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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며...


BY 빨강머리앤 2004-12-31

날씨가 춥고 또 춥다. 우리나라 겨울을 특징짓던 '삼한사온'은 이제 갔는가... 한동안 너무 따뜻하다 싶었다. 겨울날씨 치고 봄날처럼 따사로워 뭔가, 이상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지만 따뜻한 겨울은 서민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녹여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한파가 몰아쳤다. 평년기온을 웃돌던 날씨가 갑자기 평년기온 이하로 떨어졌다. 밖에서 놀다 온 아이들의 얼굴이 빨갛게 얼었다. 이 갑작스런 현상이 어인 일인가, 하고 아이들은 저희들 나름대로 진단을 내렸다.

빨갛게 언 동생의 얼굴을 보고 제 누나가 말했다.'야, 너 아토피 도졌나 보다'

빨갛게 언 아이의 볼을 보고 엄마인 내가 말했다. '너 사먹지 말라는 불량식품 사먹었구나, 알레르기현상이다, 그게' 하지만 아이는 볼만 사과처럼 빠알갛게 변했을뿐 다른데는 말짱했다. 겨울바람이 범인 인듯 싶었다. 아이의 빨갛게 언 볼을 보며 겨울을 실감한다.

오늘은 2004년 마지막 날이다. 라디오 에서 들려오는 '올드랭사인'이 오늘이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임을 상기시킨다. '잘가시오, 잘 있으오...'  가락을 따라 가사가 떠오르고 갑자기 쓸쓸한 느낌도 든다.  이 싯점에서 올한해를 돌아보는거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올 한해를 돌아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의 병환과 죽음이 올해 첫머리를 장식했다. 그 우울한 소식을 전하며 한동안 나는 세월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달력을 보니 벌써 꽃피는 봄이었다. 겨울과 봄사이 그 사이는 슬픔과 아쉬움과 후회와 번민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런 시간들 속에서 무기력하게 세월이 가고 있음조차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봄날,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져 몸과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 햇살에 얼마간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흘러가는 동안 세월이 느껴졌다. 그 어느해 보다 '세월'이 내게 숱한 말들을 걸어왔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꿀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말이다.

세월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게 낯설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그만 계절들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만 있었다. 딴에는 여름에는 숲과 계곡을 헤매듯 돌아다니고 가을에는 단풍든 나무들과 그 나무들을 흔들고 가는 바람과 푸른창공을 쳐다보며 다니느라 세월을 느낄 틈이 없었다고 변명을 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앉아 고요히 내 안을 들여다 보면 어느새 세월이 나에게 말을 걸고는 했었다. '너, 행복하니?"

나는 선뜻 대답할수가 없었다. 나는 행복한 걸까? 내가 바라고 아직고 품고 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조차 선명하지 않은데,... 나는 정말 행복하기는 한걸까? 아직도 행복의 정의를 내릴수도 없는데 나는 정말 행복한걸까? 새삼스럽게 그런 질문을 해대는 이유도 올해 따라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세월' 탓이었다.

서른과 마흔사이. 나는 그 사이에 서있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고 싶어하지 않는 '피터팬 증후군'이 어느정도 나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한해를 더 살면서 나이테를 더해가는것, 그것이 나이라는 것이라면 나는 다만 그 나이테를 조금 더 단단하게 속으로 새겨 넣고 싶었다. 내게 있어 나이란 그저 '물리적인 나이'에 지나지 않은 거라고 스스로 세뇌를 시키고 살았었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물리적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세월은 그냥 비켜가는 법이 없었나 보았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 어쩔수 없이 드러나는 세월의 흔적들 앞에서 나는 고개를 그저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내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으므로 내가 들여다 보는 거울이 없어도 그 아이들이 세월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지만...이 물리적인 나이에서 느껴지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나의 저 깊은 속을 여지없이 흔들고 가는 세월의 갈퀴를 피할수가 없었다.

그것이 방황이었을까, 아니면 청춘의 한때 다 털어버렸어야 할 열정이 새삼스럽게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을까...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열정인지, 주책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들이 서로 밖으로 나가겠다고 야단이었다. 에너지 용량이 그리 크지 않은 나는 그것들에 휘둘리다 지쳐 오랜시간 잠을 자버렸다. 넉다운... 가을끝무렵부터 나는 마치 잠에 원한 들린 사람처럼 자고 또 잤었다. 자고 나도 쉬원찮아 다시 자리에 누우면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었다.

'전자동 잠자는 기계'... 남편은 나를 '잠순이'라 불렀지만 바닥에 등만 대면 잠이 오는 나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는 '세월'에게 두손 두발을 다 들고 말았다. 이 무기력증은 세월에게 대항해 보려는 나의 시도가 헛수고 였다는 걸 말하는 듯 싶었다.

올드랭사인을 들으며 다시 한해를 보낸다. 나의 한해는 때로 고단하고 쓸쓸했지만 한편으론 다정했고 유순했노라고 한해를 돌아본다. 자연의 이치라는거 그 아름다운 원리를 깨닫는 동안 내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세치가 하나둘 돋아 나왔다. 나는 이 세월의 흔적을 아직은 온전히 받아 들일수 없어 돋아나는 흰머리를 뽑아낸다. 아직은 마음한켠으로 물리적인 나이에 대항하고픈 치기가 남아 있는 까닭이다. 훗날, 파도처럼 세월이 내게 다가오는날 나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로 기꺼이 두팔벌려 그 세월을 안을수 있기를 바란다. 이 세상의 하루 하루가 아름다운 소풍날이었다고 회상을 하면서 말이다.

한해가 가고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진심을 모아 기원하며 2004년 마지막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