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 두고 그리운 사람....' 예전에, 정훈이는 봄날같은 목소리로 노래했었다. 오래전 유행가 가사인데 새삼스럽게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던 그녀의 노래가 귓가를 울렸던건 목하, 지금이 진달래 피고 새가 우는 때이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었다. 새는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고 있었다. 봄이 피어나는 숲에 그렇게 작고 아름다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사월의 아침.
일요일 인데도 아들녀석 때문에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었다.바둑학원을 다니는 녀석이 오늘은 승급심사 시험을 학원에서도 아니고 서울까지 가서 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의 달콤한 늦잠을 뒤로 하고 평상시 처럼 일어나 아이를 학원에 보냈다. 어제부터 시작된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비록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로 바뀌어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느즈막한 아침 무렵 그치고 햇살이 비춰 들었다. 어제 하루종일 숨어 있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게 환한 햇살이었다. 봄날 치고는 꽤 많은 강수량에도 불구하고 잠깐 동안의 햇살이 얼마나 강했던지 비그치고 얼마되지 않아 세상은 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환한 바깥풍경이 외출을 부추겼다. 하늘은 아직 흰구름떼를 잔뜩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 구름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하늘은 맑고도 파랬다.
오늘은 딸아이와 둘만의 나들이다. 비온뒤 유난히 맑고도 파란 하늘, 또 그 하늘을 닮은 세상을 보다가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우리 산에 가자!!' 딸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봄이라 부는 바람도 상쾌해라.. 옷차림은 가볍게 마음도 가볍게 길을 나선다.
아파트 입구에 심어진 하얀 쑥갓 꽃에 벌써 마음이 설레어 온다. 쑥갓의 하얀꽃이 청초하고 예뻐서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누구일까? 누가 이토록이나 정다운 꽃을 아파트 라는 삭막한 공간에 심어두고 꽃등을 환하게 밝히게 하였을까? 중얼거리듯 혼자 꽃구경에 심취해 있는 내게 '엄마, 빨리가자'고 길을 재촉한다.
아닌게 아니라 쑥갓은 꽃보단 먹기위해 심는 채소의 한 종류이다. 아이도 그것이 궁금한지 쑥갓도 꽃을 피우냐고 다시 물어 왔다. 우연히 밭가를 지나다가 내버려둔듯 먹고 남은 쑥갓에서 꽃이 피어나면 그것이 하냥 이쁘고 고와 발길이 머물렀는데 누군가 아파트 화분에 그리 곱게도 심어놓을 줄이야...
진달래 보러 나왔다가 쑥갓의 하얀꽃에 그만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린 느낌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 그러니 갈수 있는 산들이 참 많아 행복하다. 오늘은 백봉산이라고 , 동네에서 가까우면서도 제 나름대로 산모양새를 갖춘 산을 찾는다. 취나물도 많고 고사리도 많아 봄이면 찾는 산이라도 누군가 귀뜸을 해준 산. 가까운 산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오르지 않은 산이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산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입구쪽이 모두 포장이 되어 있어서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풀들을 볼수가 없었다. 제법 가파른 입구쪽 포장도로를 올라 산길에 진입하기 직전 바로 앞에 작은 채전밭이 있었는데 밭가 한쪽 끝에 진달래가 꽃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갑작스러웠다. 진달래가 피었을까하고 그 궁금함을 안고 산을 올랐는데 산입구에 그렇게나 화사하게 진달래가 피어 날 보고 웃고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올봄의 첫 진달래꽃... 새삼스럽게 진달래꽃을 보자 지금이 봄이구나 싶었다. 어릴적 기억 때문인지 내게 있어 봄은 쑥과 진달래꽃으로 시작되었다. 친구따라 쑥캐러 나섰던 봄들녘의 아지랭이, 엄마랑 진달래꽃잎을 해가 기울도록 따와 진달래꽃술을 담그던 기억이 나의 봄날이었다. 어릴적 생각이 나서 산길에 핀 진달래꽃잎을 따서 딸아이와 하나씩 먹어 보았다. 맛이 없다고 아이는 금방 뱉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 씁쓰레 하고 단맛이 느껴질듯 말듯 연한 그맛은 분명 내 어릴적 맛보았던 진달래꽃술의 그 달작지근한 맛을 숨기고 있는듯 했다.
잣나무 소나무 숲길을 지날때는 한낮인데도 저녁인듯 어두웠다. 차분하게 솔냄새를 풍기는 솔숲이 가지런 하게 뻗어있는 길을 걷다가 꼭, 드라마 배경만 같다고 딸아이가 감탄을 했다. 이 가지런함은 침엽수림의 특징중 하나라는 설명은 얼마나 멋없는 해석인가 싶어 딸이 감탄하는 양을 듣는다. 잣나무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침엽수림, 떨어진 잎새들 마저도 한없이 가지런하여 마음마저 차분해 지는 느낌이다.
어느순간 길이 환하게 밝아져 온다. 솔숲을 빠져 나온 것이다. 본격적으로 진달래가 눈에 띈다. 그리고 새들의 노래 소리도 높아진다. 진달래는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만개한 꽃봉오리 사이로 꽃잎을 벙글듯 모두고 있는 진달래꽃봉오리가 오히려 곱다. 그 사이 노란 생강나무꽃은 이왕에 만개를 하고 나무 한그루가 고고하게 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노랗고 분홍빛의 봄을 펼치고 있는 산길... 소나무 푸른잎새는 이들을 지켜주는 늠름한 숲지킴이를 자청했다.
비가 온 후라서 인지 흙길이 유난히 보드랍게 밟힌다. 연다라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무슨 새인지 구별하기가 쉽지가 않다. 봄이라고 저희들도 좋은듯 갖가지 소리로 봄날을 노래하는 소리에 그저 듣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그중 종다리도 있었을까? 바로 눈앞에서 5센티나 될까 싶게 작은 갈색새가 나무가지 위를 포르릉 날다 쉬다를 반복한다. 작은 새의 몸놀림이 어찌나 가볍고 경쾌한지 한참을 뚫어져라 작은 새를 들여다 보았다. 새를 기르고 싶다고 아이는 또 했던 말을 반복하지만 새는 숲에 있을 때라야 가장 자유롭다는걸 아이도 언젠가 알수 있으리라...
갓 피어올린 분홍잎새를 수줍게 밀어올리고 봄을 맞는 진달래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정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야트막한 산고개에 당도했다. 멀리 마을들이 보인다. 마을사이로 논과 밭이 보이고 둘의 어울림이 참으로 평화롭고 그걸 바라다 보는 나도 마음에 한웅큼 여유로움이 밀려온다. 그걸 보기위해 여기 앉았구나 싶어졌다.
새삼스럽게 손에 잡힐듯 작은 동네를 보며 아이도 지나가는 차고 맑은 봄바람을 한웅큼 들여 마셨다. 엄마, 여기서 보니까 저아래 동네가 정말 작아보여...뭔가 하나라도 일러주고 싶어 안달이 난 엄마는 또 시야 어쩌고 저쩌고 한마디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오늘은 정말 딸이와 순수하게 외출을 다녀와야지 했던 마음이 벌써 몇번이나 깨졌는지....
그래도 좋았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산길 초입에서 우연인듯 마주친 진달래꽃무덤이 마치 봄으로 나를 초대한듯한 오늘의 외출이... 진달래 피고 새가 노래하는 봄날 속으로 딸아이와 둘이서 오붓하게 걸어들어간 행복한 기억이 오래 오래 남을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