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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여행


BY 빨강머리앤 2004-12-14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12월 12일이 결혼기념일 이었다. 그것도 12주년 기념일 이었으니 오호라... 12가 세번이나 겹치니 뭔가 상서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날. 물론 별스런 일이 일어난것은 아니지만 심정만으론 그 뭔가가 일어나길 손꼽아 기다렸다는걸 그인 알았을까? 끝내 일어나지 않은 상서로운 그 뭔가를 나도 잘 설명할순 없지만 남편으로 부터 혹은 누군가로 부터 기념할만한 뭔가를 받는일 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다만 그날 내가 바란대로 조촐한 기념여행을 다녀왔을 뿐이다. 먹고 싶다던 회도 실컷 먹고 바다의 향기도 맘껏 들이키고 전등사를 돌면서 은은한 절 분위기에 마음도 가라앉혀 보고 돌아왔다.

언제 부턴가 결혼기념일엔 '무슨 선물을 할까?'가 아닌 '어디로 떠날까?'가 서로에게 묻는 질문이 되었다.

강화도행을 내가 제안했다. 금전적 여유도 그렇거니와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탓에 멀리 갈수는 없고 가까우면서도 여행이라 부를만한 행선지를 찾아 보니 강화도가 먼저 떠올랐다. 예전 서울살때는 가깝다는 이유로 자주 강화행을 하곤 했었다.

강화를 찾는 길에 만나게 되는 시골풍경에서 사계를 맛보는 특별한 기쁨도 기쁨이거니와 산과 바다를 동시에 만날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강화도의 매력이었다.

강화도엔 유명한 두군데의 약숫터가 있다. 하나는 외포리 가는 길 못미처 '찬샘'이라는 약수터이고 다른 하나는 북문 넘어에 있는 약수터가 그곳이다.우리는 강화에 갈대마다 자주 북문에 있는 약수터를 찾곤 했었다. 북문약수터는 강화읍내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약수터 가는길에 고려 궁터가 있고 그 길따라 북문 오르는 길에 은행나무가 가지런했기 때문이었다. 가을엔 그 길도 노란단풍으로 화려했으며 줄곧 오르막이던 그길이 끝나고 내리막 숲길을 걸어 약수터에 이르곤 했는데 그길이 사시사철 꽃과 나무와 새들이 어울린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약숫물을 떠와 북문앞에 자리를 펴고 끓여먹던 커피한잔이 아주 특별했었다. 똑같은 커피건만 그곳의 약숫물과 그곳의 바람이 만나 내는 그 특별한 커피향을 나는 잊을수가 없어 이번 여행에도 반드시 북문약수터를 들르기로 했었다.

강화가는길에 잠깐 김포에 들렀다. 남편친구네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자고 한것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강화까지 동행을 했다. 이곳은 산간지방이라 그런지 횟집이 별로 없다. 횟집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의 참맛을 내는 집또한 드문것 같다. 오랫만에 찾은 포구의 횟집에서 싱싱한 회와 함께 매콤한 매운탕을 먹으며 바다의 풍요가 내는 깊은 맛에 얼마나 감탄을 했었는지 모른다. 나만 그맛에 감동할만큼 맛있었던게 아닌듯 싶은게 아이들도 달게 밥그릇을 비웠으며 지금도 그 점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걸 보면 그렇다.

겨울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일요일, 맛난 점심으로 배도 부르고 천천히 산보나 하자며 들른곳이 전등사였다. 전등사를 들렀던게 몇년전 봄이었는데 절입구서 부터 절마당에 이르기까지 하얀 벗꽃이 눈처럼 흩날리던 때였다. 그래서 인지 내 기억속의 전등사는 벚꽃과 함께 기억되곤 한다. 그날은 구름낀 하늘아래 담담하게 들어앉은 전등사를 볼수가 있었다.

겨울이어서 앙상한 숲속에 저홀로 푸르른 소나무의 기상이 유난히 돋보였다는 느낌이었다. 소나무가 있어 숲에 생기가 돋는 것 같았다. 절에 오르는 길 여기저기에서 촌로들이 가을걷이한 것들을 내놓고 팔고 있었고 한켠에선 구수한 군밤이 구워지고 있어 나그네를 유혹했다. 배가 부른데도 아이들 등쌀에 못이겨 군밤한봉지를 들고 오르막을 휘여휘여 올랐다.

 

절이주는 느낌에 젖어 한동안 고요히 산사의 적막속에 있고 싶었는데 동행이 있었고 더군다나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어 대충 둘러보고 내려와야 했다. 전등사의 깊은 맛는 커녕 대웅보전과 약사전 건물을 대강 살피고 조금 멀어도 좋았을 삼성각 오르는  호젓한 길을 올라 전등사경내와 그 주변을 살피는 것도 순식간에 해치워야 했던 것도 아쉬움이 컸다. 얼른 내려오라는 성화에  삼성각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서해바다의 장엄한 갯벌을 한눈에 담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길 앙편에 또 소나무가 멋스러운지라 그 향기가 일품이라 발길을 잡는것이었다. 저쪽에서 내려오라 거나 말거나 이래저래 내 발길은 느려지는데 오늘은 그만 내려가라 그러는지 오후부터 흐린 하늘에서 기어이 한두방울 비를 뿌렸다.

다행히 머잖아 비가 그쳤다. 강화도 일주도로를 따라 이번엔 동막리 해수욕장을 향했다. 동막리 해수욕장 옆 분오리돈대에서 바다를 관망하는 코스도 참 좋다. 돈대(적의 동태를 살피는 일명 파수대) 에서 바라다 보면 점점이 섬이 떠있는 서해바다가 손에 잡힐듯 펼쳐져 있다. 그래서 인지 그곳엔 그냥 관광객보다 사진을 찍기위해 몰려든 사람들도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일요일 인데도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겨울바다는 사람들의 수선스러움으로 적막할 틈이 없어 보였다. 겨울여행은 조금 쓸쓸해야 제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강화도 일주도로를 따라 한켠으로 산과 바다를 가르듯 차를 달리다 외포리 선착장을 보고  이젠 벼를 수확한 말끔한 평야지대를 지났다. 그렇게 야트막한 산과 평야지대가 평화롭게 펼쳐진 강화도를 어느정도 돌았다 싶은곳에 부근리 고인돌기념공원에 들렀다. 몇년만에 찾아서 인지 그 주변이 많이 변했다. 덜렁 고인돌만 기념비와 함께 외로웠는데 이젠 공원으로 조성이 되어서 강화의 상징인 '강돌이' 캐릭터도 크게 세워놓고 원시시대를 재현한 움막이며 고인돌모형 돌조각을 세워 두었다. 그것들이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지나치게 인공미만 부각된 탓이다.

 

짧은 겨울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일찍 저녁이 와서 북문약수터행은 생략한다.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그때문이라도 가까운 훗날에 다시 한번 강화도를 찾을 생각을 한다. 여느날과 비슷한 너무도 평화로운 하루였다. 오히려 그것에 감사한.... 그 하루속에 겨울바다와 고즈녁한 겨울숲과 산사의 향기가 있어 그것으로 참 좋은 하루였다.