 저마다 다른 크기로 피어있는 열송이의 노란장미 속에 하얀 백합 한송이가 꽃힌 꽃바구니, 이건 선물이라기 보다 진정한 축하의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니 선생님도 이 꽃마저 마다 하지 않겠지 싶었다.
그런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왔는데, 손에 들린 꽃을 보고 딸아이가 '누구에게 줄거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선생님께 드릴것이라고 자랑스럽게 꽃을 들어 보인 내 손은 잠시후 아이의 대답에 무색해 지고 말았다. '우리 선생님은 꽃 한송이도 절대 가져 오지 말랬는데..'
아이 둘은 엎드려 선생님께 편지를 적었다. 편지를 적기에 앞서 딸아이와 담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선생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반 여자 아이들은 선생님 집으로 초대를 할 것이란것과 남자아이들중 결손가정이나 이혼가정의 아이들의 집을 선생님이 직접 가정방문 중이라는 것이다. 가정방문이 폐지 된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그런 방문이라면 다른 선생님들도 한번쯤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일요일인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오늘아침, 딸아이는 다른날보다 한시간이나 빨리 학교에 갔다. 반 아이들 끼리 준비해서 조촐한 축하파티를 할거라고 했다. 아이들만의 정성으로 사온 꽃 한송이는 괜찮다고 하신 선생님께 드릴 장미한송이를 들고 ....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보기 드물게 훌륭하신 교사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오늘날 진정한 스승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땅 구석 구석에 아이의 담임선생님 처럼 묵묵히 교사로서의 직업을 훌륭하게 실천하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 들이 계실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이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마음의 꽃다발 한아름 전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