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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들이 노니는 오월의 숲


BY 빨강머리앤 2005-05-11

봄이 되어서 숲이 변화하는 걸까, 숲의 변화가 봄을 불러 들이는 걸까? 라는 질문은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 인가  하는 질문 만큼이나 어리석을 것이다.

다만, 봄이 숲을 변화시키는지 숲의 변화가 봄을 불러 들이는지는 직접 숲에 들어가서 느껴 볼 일인 것이다.

사월부터 주말이면 숲을 찾아 산으로 나서곤 했었다. 일주일 동안의 변화는 사뭇 놀라울 정도였다. 그것도 오월 들어 더욱 그 변화의 폭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오월로 접어 들면서 온갖 나무와 꽃들이 잎을 피워 냈기 때문이다. 오월의 숲은 어느새 초록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꽃도 나무도 계곡도 초록빛을 배경으로 피어나고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월의 둘째 주였던 지난 주말에도 숲을  찾았다. 숲은 어느새 가득 피어난 초록색 잎새들로 틈과 틈 사이를 빽빽하게 메우고 싱그러운 연둣빛 향기를 품어 내고 있었다.

마침 우리 가족이 숲에 들어 섰을때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필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내린 비였지만 숲속에선 굳이 우산을 받칠 필요가 없었다. 나뭇잎으로 빽빽한 숲이 자연스럽게 비를 가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리는 채로 땅속으로 스밀 정도로 가늘게 내린 비였던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는 곧 그쳤지만 숲은 내린 비로 더욱 차분하게 가라앉아 짙은 숲 향기를 품어 내고 있었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채 차분하게 가라앉은 채로 진한 향기를 품어내는 숲속을 한발 한발 들여 놓을 때마다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설레임이 들었다. 그렇게 숲속을 걸어가다 문득 어딘가에서 숲속에서 노니는 정령들이라도 만날것 같은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그 숲엔 우리 가족 외엔 다른 아무도 없었다.

중미산 휴양림의 숲에서 단연 돋보이는 나무는 낙엽송이다. 휴양림의 산책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맞딱뜨리는 이 나무는 훤칠하게 큰 키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위용을 지녔다. 일본잎깔나무라고도 하는 이 나무는 그 자람이 빨라서 인공조림을 할때 흔히 심는 나무라고 한다. 중미산 휴양림에도 20미터 남짓한 크고 우람한 낙엽송이 숲을 거느릴듯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낙엽송이 늠름하게 서있는 중미산 휴양림을 거닐다

 

음수(蔭樹)인 낙엽송 아래는 햇빛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지라 낙엽송을 간벌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산길 중간중간에 간벌한 낙엽송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놓은 통나무를 만날수 있었다. 자른지 얼마 안된 모양인지 자른 나무에서 진한 나무향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통나무에 올라 나무의 나이테를 센다고 부산을 떨었다.

 

                          '너는 몇살이니? ' 나이테를 세고 있는 아이

 

간간히 미풍이 불어 낙엽이 살랑일 뿐 숲은 고요했다. 다만 숲 어디선가 쇠박새의 경쾌한 울음소리가 숲의 고요를 흔들어 놓고는 했을 뿐이다.

낙엽송을 간벌한 자리엔 벌개지치와 동의나물과 애기나리가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었다. 나무가 사라지고 햇빛이 내린 자리를 어느 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우리 들꽃들의 자태가 하나같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풍성한 잎새 사이로 빠꼼히 연보라빛 꽃송이를 부끄러운듯 드러낸 벌개지치, 유난히 샛노란 꽃송이가 초록잎 속에서 더욱 돋보이던 동의나물, 이렇게 작은 나리꽃도 있었던가 싶은 하얀애기나리가 저마다의 빛깔과 자태로 뽐내며 숲을 빛내고 있는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군락을 이룬 꽃은 그것 말고도 각시 둥글레와 은방울꽃도 있었지만 아직 그것들은 꽃을 피우지 않았다. 다만 하얗고 작은 종모양의 꽃봉우리를 한껏 모두고 있는 모습으로 봐서 머지않아 꽃을 피울 것 같았다.

 

                       낙엽송 아래 애기나리 군락

유일하게 아직도 잎을 피우지 못한 갈참나무를  만났다. '잠꾸러기 나무'라고 아이들이 놀려 댔다. 다른 나무들은 다 잎을 피우고 바로 옆의 신갈나무는 이미 틔운 넓다란 잎새들로 풍성하여 대조를 이루었다. 줄기로 봐선 병이 들었거나 노쇠한 나무 같지 않았다. 늦잠꾸러기 갈참나무도 머잖아 바로 옆의 신갈나무처럼 풍성하게 잎도 피워내고 꽃도 피워서 가을엔 실한 도토리를 매달것이리라.... 대기 만성이라는 말은 다만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것이다. 봄이 되어 꽃과 나뭇잎이 피어나는 숲에서 자연의 순리를 만난다. 그것은 늘 있어 왔던 일이지만 볼때마다 신비롭다. 인생 또한 숲의 순환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래서 일찌감치 선지자 들은 숲을 경배하고 자연을 노래 했을 것이다.

숲을 대할때마다 매번 새롭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숲은 알면 알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에 찾았던 중미산 휴양림의 숲은 내린비로 하여 더욱 향기로웠다. 눈을 감고 숲의 향기를 맡아 본다. 가슴 가득 비릿한 오월의 숲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도 하다. 다시 숲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