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는 세계 유수영화제에서 우리 영화인들의 활약상이 어느때 보다 빛난 한해였다. 박찬욱 감독과 김기덕 감독이 세계에서 인정받은 한해였기 때문이다.그러나 한편 박찬욱 감독은 국내 영화팬으로 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으나 김기덕 감독은 그 작품의 성격상 찬반의 논리가 확연히 구별되는 평가를 받는 양상을 띠었다.
나또한 박찬욱의 영화들은 '좋다'라고 확실하게 말할수 있는 한편 김기덕 영화는 어쩐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빈집'은 이전의 김기덕 영화와는 다를 거라고 그랬다. 매우 시적이며 영상속에 녹아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라고 ... 빈집이 궁금해 졌다.
결론은, 역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결코 쉽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보아 왔던 방식의 영화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불편은 그래서 였을 것이다. 세계 영화인들에게 보편타당하게 다가 가려는 감독의 의도를 내가 백프로 이해할수 없다는것.... 조금은 우울한 정서, 쓸쓸한 사랑 그리고 기존에 보아왔던 영화와는 판이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라는 점이.
'빈 집'은 아마도 소외된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사랑에 대한 영화일 거란 생각을 했다. 앞뒤 정황이 전혀 설명 되지 않은 상태로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 남자 태석. 그는 8기통(?) 근사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나 집이 없다. 태석은 광고전단지를 붙이고 다음날 전단지가 그대로 붙어 있는 집엘 들어간다. 능숙한 솜씨로 열쇠를 따고 북한산 아래 평창동 부자집도 들르고 단아한 한옥촌에도 들어가고 다 쓰러져 가는 제개발 아파트에도 들어간다.
사람이 없는집( 빈집)에 들어가 태석은 집 주인이 올때까지 내집인양 행세하고 산다. 샤워를 하고 주인집 잠옷을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먹을것을 찾아 먹고 때가 되면 찌게를 끓여 식사도 한다. 또 그집 식구들의 빨래를 해주고 고장난 것들을 고쳐 주기도 한다. 그가 고쳐주는 목록은 다양하다. 고장난 시계, 고장난 오디오, 고장난장난감등등....
그렇게 빈집을 전전하다 선화( 이승연)를 만난다. 태석의 행동을 가만 지켜보는 선화의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다. 선화는 이 낯선 침입자가 하나 두렵지 않은 표정이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처럼 둘은 가까워 진다. 외로운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 보나 보다.' 너의 외로움 내가 알지'. 마치 둘은 서로를 향해 그렇게 묻는것 같았다.
선화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떠나 태석의 오토바이에 동승한다. 이젠 혼자가 아닌 둘이서 빈집을 전전한다. 감독은 집에 대한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작가의 모던한 집과 단아한 한옥집이 교차되어 보여지고 대궐같은 주택과 재개발 아파트등 다양한 집을 보여준다.
빈집에 찾아 들었다 죽어 있는 노인을 정성스럽게 장례식을 치러주는 장면이 있다. 조금은 생뚱맞다 싶은 대목이 었는데 선화와 태식의 정성스럽게 염을 하고 관을 아파트 화단에 묻어준다. 그냥 돌아서 나갈수도 있었는데 선화는 태식과 더불어 노인의 장례를 치러 주지만 그것 때문에 둘은 살인과 생매장 혐의로 경찰에 끌려 간다.
남편에 의해 구제된 선화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태석은 감옥에 갇힌다. 자유롭게 떠돌기 위해 집을 갖지 않은 태석은 감옥에'갇힘'이 죽기 보다 싫었을 것이다. 태석은 '그림자놀이'를 통해 유령연습을 한다.
마침내 그림자가 되어 버린 태석,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마음과 소통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그 형태를 보일수 있게된 태석은 출소후 선화의 집에 들어선다. 선화의 가출이후 몰라보게 부드러워진 선화의 남편은 그러나 태석의 존재가 늘 두려웠다. 태석을 어떻게든 제거해 보겠다고 한것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것 같은 불안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 선화의 집에 그림자가 된 태석이 들어와 셋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사랑해요' 마침내 선화가 입을 열면서 한마디를 뱉는다. 영화가 끝나기 바로 직전이다. 모든 갈등이 풀어지면서 선화는 마침내 사랑한다고 얘기를 한다. 그것은 그림자인 태석에게 한 말일수도 있고, 이젠 정말 달라진 남편에게 한 말일수도 있고 또 생을 능동적으로 받아 들일수 있게된 자신에게 던진 말일 수도 있었다.
빈집의 또다른 제목은 '3-아이언'이다. 골프채 중에서 가장 파워풀하다는 세번째 골프채. 외국에서 상영될때의 제목이기도 한 '3-아이언'이 암시하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적인 선화의 남편은 3번 골프채로 스윙연습하는걸 좋아한다. 남성성 안에 내재된 폭력이 3-아이언이다.
세상의 권력에서 아웃사이더 였던 태석 마저도 선화남편의 3-아이언으로 골프연습 하는걸 즐긴다. 태석또한 폭력을 내재한 또하나의 남성이었다는걸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그 폭력이 내재된 남성성을 부드럽게 순화시켜 주는것은 선화가 가진 여성성이다. 태석이 골프채를 휘두르려는 순간 선화는 그 앞을 막아 섬으로써 태석의 행동을 저지시킨다. 그리고 빈집에 들러 찌게를 끓여 밥을 먹고 잠자리에서 따뜻하게 안아준다.
폭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엉뚱한 제 삼자에게도 치명상을 입힐수 있는 ( 태석의 공이 날아가 마주오는 차의 유리창을 깨고 차에 탄 여자의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힌다) 일이라는걸 감독은 말한다.
다소 쓸쓸한 방식이었지만 마침내 입을 연 선화의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사 랑 해 요'
이 영화는 쓸쓸하고도 낯선 사랑에 관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